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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메즈의 서재
  • 나는 아직도 가족에게 휘둘린다
  • 비에나 패러온
  • 18,000원 (10%1,000)
  • 2024-09-16
  • : 295

나에게 집은 화목하고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늦은 밤이면 얼큰하게 취한 아버지가 집 앞에서 고성을 내지르진 않을까 속앓이하고, 느닷없는 고함소리가 귀를 스칠 때는, 비록 그가 낸 소리가 아님에도 절로 반응했고, 가슴이 늘 선뜩선뜩했다. 술의 숙주가 된 그가 가족을 향해 퍼붓는 폭언에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일도 다반사였다. 문득 새벽에도 전화를 걸어 ‘데리러 오라’며 내지르는 욕설은 가족 모두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 빈도가 나이를 먹으면서 서서히 줄기는 했기만 어디 제 버릇 개 줄까. 여전히 나는, 밤늦도록 그가 돌아오지 않을 때면 오늘은 술 먹고 육갑하지는 않을까 어림하고, 걱정한다.

 

늘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하는 환경에서, 그러나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했다. 오히려 좋은 성적을 받아 어머니를 기쁘게 하겠다는 강한 의무감마저 느꼈다. ‘정서적 지지자’가 되어 주지 못하는 남편을 둔 어머니를 걱정했고, 단단하지 못한 환경에서 행여나 동생이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했다. 정작 나의 안중에는 내가 없었다. 아버지 한 명으로, 안 그래도 모두가 골머리를 앓는 환경에서 나의 최선은 무의식에 꽁꽁 감추어진 거대한 상처를 애써 무시하고 회피하는 일이었다.

 

댐에 가두어 놓은 물이 암암리에 불어나 마침내 댐에 금이 갈 정도가 되었을 때, 나는 부여잡은 관계의 끈이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수시로 받았다. 타인이 나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했고, 나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에는 감정을 극단적으로 표출하곤 했다. 내가 이곳에 없다면 모두가 평안하지 않을까, 또다시 그들을 실망하게 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물씬 나를 찌르고 사라지지 않았다. 점점 나는 혼자가 되어 갔다. 혼자 있을 때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정말 그렇게 될 거라 믿고.

 

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문제를 들여다보는 일 자체를 거부했다. 그 문제에 대해 누군가와 의논하지 못했다. 근원적 상처라고 부르는 이야기를 타인에게 전하더라도 이해받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창피했다. 말해도 달라지는 건 없으리라 생각했다. 무서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얼 했느냐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근원적 상처를 인식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음을, 그 과정이 나를 몹시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우선 나의 이야기를 나에게라도 들려주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유독 불만이 쌓이는 부분이라면 그 이면에는 정서적 갈망이 도사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무엇을 그토록 갈급했던가. 내가 원하는 것을 당신들이 물어봐주고, 잘 들어주길 바랐다. 나를 중요한 사람으로 대해주길 원했다. 집이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이었으면, 그래서 내가 누군가로 인해 두려움에 떨지 않고 다른 중요한 것을 마주할 수 있었으면 했다.

 

어떤 책은 내 안의 부서지고, 상처받은 마음을 누구보다도 따뜻이 위로한다. 금방 휘발되지 않을 치유의 길을 안내하고, 심저로부터 나를 갉아먹던 상처와 마주할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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