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_ ‘현대의 유행병’ 외로움 • 19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는 16세기가 되어서야 등장한 '외로운lonely'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두 가지로 정의를 내리고 있다. '1. 친구나 함께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슬픈, 동반자가 없는, 고독한. 2. (장소) 인적이 드물고 외진'. 이 가운데 '인적이 드물고 외진 장소'라는 두 번째 뜻만 1800년경 이전에 자주 사용되었다. 이보다 전에는 '외로움loneliness'에 대한 해석은 대체로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고립된 공간에 대한 물리적인 묘사와 함께 종교적 계시 그리고 인간의 죄악에 대한 도덕적인 설명과 관련되었다. 예를 들어, 성경에서 외로움이란 단어는 〈예수가 외진 곳으로 물러나 기도했다〉(누가복음 5장 16절)와 같이 '다른 이들에게서 따로 떨어져 있었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새뮤얼 존슨조차 그의 《영어사전》에서 '외로움'을 순전히 홀로 있는 상태('홀로 있는' 여우) 혹은 동떨어진 장소('후미진 바위')로 묘사했다. 이 단어에는 (신체적인 상태 외에) 그 어떤 감정적인 의미도 내포되어 있지 않았다."(46-7)
"인구학을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은 외로움이 고도로 발달하고 세계화된 세속적인 후기 근대 사회에서 생겨난 직접적이고 불가피한 결과라고 보았다. 역사학자 키스 스넬은 외로움의 가장 의미 있는 원인이 대개 가족이 사망한 후 혼자 사는 데 있다고 했다." "사회적인 인구 이동이 외로움의 원인 중 하나인 것은 틀림없지만, '외로움'이 모두가 느끼는 감정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인구통계학적 변화와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점점 더 개인주의적이고 세속적이 되고 소외감을 느낄 만한 여러 가지 또 다른 중요한 요소들이 수반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에는 몸과 마음에 대한 근대의 과학적인 믿음 그리고 영혼을 어떤 해석의 근거로 삼는 일이 줄어들었다는 점 또한 포함된다." "찰스 다윈의 연구와 진화 생물학의 출현은 다양한 허구의 이야기와 사회적 메타포를 통해 표현되고 소통되었다. 개인에 관한 철학이 지배적이 되었으며 개인이 사회보다 중요해지고 사회와 대립하게 되었다."(58-60)
"찰스 디킨스의 작품은 무정하고 기계적인 산업 사회를 배경으로 외로움을 겪는 여러 유형, 특히 어린아이들을 그리곤 했다. 따라서 디킨스 소설의 남녀 주인공들(예컨대 《위대한 유산》의 핍, 혹은 《올리버 트위스트》의 올리버)은 자신을 황량하고 적대적인 세상에서 아무도 없이 혼자이며 버림받고 친구도 없는 존재로 인식했다. 이러한 인물들을 통해 19세기 산업에 대한 메타포 안에서 심리적인 모순점에 사람들의 이목을 의도적으로 집중시킬 때가 많았다. 한편으로 노동자 계급은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작업해야 했으며 이는 형편없이 야만적인 대우를 받는 사람들을 포함해 모든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았다. 실수나 나약함 때문이든 냉혹한 사회 구조나 불운으로 인한 것이든 사회 밖으로 내몰린 외로운 개인에 대한 시적인 묘사는 진화생물학의 원리와 마찬가지로 초기 정신의학의 대상인 개인(불가분의 실체이며 한계가 있는 인간이 세상과 맞서는)의 출현과도 잘 맞아떨어진다."(62)
2장 _ 피에 새겨진 질병?
"혼자가 아닌데도 외롭다고 느껴서 생기는 불안은 고독과 외로움의 근본적인 차이와 관련 있다. 이것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다른 이들과 공통점이 하나도 없음을 인식하는 것으로,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플라스는 일기장에 외로움이 마음뿐 아니라 몸 전체를 망가뜨리는 것 같다고 썼다. 그러면서 외로움이 '마치 혈액에 생긴 병처럼 자기 안의 불명확한 중심'에서 비롯됐으며, 너무 온몸에 퍼져 있는 바람에 정확히 어디부터 시작된 건지도 알 수 없다고 쓰고 있다. 외로움은 감염되는 '전염병' 같았으며, 이 용어들은 외로움을 유행병으로 개념화하는 데 자주 쓰이게 되었다. 플라스에게 외로움과 향수병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었다. 향수병은 플라스가 자신을 지배하는 '쓰라린 감정'에 대해 다른 이들에게 설명하기에 적합한 말이 되었다. 향수병에는 외로움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가 없었고, 사람들이 동조할 가능성도 훨씬 컸기 때문이다."(85-6)
"플라스의 경우에서 보듯이 자살에 대해 생각하고 종종 언급하며 관념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21세기 외로움에 관한 연구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플라스의 글에는 특히 성별이나 여성과 관련 있는 생식력을 나타내는 은유가 여기저기 눈에 뜨인다. 기형인 아이들을 낳고, 강간당하고 폭행당하는 내용을 썼는데, 이런 폭력적인 이미지는 플라스의 개인적인 편지에서도 그렇고 창작글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다. 그녀는 결혼했든 안 했든, 바쁘고 창의적이고 행복하고 현실에 만족해하는 여성들 사이에서 자신은 정도에서 벗어난, '사랑할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여자라고 느꼈다. 마음속으로는 늘 다른 이들과 비교하는 행동은 외로운 이들에게 뚜렷하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외로움을 타는 사람들이 강한 인맥을 지닌 이들보다 사회성 점수가 더 낮은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더 인기 있고 사회 참여도 잘하며 더 행복하다는 믿음은 외로운 이들이 하는 '혼잣말'에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다."(89-91)
"플라스는 외향적으로 '보이기' 위해 애썼다. 내향성과 신경증 사이에 부정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플라스는 삶을 함께할 동반자를 선택해야 한다는 점과 모든 것이 그 판단에 달렸다는 사실 그리고 그 책임(남자들이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과 함께) 때문에 억눌리고 확신이 없었으며 그러한 문화에 스며들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토록 간절히 글을 쓰고자 하면서 어떻게 엄마와 아내로 만족할 수 있겠는가? 어떤 특별한 종류의 외로움은 이렇게 사회적 기대와 자기 정체성 사이의 괴리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남들과 다르고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은 성인이 되고 노년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과 똑같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사실 창의성과 정신질환이 연관된 것이라는 생각은 낭만주의 시대부터 영국 문학과 문화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여기에는 상실감 또한 내포되어 있다. 상실감은 21세기의 가장 심오한 외로움의 지표로, 외로운 마음과 사랑의 추구가 바로 그것이다."(94-5, 100)
3장 _ 외로움과 결핍
"'영혼의 동반자soulmate'라는 단어를 문헌에 처음 사용한 이는 낭만주의 시인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였다. 《젊은 여인에게 보내는 편지》(1822)에서 콜리지는 결혼이 여성들에게 '자살과 같은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기에 콜리지는 불행해지지 않으려면 '집이나 멍에를 함께 지고 가는 짝'이 아니라 '영혼의 동반자'를 만나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구에서 '진정한 사랑'의 전형이자 척도가 된 영혼의 동반자라는 개념의 함정은 분명하다. 모든 이에게 특별한 누군가가 있고 자신의 온전함이 그 사람을 찾느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극단적이다. 또한 이로 인해 인지와 현실 사이에 차이가 발생하며 그 유일한 '한 사람'을 찾지 못한 이들의 경우 실패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이런 생각이 공동체 의식을 증진하는 것도 아니다. 단 한 명의 '상대'를 찾아야 하는 거라면 로맨틱한 사랑은 특히 진화생물학이나 애인이나 배우자 탐색과 연관된 개인적인 경험이라 할 수 있다."(110-2)
"《폭풍의 언덕》과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모두 여성이 '영혼의 동반자'나 의미 있는 상대를 찾으며 그 상대 없이는 외로워진다는 설정이다(한편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정상적인' 사회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두 소설 모두 자연의 속성과 가깝거나 그로부터 동떨어진 존재이기도 한 위험스러울 정도로 관능적이며 음울하고 위협적인 남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여자 주인공인 캐서린과 벨라는 모두 사회 관습과 개인적인 바람에 대한 상처를 지니고 있다. 그들의 선택은 성적이고 정서적인 만족 그리고 무감동하나 순응적인 삶 사이에 놓여 있다. 이러한 선택은 눈에 보일 것인가 말 것인가, 위험에 처할 것인가 안전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강렬하고 로맨틱한 이상형이 매력 있고 (그리고 확실히 '유일한') 투쟁할 만한 사랑의 형태라는 생각을 내면화하고 불멸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만족이 결여되거나 이상형을 잃으면 감정적으로 황량하고 외로워지는 것이다."(116-7)
4장 _ 배우자를 잃은 상실감
"노인들, 특히 80이 넘고 가까운 이들과의 이별이 빈번해지는 '초고령 노인들'에게는 상실로 인한 고통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외로움과 관련된 물건(의자뿐 아니라 슬리퍼나 찬장, 사진, 그릇이 될 수도 있다)은 노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가족이나 사랑하는 이들과 관련된 물건들이 그들이 겪은 상실 혹은 애석하게도 잃어버린 사회적 정체성을 연상시키는 기념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외로움은 그리움과도 연결된다. 그리움에는 상실한 것에 대한 애도가 포함되며, 한때는 삶의 핵심이 되었던 사람들(친구, 아이들, 배우자)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 또한 들어간다. 하지만 그리움이 꼭 외로움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는 존재하지 않는 관계라 해도 한 사람의 마음속에 간직한 관계의 조합을 통해 현재의 사회적 단절감을 조금은 완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수년 동안 이어지는 만성적인 외로움의 문제 중 하나는 이렇게 마음으로 그리는 관계를 회복시켜줄 기능이 없다는 데 있다."(139-40)
5장 _ 우울한 인스타그램 너무
"전보부터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모든 새로운 형태의 통신에는 그 사용과 남용, '오래된 사교의 방식'이 위협받는 것 아닐까 하는 불확실성과 공포가 늘 뒤따라왔다. 그러므로 좋거나 나쁜 영향을 만들어내는 것은 소셜미디어가 무엇인가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페이스북을 사용함으로써 사회적 지지와 영향력 행사, 다른 이들에게 배려받고 그들과 연결된 기분(이런 모든 것이 외로운 상태와 반대로 여겨진다)과 같은 긍정적인 유대감을 경험한 사용자들은 실제 생활에서도 그러한 유대감을 경험한다. 따라서 페이스북을 기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사용하는 것이 얼굴을 맞대는 사회적인 상호작용에서의 도피용일 때보다 더 유익할 것이다. 소셜미디어 사용을 통해 원치 않는 외로움과 같이 감정적인 고초를 겪는 경우는 온라인 세계가 물리적이고 구체적인 관계에 대해 보조적이거나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프라인 관계를 넘어서고 대체할 때다."(195-6)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주장 가운데 하나는 영국에서 18세기 이후 사교 모임을 가지며 개인을 상업화하는 것이 지배적이 되었으며 그 결과 외로움이 발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자신을 표현하고 소비하며 다양한 정체성을 만들고 네트워킹에서의 성공을 개인의 재산이라 여기는 소셜미디어의 몇몇 형태는 소외된 현대 개인주의의 증거로 볼 수 있다. 내가 외로움과 소셜미디어가 관련 있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소셜미디어 자체를 부정적이라고 하는 건 아니다. 반대로 디지털 세계에 개인과 사회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내의 결속에 대한 사회학적인 논의는 '정체성을 통한 결속identity bonds'과 '유대감에 기반한 결속bond-based attachment'을 구분하고 있다. 따라서 외로움에 대한 개입에서 시급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은 어떻게 소셜미디어를 성공적이고 협조적인 방식으로 활용하느냐, 즉 '정체성'이 아니라 '유대감'을 토대로 활용하느냐가 될 것이다."(202-5)
6장 _ 똑딱거리는 시한폭탄?
"노화와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은 역사를 초월해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초반의 외로움에 관한 정신적 공포에 속하는 것으로 문화적인 고정관념이라 할 수 있다. 노인의 신체, 정체성, 성생활, 경험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놀라울 정도로 찾아보기 힘들다. 역사적으로 노화에 관한 문제는 최근에서야 관심을 끌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인층의 외로움에 관한 사료가 적다는 것도 그리 새삼스럽진 않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작가들은 노년에 대해 정서적인 부담이나 고립의 측면이 아닌 신체 건강에 대한 교훈적인 이야기를 주로 썼다. 즉 젊은 시절부터 자신을 돌보고, 지나친 격정은 자제하며, 노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죽음을 향한 여정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다. 젊음에 집착하고 가능하면 오랜 젊음을 유지해야 한다는 문화적인 서사를 지녔던 서양의 후기 근대사회에서는 오히려 이렇게 노년을 '준비'하는 의식이 존재하지 않았다."(226-7)
"노년의 외로움이 보편적이거나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 개인, 가족, 사회가 겪는 경험의 특성뿐 아니라 노화와 사회 복지에 대한 지배적인 사고가 어떠한가에 달려 있는 문제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조언했듯 노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외로운 이보다는 '외롭지 않은' 사람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노년에 외롭지 않은 상태에 주목한다면, 개별적인 차이점을 고려하는 한편 의료 보기 차원에서 적절한 개입 방식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어떤 자료를 비교해보더라도 노화가 일어나는 것은 개인의 선택권이 없어지는 상황에 놓일 때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여건에서는 외로움과 노년의 병약함까지 생길 수 있다." "노인들을 요양원이나 다과회, 댄스파티에 모아두는 것이 경제적으로는 이득인지는 모르지만 그것만으로 노인들의 외로운 감정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노년의 외로움에 대한 접근법을 개발하는 데 가장 중요한 단계 중 하나는 그 다양성을 더 제대로 이해하는 데 있을 것이다."(234-6)
7장 _ 노숙자와 난민
"노숙자들을 박애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정치적인 '문제'로 인식하게 된 것은 21세기 이후부터였다. 1980년대 영국에서는 노숙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주택가격 인플레이션, 임대주택 매각, 실업률 상승, 정신 건강 및 약물 관련 문제 증가, 16~17세 청소년의 주택수당 요구 금지 등의 이유로 거리에 나앉는 사람의 수가 늘어났다. 1980년대 즈음에는 빠른 도시화의 결과로 노숙자 문제가 정치적으로도 견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노숙자는 사회와 가족의 지원과 유대가 부족한 상황과 관련 있으며, 이것이 지금 논의하고 있는 사항 중 가장 핵심이다. 노숙에는 그에 수반되는 우울, 불안, 외로움, 박탈감, 가난, 학대의 반복과 함께 단순히 집이 없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비록 일반적인 주택에 대한 논의에서도 암묵적으로 노숙에 대해 그저 집이 없는 상태로 보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약물 중독, 정신질환, 외로움이 높은 빈도로 발생하는 등 노숙자 문제에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250-3)
"난민과 망명 신청자들은 자신들에 대한 사회의 고정관념과 함께 정치적·사회적·경제적인 압박을 받는 유별난 집단이 되어버리기 쉽다. 또한 세계적인 분쟁과 기후 변화 덕에 점차 여기저기서 눈에 띄는 집단이 되었다." "난민들은 집과 가족, 친숙한 환경, 집과 연결된 감각적인 경험(풍경, 소리, 향)에서 동떨어져 있다. 물질문화는 개인의 정서 생활과 외로움을 구성하는 데 매우 중요하며, 정체성이 담긴 이러한 물질의 상실은 공동체 인식의 결여와 함께(또한 심지어 많은 경우 사회적으로 배척을 받는 상태에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게 꽤 치명적일 수 있다. 소외된 기분에서 생기는 외로움은 구체적으로 젊은 난민이나 망명 신청자, 특히 다른 이들에게서 고립된 채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이들에게서 발견된다. 웰빙이나 사회관계, 외로움보다는 외상과 실질적인 고려사항에 더 초점을 두는 보건 복지 서비스 차원에서는 난민과 망명신청자의 외로움과 같은 문제는 쉽게 간과될 수 있다."(258-9)
8장 _ 결핍 채우기
"자기 정체성과 역사, 세상에서의 위치, 다른 이들과의 관계(과거, 현재, 미래에서의)는 음식, 책, 시계 무브먼트, 옷, 사진, 가구, 건물, 커텐, 일회용품 등과 같은 물질적인 제품들을 통해서 구조화된다. 말이나 몸짓과 더불어 사물은 우리의 신체적·정신적 세계를 구축하고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정서적인 체험을 드러내는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사물 즉, 물질적인 대상은 우리가 누구이며 세상에서 우리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 나타낼 수 있으며, 특히 우리의 정체성이 손상되고 표류하게 될 때(이를테면 난민이나 이주민들의 경우처럼) 그 의미가 가진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신경과학자 존 카시오포와 패트릭 윌리엄은 외로움을 개인이나 집단이 생존을 위해 어떤 것을 필요로 한다는 표시인 일종의 배고픔과 비교했다. 신체적인 배고픔은 실제 체험이라는 물질적인 특성뿐 아니라 개인의 몸을 둘러싸고 사회적인 경험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생활 습관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다."(268-9)
"외로움은 물질주의로 인한 산물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물질주의를 증가시키기도 한다. 외로움과 물질주의 간에 위험한 연결고리가 형성되어 순환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더 많은 소비재를 갈망하고 손에 넣을수록 사회적인 유대감에 대한 욕구가 줄어들며,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유대감을 덜 경험할수록 소비재를 더 원하게 된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들은 사람들 사이에 '관계'와 연결에 대한 기본 욕구가 있으며, 물질적인 상품들로 귀결되는 욕구 또한 인간적인 관계로 대체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개인적인 자기 표현이 아닌 사회 결속을 추구할 때도 소비 행위가 일어난다. 사회적인 정체성과 관련된 물건의 소유욕은 자신들의 공통된 뿌리와 유산을 공고히 하고 기념하기 위해 특정 물건의 소유에 의존하는 이주민 집단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가족'이나 지인, 전통 또는 개인의 삶에 계속해서 의미를 부여해주는 특정한 물질적인 대상은 공동체를 유지하고 지속시키기도 하는 것이다."(275-7)
"감정을 일으키는 사건과 인지적인 맥락은 모든 감정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사랑에 대한 모욕으로 인한 노여움에 굴욕감과 슬픔이 함께 물들 수도 있고, 상대 운동선수에 대한 질투가 실망과 분노와 연결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감정 상태도 그대로 변함없이 인식과 주변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없다. 그러나 외로움은 다른 대부분의 감정 상태와 달리 사회적으로 이해될 만한 몸짓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외로움을 드러내는 몸과 관련된 자세나 행동은 매우 다양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행동 가운데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해석하지 못하는 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는 제 기능을 못 하는 코딩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몸짓 언어를 읽고 파악하는 것은 결국 사회적인 기술이다. 강제적으로 고독한 상태에 있었거나 사회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할까 봐(혹은 거부당할까 봐) 긴장하거나 걱정할 때 정서적인 소통이 어려워질 수 있다."(294-5)
9장 _ 쓸쓸한 구름과 빈 배
"낭만주의적인 개인주의 맥락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된 외로움은 사회로부터의 의식적인 분리와 고독을 통해 성스러운 자연과의 교감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낭만주의자들이 본질적으로 비사교적이거나 영원히 고독하길 원하는 것은 아니다. 한때는 그런 생각이 널리 퍼지기도 했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들은 워즈워스가 그랬던 것처럼 자연과 교감하기 위해 고독한 시간을 보내고 자기 경험을 다시 생각해보는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다른 시인들이나 작가들과 함께 어울리고 도시의 흥겨움을 즐길 때는 무척 사교적이기도 했다. 사실 낭만주의 작가들에게 글 쓰는 행위는 개인적·영적인 가치뿐 아니라 사회적인 기여를 하는 것이기도 했다. 또한 기계화, 도시화, 산업 혁명 그리고 윌리엄 블레이크가 말하는 '어둡고 사악한 공장들'로 인해 누군가에게는 잔혹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자신의 길을 어떻게 헤쳐나갈지에 대한 개인의 물음에 도움이 될 만한 답을 찾는 일인 것이다."(305-8)
"버지니아 울프에게 외로움은 고통스러운 감정 상태이긴 하지만 창작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외로움은 〈너무나 고통스러웠고······늘 어떤 공포가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상의 번잡한 소리와 친구들, 지인들에 둘러싸인 채 경험하는 것과는 다른 '진실'을 느끼고 전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울프는 많은 작품에서 고독과 외로움에 대한 글을 썼으며, 창작을 위해 홀로여야 하는 내적인 필요와 함께 '외적으로' 사회적인 면을 유지하고자 하는 지속적인 시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울프가 시간의 흐름에 집착하는 것(그녀의 소설 《등대로To the Lighthouse》에 가장 분명히 표현되어 있다) 또한 제대로 검토된 적 없는 시간과 외로움의 관계를 감안한다면 당연한 행동일 수 있다. 시간은 우리가 행복할 때보다 지루하거나 슬플 때 혹은 고통스러울 때 더 천천히 흐르는 것 같다. 그리고 시간에 대한 이러한 주관적인 경험은 외로움에 대한 인식과 관련이 있다."(312, 315-6)
"창의력을 추구하는 예술가와 작가들에게 내향성과 고독은 대체로 필수적인 요소다. 고요함과 고독에는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런 가치는 전적으로 주관적인 것이다. 외로움이 파괴적인 반면 회복 기능을 발휘하기도 하는데, 이것도 스스로 선택한 외로움일 경우에 한정된 것이다." "고독, 심지어 외로움의 추구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일시적이라는 것이다. 회복 혹은 창작을 위해 사회에서 물러나 있는 행동은 개인적인 집중과 심리적·예술적인 어떤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매우 필수적이지만, 그렇다고 영구적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일상에서 고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21세기에 넘쳐나는 '마음챙김' 앱과 점심시간을 이용한 명상과 관련된)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 경우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 단기간의 스스로 선택한 외로움이 (혹은 고독이) 매일 이어지는 들리는 거라곤 똑딱거리는 시계 소리밖에 없는 강제적인 고립과 과연 같을 수 있겠는가?"(323-5)
결론 _ 신자유주의 시대와 외로움의 재구성 • 327
"개인주의적인 사고, 세속주의, 과학과 의학 사이의 경쟁, 철학, 경제적 담론이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상황에서 '외로움'이라는 용어는 1800년대 세계적인 대변화로 인한 소외의 특성뿐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감정 체험의 출현을 반영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아는 자애로운 신은 더는 존재하지 않으며, 경쟁적인 개인주의가 끈질기게 확산하는 상황 속에서 하나의 빈 공간이 생겨났고, 그 안에서 개인은 홀로 고립되었으며, 가족 또는 변화의 물결을 타고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 소셜 네트워크에 의존하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신에서부터 천사와 왕을 거쳐 농부와 땅에 이르는 모든 개체에 대하여 위계적인 질서가 세워져 있던 '존재의 대사슬Great Chain of Being'을 만족스러운 상태라고 여기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 시대에는 '공공의 복지'가 우선시되었으며, 책임이 중요시되었다. 또 개인 또한 타인과 체제 그리고 자신을 보호해주는 초자연적 힘에 대한 유대감을 얻을 수 있었다."(336-7)
"'외로움이라는 전염병'에서 확실한 한 가지는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와 그에 따른 정신적인 공황 상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전염병으로 규정된 외로움은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전염이라는 말은 (감염과 마찬가지로) 문화적으로는 매혹적이지만(강력하고 쉽게 은유로 사용할 수 있으므로) 정치적·도덕적인 차원에서는 문제의 소지가 많다. '오염'이라는 단어의 부정적인 뜻이 연상된다면, 전염이라는 용어는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이민자들을 아주 몹쓸 질병으로 묘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건물이 있다고 해보자. 그 건물에 담긴 감정적인 언어는 소수민족을 바라보는 태도에 매우 파괴적인 결과를 일으킬 것이다. '외로움이라는 유행병' 같은 표현 역시 부정적인 사회적 반응을 유발한다. 유행병이란 말로 인해 사람들이 생물학적인 불가피성을 떠올리게 됨으로써 외로움이 문화와 환경의 산물이며 불가피한 인간 조건의 일부가 아니란 사실이 도외시될 수 있다."(3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