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1부 제국주의와 과학
1. 약탈적 과학: ‘발견’과 ‘발명’이라는 거짓말
피나텍스(Piñatex)는 스페인 출신 디자이너 카르멘 히요사(Carmen Hijosa)가 2013년 개발한 것으로, 파인애플 잎에서 추출한 섬유를 부직포 형태로 만든 뒤 특수 처리를 통해 가죽과 비슷한 질감과 내구성을 갖게 했다. 히요사는 이 기술에 대한 특허권을 얻고 아나나스아남(Ananas Anam)이란 회사를 세워 피나텍스를 독점 생산·공급하고 있다. 필리핀 선주민들은 이미 몇백 년 전부터 파인애플 잎에서 추출한 섬유로 피나 직물(piña cloth)을 만들어 왔다. 선주민들이 피나 직물을 만드는 과정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을 정도다. 히요사는 필리핀에서 가죽 산업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선주민들의 이 방법을 배웠다. 그렇지만 그에 따른 경제적 이익은 아나나스아남을 비롯한 외국 기업들에 돌아간다. 주로 서구의 대기업들이 세계 각 지역의 선주민들이 오랜 경험을 통해 쌓아 온 지역 생물에 대한 지식과 유전자원(genetic resources)을 도용해서 독점적 수익을 올리는 것을 ‘생물해적(Biopiracy) 행위’라 부른다. 8-9)
19세기에는 식물학자, 동물학자, 인류학자 등을 엄격히 구분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 식물도 연구하고 동물도 연구했다. 또한 인종에 대해서 살피고 해류나 기상을 관측했다. 이런 과학자들을 박물학자라고 불렀다. 이런 박물학자들의 노력으로 박물학은 식물학, 동물학, 지질학, 지리학, 기상학, 해양학 등 세부 학문으로 정립되고 발전했다. 그런데 과연 박물학자들의 성과는 오로지 그들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졌을까? 물론 그 노력을 저평가할 필요는 없지만, 선주민들에게 힘입은 바가 컸다. 그러나 박물학자와 함께 탐험한 이들의 이름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저 고용된 사람, 일행일 뿐이었다. 서양 박물학자들의 ‘발견’은 자기네만의 ‘최초’인 경우가 꽤 많다. 오히려 ‘재발견’, ‘서양에서의 첫 발견’ 정도가 적당하다. 이렇게 현지인들의 지식과 도움으로 확보한 식민지에 관한 연구는 영국 제국의 과학 네트워크를 통해 중앙화되었다. 제국들이 식민지로부터 수집한 정보는 서구 과학계에 공유되며 서양의 과학이 되었다. 12-4)
1890년대부터 동남아시아에 고무 플랜테이션(Plantation)이 급속히 늘어났다. 플랜테이션이 들어선 장소는 이전에 선주민의 거주지, 농경지, 열대우림이었다. 집이며 논이며,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자랑하던 열대우림이 사라졌다. 손수 지은 집에 살며 가족이 먹을 쌀을 재배하고, 과일과 꿀을 채취하고, 대나무로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어 자급자족에 가까운 생활을 하던 현지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고무 플랜테이션의 노동자가 되었다. 자신의 땅에 유배당한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현지인들은 새롭게 임금노동에 의지했지만, 긴 노동시간, 낮은 임금, 위험한 작업환경으로 생활이 쉽지 않았다. 남녀 구분 없이 플랜테이션에서 일했고, 아이들도 동원되었다. 산업혁명 초기에 영국에서 성행한 아동노동이 19세기 식민지에서 되풀이되었다. 하지만 이들로는 부족해 노동력을 외부에서 들여와야 했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에 화교와 인도인 비율이 높은 원인 중 하나다. 15)
2. 의학과 제국주의: 생체 실험의 대상이 된 약자들
생체 실험의 대상이 된 이들은 주로 제3세계 사람들과 서구 사회 소수자들이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식민지 사람들이 주요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이 연구 결과들은 식민지 사람들의 삶을 낫게 만들었을까? 그런 측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선진국 사람들이었고, 식민지 출신의 사람들은 여전히 질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가 소외열대질환(Neglected Tropical Disease)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열대지방에서 주로 발생하는 20개 질병을 소외열대질환으로 통칭한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말라리아는 2022년 세계적으로 2억5,000만 건 정도 발생했으며, 이 과정에서 약 61만 명이 사망했다. 전체 감염자의 94%, 사망자의 95%가 아프리카에서 발생한다. 그중에서도 말라리아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나이지리아, 콩고민주공화국, 우간다, 모잠비크에서 발생한다. 5세 미만의 아이들이 전체 사망자의 78%를 차지한다. 22-4)
특히 아프리카의 상황이 이렇게 나빠진 데는 제국주의 시절 서양의 책임이 크고 그 가운데 당시 의학의 책임이 상당하다. 물론 제국주의 침략 이전이라고 이런 열대 질환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식민 지배 과정에서 양상이 바뀌었다. 대규모로 농장을 만들고 삼림을 벌채하고 광산을 개발하면서, 말라리아모기 등 질병 매개체의 서식지가 확대되었다. 강제 노동과 대규모 이주 등으로 질병이 더 쉽게 퍼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고, 선주민들의 공동체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전통적 방식의 질병 억제 방법이 함께 무너졌다. 이렇게 식민지 경제체제에서 급격한 도시화는 위생 문제를 악화시켰다. 그리고 제국주의는 식민지 자원을 대규모로 착취했다. 식민지 선주민들은 더 빈곤해지고 이에 따라 건강 상태가 나빠졌다. 게다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식민지 시대 의료 체계는 주로 본국에서 간 사람과 일부 식민지 엘리트를 위한 것이었지, 대다수 현지인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현지인들은 생체 실험 대상으로만 취급되었다. 24)
3. 과학과 제국주의: 자연선택은 적자생존이 아니다
19세기 중반 이후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은 아프리카, 중동과 동남아시아, 중남미 등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두고 제국주의의 최전성기를 누렸다. 이때 인종론은 유럽의 백인이 아시아인과 흑인을 지배하는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이데올로기의 하나가 되었다. 더 진화한 이들이 덜 진화한 이들을 가르치고 교화해야 한다고 말이다. 현대 과학으로 보자면 인종론은 과학적 정당성이 하나도 없다. 유전공학의 발달은 피부색이 까만 사람들 사이의 연관성보다 지역적 연관성이 더 크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준다. 물론 19세기에도 프란츠 보아스(Franz Boas)처럼 인종 간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는 인류학자가 있었지만,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19세기의 인종론은 이제 과학적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러나 사회적 영향력은 상당하게 남아 있다. 가령 미국에서 흑인은 백인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체포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렇게 주장한다. “인종은 없다. 인종차별만 있을 뿐이다.” 28-9)
허버트 스펜서가 '적자생존'이라는 용어를 쓸 때의 의미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때의 ‘진화’는 다윈의 생각과 완전히 달랐다. 다윈의 진화란 ‘진보’나 ‘발전’이 아니라 아무런 목적이 없는 자연 현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스펜서는 다윈의 진화론을 받아들이면서 진화는 곧 진보이고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 여겼다. 스펜서로서는 좀 억울한 면이 있다. 그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확대 정책, 전쟁과 군국주의에 반대했다. 군사적 사회에서 산업적 사회로의 진화가 발전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사회진화론’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그 뒤 다른 식으로 쓰였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사회학자 벤저민 키드(Benjamin Kidd)는 《사회 진화(Social Evolution)》에서 서구의 제국주의적 팽창을 정당화했다. 열등한 인종에 대한 우월한 인종의 지배가 진보의 필수 요소라는 것이다. 그에 따라 유럽의 식민 지배를 ‘문명화의 사명(Civilizing mission)’이라고까지 이야기했다. 31-2)
2부 현대 자본주의와 과학
4. 현대 자본주의와 거대과학: 거대 기업이 주도하는 거대과학
맨해튼 프로젝트는 하나의 분기점이었다. 바로 거대과학(Big Science)의 출현이다. 거대과학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는 우주 탐사도 입자물리학도 핵융합도 아닌 군사다. 어떤 이들은 군대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연구하고 개발한 기술이 다른 부문에 활용되면서 인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이야기한다. 이를 ‘스핀오프(spin-off)’ 기술이라 하는데, 군사용 연구를 정당화할 때 자주 인용된다. 스핀오프 기술이 꽤 있다. 대표적인 예가 흔히 ‘GPS’라 부르는 위성항법시스템이다. GPS는 위성항법시스템 중 미국국방부가 개발해 관리하는 범지구위치결정시스템(Global Positioning System)의 약칭이다. 그런데 현재 위성항법시스템은 미국의 GPS 하나만이 아니다. 러시아의 글로나스, 유럽연합의 갈릴레오, 중국의 베이더우 등 지구 전체를 담당하는 4개의 위성항법시스템이 있다. 이유는 단 하나, 원래 군사용이기 때문이고 최초 개발국인 미국이 GPS 운영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37-8, 40, 42)
이미 개발된 군사 기술을 민간에 적용하는 것이 나쁘다는 주장이 아니다. 스핀오프 기술을 예로 들면서 군사 기술 개발에 막대한 돈과 인력을 쏟아붓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스핀오프는 예외적인 사례일 뿐이다. 대부분의 군사 기술은 민간에 적용되기 어렵거나 적용 과정에서 막대한 추가 비용 및 시간이 소모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서비스와 제품은 항상 가성비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군은 성능과 효과가 우선이고, 비싼 가격이나 다른 문제점은 쉽게 감내한다. 무엇보다 스핀오프 기술에 대한 강조는 목적과 수단의 전도라는 윤리적 문제를 외면한다. 앞서 말했듯이 정부는 나중에 다른 용도로 쓸 것을 염두에 두고 군사 기술을 개발하지 않는다. 더구나 그런 기술 개발에 막대한 국가 예산을 투입한다. 이는 더 시급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인적·물적 자원을 군대를 위해 전용하는 행위다.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 기술이나 난치병 치료법 개발, 환경 보존 등에 투여할 예산을 빼앗는 셈이다. 42-3)
5 의학과 보편적 건강권: 사람이 특허보다 중요하다
국경없는의사회는 199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이 상금이 시작이었다. 마침, 아벤티스가 수면병 치료제 생산을 중단한 시점이었다. 기존 다국적 제약 회사를 통해서는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하는 질병의 새로운 치료제 개발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를 어떻게든 극복하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는 노벨상 상금을 종잣돈으로 비영리 연구개발 조직인 소외질환의약품개발이니셔티브(DNDi)를 결성했다. 목표는 소외열대질환에 대한 치료제를 개발하고 기존 치료제를 개선하는 것, 개발한 치료제를 저렴하게 공급하는 것, 그리고 개발도상국의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DNDi는 상업적 이익을 배제하고 공공성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비영리 모델을 채택했다. 그리고 현장의 이해관계자들과의 협력에 주력하고 현지의 필요성을 기반으로 환자 중심의 연구를 주요 지침으로 삼았다. 이를 통해 DNDi는 수면병, 리슈마니아증, 샤가스병, 말라리아, 소아 에이즈 등 다양한 소외 질환 치료제 개발에 성공했다. 58-9)
의약품 특허 문제의 본질은 인간의 생명권과 건강권이 시장 논리와 사적 이윤 추구에 종속된다는 점에 있다. 제약 회사들은 신약 개발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므로 이를 회수하기 위해 특허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신약 개발의 시작은 공공 연구 기관들의 기초연구다. 수십 년간의 공공 투자로 개발된 기술이 민간 기업의 특허권으로 독점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게다가 제약 회사들의 연구개발비는 항상 과대 계상되는 경향이 있다. 마케팅 비용이나 임원 보상이 연구개발비보다 더 큰 경우도 많다. 근본적으로 의약품을 하나의 ‘상품’으로만 보는 것 자체가 문제다. 공적 자금이 투입된 연구 성과는 공공재로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제약회사가 가격을 맘대로 정할 수 없도록 규제해야 한다. 약값이 인간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수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개발도상국에 대한 특허권 행사를 제한하고 강제실시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의약품을 인류 공통의 자산으로 관리해야 한다. 62)
6. 특허와 자본: 신자유주의에 포섭되는 과학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힘과 가속도의 법칙은 과학 혁명의 완성이자 근대 물리학의 시작이지만, 그의 말처럼 혼자 이룬 것이 아니다. 당시 과학자들은 누가 먼저 발견했느냐를 두고 피 터지게 싸웠지만, 자신이 이룬 결과물을 이용해 다른 이가 실험하고 응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아니 관대했다기보다 너무 당연해서 시비 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그 당시 과학자들이 품이 넓고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당시 과학은 돈이 되지 않았다. 지금은 과학 연구를 토대로 해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이 기술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그러나 18세기만 하더라도 과학과 기술, 과학과 공학은 완전히 남남이었다. 예를 들어 산업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방적기와 방직기 기술, 증기기관의 개선 등은 당시 과학과는 상관없이 오직 기술자들이 맨땅에 헤딩하듯이 만들어 냈다. 64)
20세기 중반 이후 과학과 기술의 경계가 불분명해졌다. 이것이 과학인지 기술인지 판단하기 애매한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자 특허 문제가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제조 공정이나 화학 공정 관련 기술, 기계장치 등이 주된 특허 대상이었지만, 20세기 중후반이 되자 유전자조작 기술, 회로 설계, 생물학적 처리 방법,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알고리즘 등 대상이 다양해졌다. 물질특허와 유전자특허, 그리고 천연물질특허로 특허 대상이 확대되었다. 현대 화학 산업에서 물질특허는 대단히 중요하다.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감광제, 디스플레이용 발광 물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는 많은 제품이 물질특허의 보호 대상이다. 제약 산업의 경우, 세팔로스포린 같은 항생제나 발사르탄 같은 혈압 약은 물질특허 덕분에 강력한 시장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제약 회사는 에버그리닝(Evergreening) 전략이라고 해서, 원래의 제품에 대한 사소한 변형을 특허로 등록해 특허를 연장하고 있다. 65-6)
어떤 표준을 구현하는 데 필수적인 특허를 표준필수특허라 한다. 표준필수특허는 기술의 공공재적 성격을 무시한다. 특히 통신이나 인터넷과 같은 기반 기술들은 현대 사회의 필수 인프라로,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고 표준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소수 대기업이 표준필수특허를 독점하면서 이러한 필수 기술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 다음으로, 표준필수특허는 글로벌 불평등을 심화한다. 선진국 대기업이 대부분의 핵심 특허를 보유하고 있어서 개발도상국은 계속 높은 특허 사용료를 내야 한다. 이는 기술 종속을 심화하고 국가 간 경제적 격차를 확대하는 결과를 낳는다. 마지막으로, 표준필수특허는 공공성을 해친다. 표준필수특허 대부분에는 공공기관의 기여가 핵심적이다. 지금의 특허 제도는 발명가도, 소비자도 보호하지 못한 채 자본의 이윤 추구 수단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이제 특허 문제는 기업을 넘어 과학과 기술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69-71)
3부 민중의 과학
7. 과학기술의 이데올로기: 과학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과학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근대 이래로 계속되었다. 이런 낙관적 전망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핵폭탄의 개발은 과학기술이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을지를 보여 줬다. 이런 걱정 속에서도 과학기술을 통한 문제 해결이라는 믿음은 여전했다. 오히려 과학기술이 만든 문제를 또다시 과학기술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더 커졌다. 예를 들어 환경오염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자 많은 사람이 기술 발전을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기술 중심의 접근은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 기후 위기는 과도한 생산과 소비, 화석연료 중심의 산업구조가 근본 원인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런 과학만능주의가 종종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이 된다는 점이다. 기술적 해결책을 내세워 현재의 여론을 잠재우면서 실질적인 변화를 회피하는 것이다. 과학만능주의는 현재의 생산과 소비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 준다. 76-8)
기술결정론은 기술의 발전이 사회 변화를 일방적으로 결정한다고 보는 이론이다. 기술이 발전하면 생산력이 높아지고 높아진 생산력은 생산양식을 바꾸는데, 이런 경제 영역의 변화가 사회구조를 바꾼다는 주장이다. 기술결정론이 특히 문제가 되는 분야는 노동이다. 산업혁명 시기를 보면 이런 측면이 잘 드러난다. 당시 방직공과 수공업자의 일자리는 기계의 도입으로 사라졌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물류 창고의 자동화를 두고 기업들은 ‘스마트 물류’나 ‘디지털 혁신’이라 부른다. 물류 자동화는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늘어나는 물류량과 빨라지는 배송 속도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적 혁신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 과정을 더욱 강하게 통제하고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수단이다. 그런데 이런 기술 도입 과정에서 효율성만을 강조할 뿐 노동자의 건강이나 작업장의 민주성 같은 가치는 고려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변화를 기술 발전의 필연적 결과인 것처럼 포장한다는 사실이다. 79-80)
8 과학과 커먼즈: ‘과학의 로빈 후드’ 혹은 ‘과학의 해적 여왕’
데이터는 다른 정보들처럼 일종의 권력이다. ‘정보 비대칭’은 기회의 비대칭으로 이어지고, 이는 권력이 된다. 정부와 대기업은 데이터 개방을 이야기하지만, 공개되는 데이터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페이스북이나 구글 같은 기업들은 더 노골적이다. 이들은 해당 사이트에서만이 아니라 사용자의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을 추적하고 데이터화한다.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를 기업은 알고리즘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더 정교한 행동 조작과 이윤의 도구로 활용한다. 플랫폼 회사들이 제공하는 ‘약관’에 따르면, 이런 데이터를 기업들끼리 서로 유상으로 혹은 무상으로 제공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오픈 데이터 운동은 데이터 공개를 넘어 데이터를 통한 권력관계를 재구성하는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시민은 자신의 데이터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고, 권력기관이나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에 대한 민주적 통제 장치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이는 디지털 시대, 민주주의의 재구성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89)
이제 오픈 데이터 운동은 데이터 최소화의 원칙, 동의와 통제권 중시, 차등적 접근, 알고리즘 투명성을 주요하게 강조한다. 첫째, ‘데이터 최소화’에 대해 살펴보자. 데이터 최소화가 필요한 이유는 데이터를 많이 모을수록 해킹이나 유출 시 피해가 커지기 때문이다. 둘째, ‘동의와 통제권’ 중시는 데이터를 모으는 쪽, 그러니까 주로 정부 기관이나 기업과 제공하는 쪽의 불평등한 관계를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 셋째, ‘차등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는 프라이버시와 공익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다. 모든 데이터를 완전히 공개하면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며, 완전히 막으면 공익적 활용이 불가능해진다. 이는 의료나 범죄 통계 등 민감한 개인 정보를 다룰 때 주요하게 나타난다. 넷째, ‘알고리즘 투명성’ 문제를 살펴보자. 알고리즘 투명성이란 알고리즘이 특정 집단을 차별하지 않는지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존의 채용 알고리즘이 여성을 차별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네 가지 원칙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91-2)
9 민중의 과학: 무엇을, 왜,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적정기술’이란 말을 들으면 대개 손 펌프나 정수기, 태양광 조리기 같은 간단한 기계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적정기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값싼 기술’을 만드는 것이 주요 목적은 아니었다. 1973년 영국의 경제학자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Ernst Friedrich “Fritz” Schumacher)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에서 ‘중간기술’ 개념을 제시했다. 당시 제3세계 국가들은 서구의 거대 기술을 도입하느라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도입된 기술은 현지의 필요와 조건에 맞지 않았고, 소수 엘리트만 이용할 수 있었다. 슈마허는 이런 상황에서 현지의 자원과 기술력으로 만들 수 있으면서 전통적인 방식보다 생산성이 높은 ‘중간’ 정도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슈마허는 기술의 수준 문제만 얘기하지 않았다. 그는 거대 기술이 자본 집중과 중앙 집중을 낳으며 이는 결국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여겨, 지역 공동체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기술을 제안했다. 103-4)
빈곤이나 불평등은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이제 일부 활동가들은 적정기술을 사회운동과 결합하고자 한다. 인도의 나브다냐(Navdanya) 운동은 유전자조작 종자에 맞서 토종 종자를 지키는 운동을 하면서, 동시에 농민들의 자립적 기술 개발을 돕는다. 결국 우리가 다시 해야 할 질문은 ‘누구를 위한 기술인가?’이다. 적정기술 운동이 처음 제기했던 문제의식, 즉 기술이 소수가 아닌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이는 값싼 기술을 보급하거나 첨단 장비를 갖춘 공간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 기술의 생산과 활용 과정 전반에 대한 민주화가 필요하다. 기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을 넘어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그것을 어떻게 만들고 사용할 것인지를 함께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 적정기술의 미래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얼마나 더 확장하고 심화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105-6)
10 소수자와 과학: 인공지능의 편향된 공부법
한국에서 전동휠체어가 급속히 확산한 결정적인 계기는 2003년 국민건강보험 급여 품목이 되면서부터다. 이에 더해 정부 지원 정책이 확대되면서 보급 속도가 빨라졌다. 휠체어가 계단을 이동할 수 있도록 기술 혁신이 이루어지면 어떨까? 실제로 그런 기술을 개발하는 곳이 있다. 그러면 이동 문제가 해결될까? 이런 기술의 개발은 한편으로는 환영해야 한다. 계단을 오를 수 있는 전동휠체어가 삶의 질을 바꿀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기술로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은 사회적 문제를 개인에게 돌리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기술의 도입보다 저상버스를 전면적으로 도입하고, 지하철마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모든 건물에 경사로를 설치하고, 장애인 전용 콜택시를 늘리는 것이 장애인에게 훨씬 더 필요하다. 이것은 사회의 의무다. 사회가 해야 할 몫을 장애인 개인에게 맡기는 태도는 올바르지 않다. 기술 개발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기술 개발을 핑계로 지금 해야 할 일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112-3)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기술 발전의 방향이다. 지금의 과학기술은 ‘더 많은 생산’, ‘더 많은 소비’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에너지 소비는 늘어난다. 인공지능 서버를 돌리는 데 드는 전력량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고, 메타버스나 가상현실 기술이 상용화되면 전력 소비는 폭증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기술 발전을 불가피한 것처럼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기술의 발전 방향이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기술 발전의 방향은 사회적 요구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배터리 효율을 높이기 위해 투자하는 것처럼, 사회가 요구한다면 기업들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기술을 발전시킬 수밖에 없다. 기후 위기 대응에서 과학기술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재생에너지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에너지 소비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결단의 문제다. 116)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