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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메즈의 서재
  • 글이 만든 세계
  • 마틴 푸크너
  • 22,500원 (10%1,250)
  • 2019-04-22
  • : 932

인류 역사상 가장 일찍 사용된 문자는 축축한 점토를 눌러 만든 납작한 서판에 뾰족한 갈대로 새겨진 쐐기문자였다. 비문에 새겨진 그 문자에서 오늘날 인류가 사용하는 문자 대부분이 유래하였다. 입으로 말해지던 언어가 갈대를 통해 점토에 고정되면서 문자는 언어의 단절을 방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문자가 존재하는 세계, 그것은 인간 본질에 대한 답을 구하는 인문 환경을 조성했다. 지속적인 사용으로 생존 경쟁에서 승리를 쟁취한 문자들의 조합은 이후 근본 텍스트라는 형태 등으로 후세에 길이 남을 불후작이 되기도 했다.

 

대단한 여정을 자랑하는 문자의 역사에서 최초가 주는 영향력을 차치하면, 비록 그 기나긴 역사에서 작은 한 마디를 차지한 것에 불과함에도, 구텐베르크의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원거리 무역이 성행하던 마인츠 태생인 그는, 동양의 종이 및 인쇄술을 발전시켜 문자를 책의 형태로써 대량생산한다. 두꺼웠던 유럽 종이를 포도즙 압착기로 꾹꾹 누른 다음, 여기에 사업적으로 성공을 예감했던 라틴어 문법책 “도나투스”를 찍어내면서 구텐베르크는 성공 가도를 달린다. 이후 교회의 수요를 고려하여 그는 “성서”를 폴리오판(이절판)으로 인쇄하는데, 독자를 배려하는 판형을 택한 그의 모습은 마치 출판 편집자의 시초를 긁어다 모은 듯했다.

 

책이 자기 주변 세계를 달리 바라보게 하는 렌즈라는 걸 안 이상 이를 멀리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책 없이 사는 삶은 어떤 삶인가? 책에는 판형, 제본, 디자인 도큐멘테이션 등 물성을 지닌 실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수많은 작업이 녹아들어 있다. 문자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일정한 크기의 판면과 여백을 지닌 활자 인쇄물의 묶음이라는 형태를 취하기까지 텍스트가 거쳐가는 장대한 여정을 엿봄으로써 책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오만스레 소리치는 자그마한 마음 한구석의 문을 살며시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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