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열강이 식민지 확보에 혈안이던 1800년대 후반, 구시대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조선의 위정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 밀려 들어오는 외세에 당황한 조정이 갑론을박하는 사이 민초들의 삶은 나날이 힘들어졌다. 결국 살 길을 찾아 고향땅을 등지고 내 나라를 떠나는 행렬이 시작된다.
이 작품은 조선족 이민 2세대인 작가가 한 연약한 여자 아이를 통해 낯선 땅에 정착해 나가는 조선족의 고단한 삶을 그린 그림책이다. 아이 넷이 폭죽을 손에 들고 쥐불놀이를 하는 표지 그림은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동화되는 과정-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씨앗 한 됫박에 팔려온 옥희는 온갖 궂은 일을 하고 구박을 받으며 지내지만 개 헤이랑과 염소 순돌이에게 정을 주며 이웃집 소년 밍밍과 친구가 된다. 돈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팔려 갈 처지가 되기도 하지만 설날 저녁에 쥐불놀이를 하며 청국 아이들과 교감한다. 어느 날 밍밍으로 부터 상발원에 자신과 같은 복색을 한 사람들이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길을 떠난다.
옥희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낯선 땅에 홀로 내동댕이쳐진 이방인이다.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른 곳에 팔려온 옥희는 청국인들에게는 동물-헤이랑, 순돌이-과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밍밍의 이야기를 듣고 주저없이 상발원으로 떠나가는 이유이다. 그 길이 비록 굶주리고 험난한 여정일지라도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의 길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놀이는 옥희를 청국 아이들과 이어주는 매개체이다. 옥희는 위모챌을 건네 준 밍밍에게 마음을 열고 우정을 쌓아 나간다. 쥐불놀이를 한 날 쉬메이는 왕씨 부인에게 맞을 뻔한 옥희를 변호하고 옥희는 그런 쉬메이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춘절에 중국 사람들은 폭죽을 터뜨린다. 귀청을 울리는 폭죽 소리가 악귀를 쫓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옥희에게 폭죽 소리는 적응하기 힘든 이질감이자 낯설음이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지금 연변의 조선족들은 설날에 폭죽 놀이를 즐긴다고 한다. 중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조선족의 모습인 동시에 우리 나라에서 문화적 차이를 느끼는 이방인으로서의 현재의 조선족의 모습이다. 어쩌면 어느 쪽에도 완벽하게 동화될 수 없는 경계인으로서의 그들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1998년 볼로냐 아동 도서전 픽션 부문 일러스트레이션 우수작으로 선정된 이 책의 그림은 사실적인 묘사가 뛰어나다. 겁에 질려 놀란 눈을 하고 있는 옥희의 모습이나 위모챌을 차며 즐거워 하는 옥희의 모습 처럼 인물의 표정 묘사가 특히 뛰어나다. 철저한 고증을 거친 듯한 배경 그림은 중국의 문화를 자세히 소개한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의 그림은 옥희가 처한 현실을 나타내고 위모챌을 차는 장면, 하늘 높이 자유롭게 날아가는 연을 보는 장면과 상발원으로 떠나는 장면에서 밝게 표현한 것은 옥희의 즐거운 감정 상태와 희망을 의미한다.
어두운 그림과 장평의 크기나 무게가 느껴지는 이야기는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에게 적합하다. 어린이들이 이 책을 통해 100여년 전 고향을 떠나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던 조선족이 현재 우리 땅에서 다시 이방인 대우를 받는 현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