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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ysium
  •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
  • 한은형
  • 10,800원 (10%600)
  • 2015-05-21
  • : 246

 한은형의 소설집을 읽고 든 짧은 생각. 이 작가의 이 소설집은 환상성이 도저하다. 그 환상성은 인물과 사건, 배경의 층위에 고루 존재하는 것 같다. 소설들의 배경은 전세계에 걸쳐 있으며, 심지어 SF소설에서처럼 로봇이 등장하거나 개로 변한 남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표제작의 엔딩의 경우처럼, 도저히 논리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마치 일어난 것처럼 말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가의 소설을 단순히 환상소설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작가는 무언가/어떤 상태를 말하거나 그려내기 위해 환상적인 소재나 사건을, 어디까지나 필요에 의해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환상은 맥거핀이다. 독자로 하여금 마치 무슨 신기한 일이 일어났었던 것처럼 믿게 하는. 환상이 현실을 날려버리고 무화시켜버리는 듯하지만, 사실 소설이 끝나고 남는 여운의 정체는 현실의 어떤 부재였다. 여기서 방점은 ‘부재’에 찍힐 것이다. 상실감과 어찌해볼 수 없음이 뒤섞인.  

  개인적으로 이러한 환상성이 가장 잘 드러나고 있으며, 작가가 그것을 가장 적절히 사용한 작품이 ‘샌프란시스코 사우나’가 아닐까 한다. 이 작품에서 여자와 남자의 관계는 모호하다. 둘은 사귀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둘 사이의 이야기는 백 프로 남자의 상상 같기도 하고, 실제로 있었던 일 같기도 하다. 이 작품은 부러 이 두 경우 모두가 참이 되도록 쓰여 있다. 작가는 왜 그들의 관계를 모호하게 처리한 것일까? 

  우선 그렇게 처리함으로써 결국 남게 되는 것은 모종의 ‘열린 가능성’의 느낌이다. 그때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지금에서야 드는 호기심과 회한의 순간들. 그러나 이 작품이 만드는 가능성의 느낌에는 이런 단순한 차원을 초과하는 무엇이 있다. 예를 들어 “그녀와 이별하지 못했다. 못할 것이다.”와 같이 과거형과 미래형으로 연이어 말해지는 부정의 서술어들은, 하나의 사건이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기보다는, 끝없이 유예된다는 기분이 들게 만든다. 과거에도 하지 못했고, 미래에도 하지 못하게 될 그 무엇. 이루 말할 수 없이 공허한 기분. a에서 b로 흘러가는 시간의 한 가운데가 무한정 길어져 튜브처럼 부풀고 또 부풀어, 나는 소설이 끝나고도 그 사이에 갇혀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진공상태. 책장을 덮은 나는 그 공백의 무한함을 느낀다. 그곳은 슬픔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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