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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a35님의 서재
  •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 자미라 엘 우아실.프리데만 카릭
  • 24,300원 (10%1,350)
  • 2023-10-16
  • : 30,899

1 익숙한 세계_프롤로그


"이 책에서 우리는 좋은 이야기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이 부정의하고 서서히 몰락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무엇보다 우리는 이야기 뒤에 숨겨진 지렛대를 이해하고 변화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급진적으로radikal(어원적 의미에서 '근원을 파헤치는') 서사 문화비평을 하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는 인류 역사 자체를 인간의 영웅 여정이라고 간주한다." "인간의 서사적 진화로 말미암아 우리는 역사의 가장 큰 도전, 즉 우리 삶의 토대가 점진적으로 파괴되는 현상과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좋은 소식은 모든 영웅 여정에서처럼 이 문제의 해결책도 이미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모든 영웅 여정에서처럼 우리 안에 존재하는 해결책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도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영웅 여정에서처럼 우리가 모든 시련을 이겨내면 새로운, 이상적으로는 더 나은 세상이 우리를 기다린다."(20-1)


2 모험으로의 부름_구원자·악령·영웅


"미국의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1945년에 출판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수천 개에 이르는 전 세계의 신화와 전설, 이야기들을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하나의 패턴을 확인했고 이를 '단일신화Monomyth'라고 명명했다. 켈트와 아랍 신화, 인도와 그리스의 반신반인(半神半人), 그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독자적인 미국 원주민이나 토착민의 고대 이야기에서도 항상 같은 도식이 발견되는데 캠벨은 이를 서사 유전자Narrative Gene처럼 이해했다. 그 도식은 바로 육체적 모험인 외적 여정과 더불어 정신적 발견인 내적 변화다." "주인공은 우리를 대신하여 엄청난 모험과 대단한 감정을 경험하고 삶과 죽음을 위해 투쟁하며 최대의 행복과 불행을 경험한다. 주인공은 종종 온갖 위험을 무릅쓰지만 대부분 더 많은 것을 얻는다. 그런데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러한 모험을 감수해야 할까? 분명 우리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즐거움이란 보다 깊은 결속을 위한 매개체일 뿐이다."(27-9)


"영웅의 임무는 많은 사람의 무의식적 갈망, 특히 방향 설정, 사물의 질서를 꿰뚫는 통찰력, 인식을 향한 갈망에 대한 은유다. 본보기, 개척자, 우리 요구 사항과 자기애의 옹호자로서 영웅은 소원과 욕구 성취에 대한 희망을 구현한다. 영웅은 여정 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는 시련과 더불어 너무나도 인간적인 변화를 경험한다. 이러한 시련을 마다하지 않고 마침내 실패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로써 영웅은 우리의 무의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한다." "캠벨이 말했듯이 〈립 반 윙클, 카마르 알 자만, 혹은 그리스도가 실존했는지는 우리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세계 곳곳에 널리 퍼져 있고 여러 나라의 여러 사람에게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보편적 주제를 담고 있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실재했는지의 문제는 (···) 그저 부차적인 관심사일 뿐이며 그 안에 담고 있는 상징적 메시지를 가리기만 한다.〉"(29-31)


# 영웅 여정의 12단계

익숙한 세상→모험으로의 부름→거부→멘토→문턱(네오의 빨간 알약)→시험, 동지와 적→가장 깊숙한 동굴로 들어가기(악당들과의 대결)→영혼의 어두운 밤(깊은 좌절·상실)→칼을 움켜쥐다(극복)→귀로(영웅의 변모)→부활(마침내 변모한 영웅)→영웅의 금의환향


"영웅은 가장 중요한 인물이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 좋은 스토리에는 또 다른 필수 요소가 필요하며 영웅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는 적수antagonist다." "적수는 주인공을 보완하고 때로는 심지어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즉 적수는 우리 모두에게─주인공에게도─내재된 특정한 문제적 특성이나 이기심, 기형적 특성을 구현한다." "말하자면 적수는 언제나 영웅을 저지하고 이를 통해 줄거리를 진행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악당일 필요는 없다. 적수의 목적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가 사용하는 수단에 윤리 의식이 결여되어 있고 반성과 변화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그를 악당으로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적수는 더 많은 자질을 얻거나 약점을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주인공의 여정에 결정적인 장애물이 된다. 동시에 적수는 시스템과 동떨어진 바람직하지 않은 삶, 주인공이 맞서 싸워야 하는─그리고 실제로 주인공이 그렇게 생각하는─ 그릇된 길을 의미한다."(43-6)


3 거부_나는 어떻게 나만의 영웅이 되는가?


"원인과 결과에 대해 이해하면 우리 적응력에 가장 중요한 행동 원칙이 생겨난다. 즉 어떤 것이 그냥 그렇게 우리에게 닥치거나 이유 없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면 우리에게 위협적인 상태를 지속적인 발전과 변화─시행착오라고도 하는─를 통해 더 나은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적, 외적 변화를 통해서다.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웅 여정을 통해서. 하지만 우리 인간은 절제를 모르기 때문에 삶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이유도, 의미도 없다는 인식 뒤에 숨어 있는 '공백 공포Horror Vacui'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 모든 사람을 '인과 관계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쉽게 만족을 느낄 수 있다. 설명이나 이야기의 타당성은 우리가 왜 그것을 믿는지에 대한 수많은 기준 중 하나일 뿐이다. 인간은 그저 절반만 작동되는 잘못된 설명을 견디기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우연성을 견디기가 더 어렵다."(84-5)


"두드러진 이타심을 보이는 영웅에 대한 이상화는 선사 시대 부족에게 실존적 기능을 하고 있었다. 천적 외에 무엇보다 이기주의가 집단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희생적인 주인공이 승자가 되고 이기적인 사람이 패자가 되는 영웅 이야기는 이타적인 행동 규칙을 알리는 홍보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이야기는 그 기능과 효력처럼 계속해서 발전했다. 사랑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 번식이 진화생물학적으로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사랑 이야기는 사랑을 찾고 가꾸는 과정에서 문제해결 능력을 전수하는 좋은 수단이다. 이야기는 의미뿐 아니라 사회를 결속하는 효과와 복잡한 것을 단순화시키는 작용도 하지만 인지 놀이에도 도움을 준다. 이야기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모험할 수 있는 놀이터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이유다. 이야기에서는 죽임을 당하거나 부족을 영원히 잃지 않고서도 역할과 해결책을 시도하고 사회적으로 협의할 수 있다."(89)


"내러티브의 진화에서 더 흥미진진하고 더 인상적인 이야기가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이유는 객관적인 정보보다 박진감이 있어서 더 잘 전달되고 더 많이 이야기되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의 어느 시점부터 미화되거나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진화적 우월성으로 이어지는 생존 요인이 되었다. 말하자면 허구에 의한 생존Survival by Fiction이다. 그리고 곧 이야기는 우리가 서로에게 경고하거나 위로하는 방식, 우리가 스스로 세상을 설명하는 방식, 모든 인간이 자신에 대해 말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이야기를 만든다는 사실 그리고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은 개인의 의식적인 선택 때문도, 집단의 창의적 독창성 때문도 아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근본적으로 신경 구조에 의해 가능해진 세계관을 재현할 뿐이다. 우리는 모든 곳에서 이야기를 '찾으려고' 하고 '찾아야만' 하기 때문에 비록 추상적인 형태일지라도 곳곳에서 이야기를 발견한다. 우리 뇌는 이야기에 제대로 중독되어 있다."(98-9, 103)


"허구의 힘은 마법 같은 동일화를 통해 비로소 펼쳐진다. 왜냐하면 동일화를 통해 우리가 더 나은 자기 모습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지신을 영웅과 동일화하는 바로 그 순간에 이야기는 단지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일부가 된 우리 자신에 관한 것이 된다. 이는 축구를 볼 때와 어느 정도 비슷하다. 축구를 볼 때 우리가 어느 한 팀을 택하지 않는 한 잃을 것이 없다. 우리가 어느 한 팀을 택해야 비로소 그 팀의 패배를 걱정하거나 승리를 응원할 수 있다. 우리가 그 팀과 동일화하는 순간부터 '우리' 팀이 패배하면 우리가 패배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우리가 영광스럽게 투영하는 영웅이 승리하면 우리가 승리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주인공이 우리를 위해 난관을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승리와 패배를 경험할 때 그들은 이를 우리 입장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실러는 〈독자가 영웅처럼 따뜻해지든지, 아니면 영웅이 독자처럼 차가워져야 한다〉고 쓴 바 있다."(125-6)


4 멘토와의 만남_단어·문장·그림 : 이야기의 수단


"스토리Geschichte는 이야기되는 내용을 가리키며, 이야기Erzählung는 이것이 어떻게, 어떤 수단과 동기로 행해지는지를 나타내며, 내러티브Narrativ는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이야기가 전해지는지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나무 열매를 따 먹은 여자 때문에 낙원에서 추방당한 남녀에 대한 스토리의 경우 이야기는 유혹, 죄책감, 추방에 대한 것이고, 지배적 내러티브는 '여성은 위험하다'이다."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사건의 시간적 순서를 담고 있지만, 스토리는 사건을 완전히 다른 순서로 재현할 수 있다. 이로부터 완전히 다른 스토리가 생겨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지는 않는다. 반면 내러티브는 시대를 넘나들 수 있는 완전히 시간 초월적인 의미 캡슐이다. 이야기와 스토리는 놀라울 만큼 종종 서로 다른 문화에서 서로 다르게 변형되어 전해지면 서로 다른 커뮤니티와 집단에 잠재적 정체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사회적 결속은 이야기 차원이 아니라 호환될 수 있는 내러티브 차원에서 이루어진다."(162-4)


"이미지도 말 그대로 아이콘이 될 수 있으며 내러티브를 설정하고 전파할 수 있다. 현재 소셜 플랫폼Social Platform에서는 고유의 언어적, 시각적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문화는 지속적이고 거대한 변화를 거치고 있는 동시에 서사적 반복으로 인해 내재화되어 마치 개인적, 집단적 상징 이미지의 새로운 형태처럼 기능하는 고정관념 이미지를 생성한다." "가령 우리는 셀피를 찍을 때 우리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마치 이모티콘과 같은 표정을 짓는다. 즉 우리는 셀피를 말한다. 이모티콘을 사용할 때조차 우리는 발화 행위의 의미에서 주장하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그 순간에 이러한 웃는 얼굴이 우리 자신인 것처럼 행동한다. 우리의 소통적 자기 서사는 우리 자신의 이미지 관념으로 단순화되고 나아가 우리 자아의 관념이 된다. 말하자면 우리가 자기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 수단으로 소셜 미디어를 주로 사용할 경우 셀피는 매우 개인적인 우리 자신의 상징적 이미지라고 볼 수 있다."(192-3)


5 첫 번째 문턱을 넘다_인터넷은 우리의 서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게임은 참가자가 영웅으로서 얼마나 잘 해내고 있는지 즉각적인 피드백을 제공하여 수행적 자기효능감을 증폭시킨다. 그리고 이 점이 우리를 소셜 미디어로 이끈다. 찰리 브루커에 따르면 트위터는 〈자신의 개성을 느슨하게 표현하기 위해 흥미로운 아바타를 선택하고, 키보드를 반복적으로 두드리며 재미있는 문장을 만들어 팔로워를 끌어모으려고 하는 대규모 온라인 커뮤니티 게임이다.〉" "〈소셜 네트워킹은 끊임없이 즐거운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게임화했다.〉 우리는 '좋아요Like'와 댓글에 쏟아진 다른 플레이어의 관심에 동기를 부여받아 소셜 네트워킹이라는 게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그 규칙과 인과관게를 더 잘 파악하게 된다." "소셜 네트워크는 진정한 영웅 여정을 제공할 수 있다. 말하자면 주인공, 동맹자, 멘토, 적대자의 형식으로 게임과 매우 유사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동시에 우리 자신을 시험해볼 수 있게 해 주는 게임 메커니즘을 제시한다."(206-7)


"어떤 의미에서 보면 휴대전화는 자기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우리 자아의 연장된 팔이라고 볼 수 있다. 스마트폰은 우리가 자기 자신을 이야기하는 방식을 주도적으로 장악하고 결정적으로 확장했다." "소셜 미디어 환경에서는 정적 이미지도 언제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주 평범한 예로서 맛있는 음식 사진을 들 수 있다. 얼핏 보면 우리 눈에는 음식 사진만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디지털 청중의 시선으로 확장해서 보면) 쾌락주의, 차별, 소셜 미디어 특유의 부분 대중과의 놀이가 담긴 자기 서사를 보게 된다. 이러한 시각적 발화 행위는 우리가 어떻게 보여주려고 하는지, 우리가 해당하는 상황에 대해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를 보여준다. 말하자면 스마트폰은 이야기하는 원숭이인 우리가 글자나 그림문자, 사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코멘트를 달고 반응하는 자기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매체가 현재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계속 추가되는 각각의 이미지는 끝없는 영웅 여정의 한 걸음 한 걸음을 나타낸다."(212-4)


6 시험·동맹자·적_어떤 서사가 우리 세계를 결정하는가


"인간이라는 종의 특성상 진실을 위한 투쟁과 상호 신뢰 교환이 일찍이 우리를 자극해왔다. 상당수의 인류학 이론은 우리 인간이 언어와 이야기를 발전시킨 가장 첫 번째 이유가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며, 우리 뇌가 성장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타인을 더 잘 속이고 속임수를 더 잘 인식하기 위해서라고 가정한다. 성경에 따르면─프리츠 브라이트하우프트가 『변명의 문화Kultur der Ausrede』에서 설명한 것처럼─인간이 최초로 한 말조차 다름 아닌 변명이었다. 아담과 이브는 자신들의 견해를 대치시킴으로써 현실에 대한 신의 독점권을 뒤흔든다. 브라이트하우프트에 따르면 이러한 서사적 모호성은 스토리텔링 자체의 전제조건이다. 〈변명은 (···) 이야기의 다양한 형태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모든 서사 구조를 순수한 형태로 보여준다. 스토리텔링은 변영을 고안하는 것이다.〉 인간이 세계와 내면의 삶을 재현하고 해석하기 위한 상호 놀이로 내러티브 무장 경쟁을 시작했다는 것이다."(255)


"브라이트하우프트는 여기서 마스터 스토리Master Story(즉 사태를 설명하는 고소 내용, 이를테면 내가 금지했는데도 너희들은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다)와 변명(즉 이러한 고소 내용의 내러티브를 바꾸려는 것)을 구분한다. 자세히 말하자면 변명은 인과관계(우리는 그것이 다른 나무라고 생각했다)나 의도(우리는 배가 고팠다), 또는 책임 해석(뱀이 우리에게 교사했다)의 관점에서 사실적 세부 사항을 변경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변명은 마음 이론을 가지고 있고 세상을 외부로부터 바라보며 다른 존재에게 공감할 수 있는 생명체에게만 가능하다. 그래야만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 변명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좋은지를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세상의 거의 모든 조작적인 내러티브가 일종의 변명(책임 회피)이나 정당화(책임 축소)라는 것을 인식한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마스터 스토리, 즉 지배적인 내러비트로 만들려면 그 내러티브에 새롭고 대안적인 스토리를 입혀야 한다."(256)


"우리가 기존의 (자기) 서사의 일관성을 위해 견지하는 가장 흔한 인식의 왜곡은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우리가 믿고 싶은 것─또는 다른 사람들이 믿어야 하는 것─을 믿으며 그에 따라 모든 정보를 분류한다. 우리는 우리의 확신과 상충하는 지식보다 우리의 견해와 의도를 뒷받침하는 지식을 더 중요하게 평가한다. 말하자면 우리 자신은 적어도 모순투성이인 세상을 볼 때는 서사적으로 매우 좋지 못한 판단을 내린다. 우리가 개인적이라고 생각하는 선호도조차 사회학적, 경제적 허구다. 우리는 사후에 과거를 회상하며 인과관계를 만들어 '나는 그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사후판단 편향, 혹은 잠복성 결정론Creeping Determinism이라고 부른다. 사회학자 던컨 와츠에 따르면 사후판단 편향은 특히 이례적인 큰 성공이 관찰될 때 효과를 보이기 시작한다. 더 특별한 성공일수록 그 성공 스토리는 더 훌륭하고 논리적이어야 한다."(263)


"개인마다 크게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자기 운명을 통제하고 있으며 일어나는 사건이 우리가 내리는 결정과 관계가 있다고 믿는다. 개인의 통제에 초점을 두는 것은 소위 기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와 결부되어 있다. 말하자면 타인에게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그 책임이 그들 개인에게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때는 우리가 처한 상황에 책임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 "다량의 운이 우리 성공을 결정지을 뿐 우리가 부지런한지 아닌지는 거의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최선의 경우에는 태연해지거나 최악의 상황에는 낙담하거나 사기를 잃게 된다. 이런 이야기는 자본주의처럼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서는 비생산적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우연을 거부하면 추가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유지할 자격이 있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것이 전적으로 우리의 업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286-7)


7 가장 깊은 동굴로 들어가기_우파의 영원한 유혹


"신화에서 영웅이 선택된 이유는 그가 자기 자신과 온 세상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파시즘에서 영웅은 규범이다. 누구나 국가의 영웅이 될 수 있으며, 모두가 심지어 영웅이 되어야 한다. 누구나 비범하다. 아무도 특별하지 않다(히틀러는 제외하고)." "이러한 영웅주의는 필사적인 용기에 대한 갈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를 위해 파시즘적 영웅은 어쩔 수 없이 싸움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언제나 전쟁이나 전투, 한마디로 말하면 폭력을 추구한다. 이에 대해 완전히 형이상학적 보상이 주어질 가능성이 있다. 현세적이고 민주적인 체제에서 인간은 기껏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 하지만 파시즘은 훨씬 더 좋은 것, 바로 구원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를 다음 변증법으로 이끈다. 즉 한편으로 파시즘은 더 큰 확신을 하고 초월적 사명에 대한 믿음을 설파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러한 믿음에 깊은 허무주의를 새겨 넣는다. 이러한 점에서 파시즘은 견고하고 불변한 동시에 언제나 상황에 순응하고 적응한다."(312-3)


"이로써 우리는 서사 이론에서 이미 잘 알려진 결정적인 지점에 도달한다. 즉 강력한 적대자가 없으면 강력한 주인공도 없다. 전투에서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막대한 위협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먼저 세계와 질서가 무너져야 한다. 무너진 틈 사이로 악이 침투하며 오로지 영웅만이 악을 제지할 수 있다. 그래야만 파시즘이 원칙적으로 취하려는 특별 조치─모든 다원주의를 철폐하고 폭정을 휘두르고 적을 패배시킬 뿐만 아니라 '말살시키는 것(아돌프 히틀러)'─가 정당화된다. 말하자면 파시즘은 모든 파시즘 추종자를 영웅으로 만들고, 그들에게 모순적인 것을 약속하며 적을 눈에 띄게 표시한다." "영웅 여정은 적수를 물리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악마와 맞서고 근본적으로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파시즘은 에너지가 외부로만 흐를 뿐 절대로 내부로 흘러들지 않는다. 따라서 내러티브로서 파시즘은 스토리텔링이 인간에게 근본적으로 의미하는 바와 정반대다."(314-7)


"악을 정형화함으로써 악이 미화되는 것은 문제이다. 이를테면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파시즘적 등장인물이 팬들이 감탄하는 우리 대중문화의 당연한 일부가 될 때처럼 말이다. 〈스타워즈〉 등장인물은 말 그대로 번역하면 '나치 돌격대'라는 뜻을 가진 '스톰트루퍼' 헬맷을 착용하고 장교는 게슈타포처럼 보인다. 〈스타워즈〉 등장인물들은 수많은 티셔츠에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고 중독성 강한 재미있는 영상물 속에서 화려한 춤을 추기도 하며 어린이에게 인기 있는 카니발 의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형식과 코드의 미묘한 혼합은 광범위한 관심의 레이더 아래에서 훨씬 더 악의적으로 발생한다." "마이크 피엘리츠와 홀거 마크스는 〈고전적인 파시스트는 그들이 입는 검은색이나 갈색 셔츠로 식별이 되지만 디지털 파시즘은 소셜 미디어의 기능 방식에 기인하는 온라인 문화의 알록달록한 셔츠 속에 위장된다. (···) 더구나 디지털 파시즘은 대응책이 목표로 삼을 수 있는 명확한 조직적 중심이 없다〉고 썼다."(326-30)


"유튜브가 지닌 새로우면서도 위험한 문제는 토끼 굴 입구를 의식적으로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무수한 영상의 정글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맞춤형 알고리즘은 더 급진적이고 더 극단적이며 더 비현실적인 형편없는 영상을 제안한다." "음모 이야기의 토끼 굴은 사회학자 레오 뢰벤탈이 말한 '이념적 노숙자'라는 용어를 빌어 '서사적 노숙자'라고 부를 수 있는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되어준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이야기와 그 안에 내재한 설명은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함께 어울리면서 남보다 앞서 나가는 것to get along and get ahead'에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신이 속한 문화 및 환경의 전통적인 내러티브로부터 소외되면 처음에는 불안으로 이어지고, 그다음에는 대안적 실마리에 개방적인 태도를 갖게 되며 마지막에는 자신이 항상 속아왔다는 편집증적인 확신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주류 미디어'와 사악한 엘리트로부터 일단 등을 돌리면 다시 다가가기가 지극히 어렵다."(342-4, 346-7)


8 마지막 시련_독일과 미국은 어떤 스토리를 만들었는가


"한 국가 자체에 대한 사회문화적 서사인 딥 스토리Deep Story는 사회의 역사적 스토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공유되는 내러티브를 의미한다." "가령 트럼프 지지자들은 모두가 자의식을 갖고 자기 차례가 오기를 성실하게 기다리면서 신교도 특유의 직업윤리와 개척 정신, 규칙 준수를 통해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동경의 산을 오르려고 한다. 이러한 대기 줄에서 소수자들이 공격적으로 지원을 요구하기 시작하면 백인 노동 계층에게는 마치 언제나 자기 뒤에 서 있던 사람들─흑인, 이민자, 여성─이 갑자기 자신들, 즉 충성스럽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미국인을 지나쳐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더 나쁘게 표현하자면 그 사람들이 국가와 기관의 도움을 받아 침투한 것처럼 보인다. … 백인 노동 계층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러한 편애는 불공평할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집단적 이상에 대한 배신, 즉 사회적 지위와 출세를 스스로 얻을 수 있고 또 얻어야 한다는 능력주의 동화에 대한 배신이다."(356-8)


"18세기와 19세기의 독일에서는 두 가지 환경, 즉 아카데미와 군대, 다시 말해 정신과 복종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둘 다 감정과 여성이 없는 곳이다." "18세기 독일 낭만주의의 감수성도 (디오니소스적인 정신이 아니라) 지성적인 것이었다. 말하자면 경쾌한 방종이 아니라 정신에 의해 억제된 갈망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의무감, 근면, 경건한 성과 중심주의에 대한 종교적 자기 서사에 의해 형성된 개신교 유산의 틀 안에 존재했다." "개신교 유산과 대학 외에도 18세기와 19세기 독일의 딥 스토리 중 하나는 고도로 기능적인 프로이센 군대와 이곳의 금욕적인 사명감이었다. 의무를 다하는 것─위계질서와 엄격한 규칙 준수─은 일반 대중에게 품위와 덕성의 전형이 되었다. 동시에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식민지 보유국이 아니라는 열등의식으로부터 철저히 위장된 민족 우월주의에 대한 열망이 생겨났다. 눈에 띄게 더 커 보이려는 열성적이고 과시적인 노력의 이상은 점차 더 위험한 것으로 바뀌었다."(370-1)


9 칼을 움켜쥐다_별로 강하지 않은 성별


"판도라는(물론 이브와 함께) 영웅(당연히 남성 영웅)이 자신의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혼란스럽고 파괴적인 자연의 힘을 상징하는 수많은 여성 인물 중 최초의 여성이다. 쾌락, 사랑, 간계 또는 성적 거부를 통해서 말이다. 말하자면 여성이 자신의 섹슈얼리티Sexuality를 무기로 사용하여 이성애 성향의 강직한 영웅을 파멸로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세이렌은 선원들을 유혹하고, 아름다운 서큐버스는 잠자는 남자의 꿈에 나타난 정자를 갈취하며, 중세의 마녀는 잘못되는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 했다. 여성 캐릭터가 위험하고 무질서한 타자의 역할을 맡을 필요가 없는 경우엔 반대로 악의 없이 남성 영웅을 지원했다. 조지프 캠벨의 고전적인 영웅 여정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영웅이 자신에게 중요한 정보와 도움을 제공하는 모성적 여신을 만난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현대의 여성 캐릭터는 종종 지나치게 격정적인 영웅을 규제하는 어머니 역할을 맡는다."(394-5)


"여성 혐오의 두 번째 원초적 내러티브는 손에 넣기 힘든 성적 자원이자 동시에 스스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상품화하는 여성에 대한 것이다. 줄리아 로버츠와 리처드 기어가 주연을 맡은 로맨틱코미디의 고전 〈귀여운 여인〉(1990)은 이러한 내러티브를 놀라울 만큼 노골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즉 아름다운 매춘부가 부유한 남자로부터 구원받고 남자의 지위와 부를 대가로 남자에게 독점적으로 자기의 몸을 허락한다. 〈귀여운 여인〉은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를 현대화시키고 성적 측면을 강조한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모든 이야기의 공통점은 한 남자가 자신의 낭만적인 상상과 사회경제적 필요에 따라 오로지 자신을 보완해주고 도와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여자를 만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상적인 뮤즈에는 복종을 통해 충만함을 발견하는 여성성이라는 내러티브가 숨겨져 있다. 이와 달리 팜므 파탈Femme fatale, 단어 그대로의 '치명적 여성'은 남성을 위험에 빠뜨리는 또 다른 여성성의 표현이다."(395-8)


"소위 세계 종교의 메시아적 영웅이든, 그리스와 로마 신화의 서사적 영웅이든, 게르만이나 켈트 초기 문화의 전설적 영웅이든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즉 이 영웅들이 모두 남자라는 것이다." "통상적인 (남성) 영웅을 영웅 여정의 의미에서 '남성적'으로 행동하는 여성 영웅으로 단순히 교체하는 것은 아무 효과가 없다. 미국의 작가 게일 캐리거는 자신의 저서 『여성 영웅의 여정 : 작가와 독자, 대중문화의 팬을 위해』에서 남성 영웅 여정과 여성 영웅 여정을 구분함으로써 영웅 여정의 대안이 어떤 모습일지 설명한다. 〈남성 영웅 여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점차 고립되어가는 주인공은 당당하게 맞서며 악당을 뽀족한 물건으로 찌르고 마침내 악당을 무찌르고 명예와 영광을 얻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여성 영웅 여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점차 인맥을 넓혀가는 여주인공은 좋은 친구들과 활보하며 그들과 함께 악당을 물리치고 승리를 이끈다.〉"(406, 410-3)


"인셀Incel이 여성에 대한 증오를 서사적으로 정당화시키는 단순한 허구는 다음과 같다. 즉 여성은 외로운 남성의 존재적 비참함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인셀은 '여성 선택'의 80대 20 법칙에 사로잡혀 있다. 이 생물학적 이론에 따르면 상위 20퍼센트의 매력적인 이성애자 남성이 모든 여성의 80퍼센트를 성적으로 차지하고, 나머지 80퍼센트의 남성은 아무 기회도 얻지 못한다. 여성은 이러한 권력 불균형을 악용하며 매력적이고 낭만적이지 않은 남성을 차별하고 필요에 따라 도구로 이용하는 특권을 누린다. 인셀의 관점에서 보면 여성은 남성이 간절히 원하는 것에 대한 접근을 통제함으로써 남성보다 훨씬 강력하며,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즘의 필요성도 남성에게는 거짓이다. 또한 이와 같은 가정에 따른 성적 전략은 남성의 재정적 착취로 이어지는데, 이를 알파퍽 베타벅Alpha Fuck, Beta Buck(알파 남성은 섹스를 하고, 베타 남성은 여성에게 재정을 지원한다는 뜻)이라는 공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416-8)


# 인셀Incel은 비자발적 독신자Involuntary Celibate의 줄임말이다.


"그들의 내러티브를 촉진하는 중요한 동기는 자유화된 우리 사회에서 그들이 자신을 서사적 갈등의 희생자로 느낀다는 것이다. 인셀의 관점에서 남성이 특권을 누린다는 이념은 현대의 동화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가장 큰 특권, 즉 섹스에 대한 접근이 거부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신에 대한 깊은 쓰라림은 우리가 이미 파시즘 내러티브를 통해 알고 있듯이 자기 피해의식으로 표현된다. 사회학자 마이클 키멜은 『화난 백인 남성』(2013)에서 이러한 피해의식을 신화적인 가부장적 과거를 고집하는 현상과 연결한다. 〈사람들에게 '정당한' 자리를 되돌려주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 이 세상은 (···) 백인 남성들이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면 필연적으로 경제적 사다리의 어딘가에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믿고 자랐던 세상이다. 그것은 (···) 능력주의 사회의 이상이다. 그리고 남성들이 실패하면 굴욕을 당하며 그들의 분노를 표출할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419-20)


10 귀로: 인류 종말은 텔레비전에서 방송되지 않는다_기후 스토리가 실패하는 이유


"기후 변화를 주제로 한 픽션이 지닌 어려움은 바로 적대자가 없다는 것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적대자가 너무 많다. 기후 위기는 우리 모두에게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더 많은 책임을 지고 있는 석유 재벌, 육가공회사, 로비스트들도 있고, 배기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남반구의 가난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기후를 오염시키는 가장 큰 요인조차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며 자기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현실의 기후 변화에는 중요한 시각적 모티프, 즉 대재앙이 쏟아붓는 강렬한 이미지가 빠져 있다. 천천히 녹아내리는 빙하, 멸종해가는 종, 가라앉는 섬 등은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특히 모든 세계가 기후 종말론에 감정적으로 동조하고 있으며, 이는 마치 〈암흑 낭만주의 이후 연속적인 날카로운 음조로 종말의 주문을 외우는 것〉 같다. 우리 마음 속에는 집단으로, 시간대별로, 대중문화적으로 이용 가능한 재난 이미지가 저장되어 있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는 궁극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432-5)


"이야기의 기능은 매체를 불문하고 기후 위기라는 주제와 매우 심도 있게 결합할 수 없다. 재앙을 막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소비를 덜 하고 비행기를 덜 타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덜 하면 될까? 우리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것은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아무 행위도 하지 않는 것, 또는 상황을 그냥 지속시키는 무지함이다. 발텨 벤야민은 〈상황이 '그렇게 계속' 지속된다는 사실이 재앙이다〉라고 말했다. 서사적인 측면에서 기후 위기를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다. 기후 위기는 인간이 만든 것으로 집단적이며, 악당이나 범죄 조직의 잘못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인간의 파괴적인 주도권에 기인한다. 기후 위기는 병든 한 시대의 탈선이 아니라 수 세기에 걸쳐 커져 나갔다. 특출한 악마도 없고 과격한 집단적 이념도 없으며 적대자로 적합한 공격적인 민족 국가도 없다. 그리고 기후 위기에서는 어떤 영웅이든 상대가 악한 정도만큼만 선할 뿐이라서 주역을 배정하기가 어려워 보인다."(436-8)


"이른바 손실 회피Loss Aversion는 사람들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이익보다 손실에 훨씬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게 한다. 손실 회피는 특히 생태와 경제 사이의 경쟁으로 조장된다.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신에게 경제 쪽이 더 유리해 보이기 때문에 경제를 선호한다. 추상적인 기후 위기는 손실 회피의 완벽한 예이다." "이로부터 언론의 표현 문제가 발생한다. 기후 위기에 대한 이분법적 묘사, 즉 과학적 인식과 경제적 관점이 서로 대립하였고 양자 간의 합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묘사는 오랫동안 기후 담론을 마치 서로 다른 관점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는 견해에 바탕을 둔 대화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영어권에서는 이와 같은 잘못된 균형을 거짓 균형False Balance이라고 부른다. 거짓 균형은 엄격한 균형이 편견을 타파하고 현실을 가장 진실하고 공정하게 묘사할 수 있다는 희망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거짓 균형은 사실에 대한 왜곡된 표현으로 이어진다."(440-1)


"여성 영웅 여정은 기후 위기에 맞선 싸움을, 우리 자신과의 싸움이 아니라 착취라는 진정한 적대자와의 싸움으로 이끌도록 고무한다. 여성 영웅 여정은 재난 영화의 완강한 남성 영웅보다 그레타처럼 사람들과 연결된 여성 영웅을 따르도록 고무한다. 나쁜 소식이라면 지금까지 우리가 이 싸움에서 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좋은 소식은 우리가 아직 제대로 싸움을 시작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재앙으로 위협받고 그 재앙을 위협적으로 느낀 (거의) 모든 사람은 인적 네트워크를 지닌 여성 영웅 여정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모든 서사적 자아는 인류의 이러한 실존적 위기를 긍정적인 서사에 쏟아부을 수 있어야 한다. 그에 대한 대안은 모른 체 하는 것 아니면 절망뿐이다. 하지만 그레타가 이끌어 온 길처럼 본보기가 되는 인상적인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오늘날에는 작은 단계를 통해 세상을 구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457-8)


11 부활_지칠 대로 지친 원숭이


"우리 사회는 타인의 거울에 비친 사회적 완벽주의를 조장하여 자기 서사에 균열을 일으키고 기대에 못 미치는 실망감을 느낀다. 자신을 그저 '맨인홀Man in Hole)'로 인지하여(즉, 어떻게 구멍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지 알지 못해 계속 추락하는), 자기의 영웅 여정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은 적대자가 된다. 어빙 고프먼의 무대 은유를 사용하여 말하자면 우리가 자기 서사로부터 쉴 수 있는 무대 뒤 공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쉴 새 없이 자기 최적화Self-Optimization를 요구하고, 정치적 해석 주권을 둘러싼 논쟁은 우리가 끊임없이 경계 태세를 취하게 하며, 내러티브 주도권을 얻기 위한 싸움은 우리를 지치게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명시적으로, 그리고 암묵적으로 내러티브를 체험하고 판단하고 우리의 자기 서사 안으로 분류해야 한다. 우리의 서사적 자아는 쉴 새 없이 도전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와는 달리 자기 자신을 잊을 때 사실상 가장 행복하다."(462-3)


"21세기 자본주의는 자기애 자극과 자기애 상심의 상호작용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말하자면 21세기 자본주의는 우리가 모두 '독점적 제안'을 받을 만큼 충분히 가치 있는 '소중한 고객'이라고 이야기하며 이를 구실삼아 충족해야 할 요구를 먼저 만들어낸다. 동시에 이렇게 일깨워진 욕망에 실망을 느끼게 만든다. 왜냐하면 21세기 자본주의는 이러한 개인주의적 요구를 전혀 충족시킬 수도 없고 충족시키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래전부터 광고와 소비로 가득 찬 세상에 익숙해져 있고 그러한 메시지를 믿는 사람이 거의 없음에도─우리 자신에 대한 진실성 요구와 결합해─실망과 피로감에 대한 무한한 근원이 생겨난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모든 것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위대한 진보 서사는 최종적으로 완전히 소진되고 있으며, 모두에게 유익하다는 성장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내러티브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우리는 기진맥진할 수밖에 없는 이중적 소외를 느낀다."(470-2)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력한(그리고 가장 거짓된) 어른 동화는 구조적으로 볼 때 반영웅 여정Anti-Hero's Journey이다. 반영웅 여정은 사람들에게 모험도, 여행도, 변화도 없다고 약속한다. 아니 그 이상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일하고 돈을 모으고 불평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믿음을 가지면 모든 것이 그대로 있을 수 있고 아무것도 달라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가장 선호되는 대답은 놀랍게도 개인주의적 성향이다. '마음챙김'과 '자각'이 붐을 이루는 이유는 이것이 개인을 자립적인 존재로 서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구상 속에서 우리는 모두 '치유'해야 한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뉴스도 보지 않고 자신을 자극하는 모든 것과의 접촉을 피한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이러한 금욕주의의 변종은 궁극적으로 서사하는 자아를 외부의 모든 서사적 갈등에서 분리하려고 한다. 이는 대부분 암묵적이지만 그만큼 효과적인 탈정치화라고 볼 수 있다."(476-7)


12 묘약을 들고 귀환하다_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구할 것인가


우리 시대의 카산드라는 기후 과학자이자 바이러스 학자이다. 오늘날 정치인들은 현재와 미래 사이의 트롤리 문제에 직면하고 있으며, 스위치를 변환하는 데는 많은 돈과 에너지가 필요하기에 이 문제는 단순히 윤리적 문제만이 아니라 경제적 문제이기도 하다. 그들은 오늘 스위치를 변환해서 나중에 훨씬 더 적은 피해가 발생하도록 애쓰는가, 아니면 오늘 기차가 그냥 달리게 놔두어 비용을 아끼고 상황이 정말로 얼마나 나빠지는지 두고 보는가? 이 질문은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킨 '예방의 역설Prevention Paradox'로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팬데믹 초기에 바이러스 학자들은 '예방의 역설'을 반복적으로 지적했다. 즉 예방 행동은 미래의 피해로부터 사회를 보호하지만 예방이 얼마나 필수적이며 얼마나 옳은지는 결코 증명될 수 없다는 것이다. 크리스티안 드로스텐은 〈예방에는 영광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모든 요인이 조합된 후기 현대 사회는 (미래의 더 나은 보상이 아니라) 현재 선호도를 강하게 발전시킨다."(513)


"이러한 상황은 근본적으로 어떤 원칙과 작동 기제를 위반하고 있는가? 바로 영웅 여정을 위반하고 있다. 영웅 여정은 영웅이 항상 자신의 결정적인 행동을 촉발하는 계기, 그것도 대부분 중대하고 명료하고 수긍할 만한 계기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묘사하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영웅은 결코 예방대책으로 모험을 떠나지 않는다. 상황이 나빠지기 전에 어느 정도 예방적으로 도전을 극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모험이 아닐 것이다. 이미 예견된 예방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그는 영웅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람은 자신을 변화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생명을 위협하는 절박한 문제(종종 칼이나 총을 가진 악당으로 구현되는 고통스러운 절박함)만이 그를 다시 행동하게 강요한다. 말하자면 영웅은 문제해결을 예방적 변화가 아니라 최저점에서의 긴급한 변신이라고 이해한다. 진짜 영웅은 사건이 터지기 전에 행동하지 않는다. 주저하는 영웅만이 진정한 영웅이다."(514-5)


"이 책의 저자인 우리는 영웅 여정의 구상과 인류 역사를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 깨달았다. 즉 우리가 인간을 언제나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서구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일리아스』를 한번 살펴보자. 『일리아스』의 주제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베유는 자신의 에세이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에서 힘이라고 말했다. 〈힘은 힘으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을 사물로 만든다. 힘은 가차 없이 파괴하듯이 힘을 갖고 있거나 갖고 있다고 믿는 사람도 가차 없이 도취시킨다.〉 오늘날 사람들은 힘에 도취하여 무서운 속도로 자신의 생활 토대를 파괴하고 있다. 그 결과 풍경이 파괴되고, 더 심각한 문제는 복잡한 생태계에 끝없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결말을 오랫동안 감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철학자 볼프람 아일렌베르거가 말한 '영원의 비용Ewigkeitskosten'이다."(531)


"우리의 논지는 내러티브가 강력한 문화 상품이나 정치 프로그램 또는 무미건조한 팝송에 포장되어 오늘날 가장 강력한 변화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내러티브를 그 자체로는 거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감각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우리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 가지 조언을 한다면 그것은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안보 훈련에서 가장 자주 듣는 조언일 것이다. 위험이 임박했을 때 위험해지기 '전에' 행동하는 것이 현명하다. 말하자면 주인공이 되지 말고 이야기하는 원숭이로 남아 있는 것이 좋다.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라. 그리고 이야기를 확실한 해피엔딩으로 시작해보라. 여러분이 어느 지점에서 주인공이고 어느 지점에서 적대자인지 솔직하게 자문해보라. 유토피아를 만들고 낙원 상태를 상상해보라. 그리고 용기를 가져라. 지금까지 감히 꿈만 꾸었던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쳐라."(5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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