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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a35님의 서재
  • 독일 철학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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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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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독일 철학자들은 근대 사회의 자연 과학 중심성에 다양한 방식으로 반응한다. 철학 자체를 잘 자리 잡은 과학 이론들과 같은 수준으로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는 과학의 한 종류로 만들려는 시도에서부터, 비트겐슈타인이 1930년대에 말했듯이 〈과학적 지식과 관련하여 좋거나 바람직한 것은 없다〉는 주장,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그것을 좇는 인류는 함정에 빠진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생각의 차이는 이 영역이 얼마나 문제가 될 수 있는지를 나타낸다. 그렇다면 같은 문화적 환경에서 어떻게 이렇게 상충하는 생각이 나타난 것일까? 이런 물음에 결정적인 답 같은 것을 제시한다면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사물의 새로운 질서[과학적 세계상]를 받아들여야 할 필요와 새로운 질서가 꼭 필요한 문화적 자원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느낌 사이에서 우리가 관찰한 긴장은 분명 이러한 상반된 견해의 공존과 관련된다. 이러한 대립은 '낭만주의'와 '실증주의' 사이의 대립으로 특징지어지기도 한다."(20-1)


"독일 전통이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이론적 차원에서도, 실제 역사적 사건의 차원에서도 이러한 문제의 결과에 대해 극단적인 예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자기 결정이라는 계몽주의적 발상과 주로 인종에 따라 미리 결정된 자아라는 나치적 발상 사이의 차이는 어떤 이론이 옳은지에 관한 견해차로만 끝나지 않는다." "19세기 후반 이후 과학이 점점 더 산업화되고 부를 창출하는 큰 원천이 되었고, 이에 따라 과학에 투입되는 자원이 증가함에 따라 철학은 점점 위축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실증주의'의 발전은 철학이 새로운 명확한 역할을 맡을 수 있게 했다. 이 역할은 과학으로는 오히려 가려질 수 있는 것, 따라서 예술 작품을 통해서라든지 다른 식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것에 관한 '낭만적' 관심과의 연관성을 바탕으로 한다. 과학의 성공은 과학의 이름으로 철학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또는 과학과 관련하여 잠재적으로 비판적인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철학의 역할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22-3)


1 칸트의 혁명


"칸트는 신뢰성에 관한 이전의 가정들[선재적이고 신적인 토대]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론을 신뢰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칸트는 우리의 생각을 우주 이해의 원리로 삼았다. 인간의 마음을 모든 것의 중심에 둔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이 특정한 정신 규칙들을 사용하는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음을 칸트가 입증했다고 볼 수 있다. 이 특정한 정신 규칙들은 인간이 이미 갖추고 있는 것이지, 세계를 관찰함으로써 도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칸트가 사유 활동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제안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유 활동은 사유의 빛이 없을 때 암흑이었던 우주를 비추는 '빛'이 된다. 영어권 세계에서는 칸트를 일반적으로 지식 이론가나 윤리 이론가로 읽어 왔지만, 칸트가 궁극적으로 이루어 내고자 한 것은 우리가 알고 행하는 것에 더 이상 신학적 근거를 상정할 수 없을 때 세계 속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 지도를 그리는 것이었다."(33-5)


"경험은 시간 안에서 일어나고, 경험을 판단하려면 우연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을 필연적 관계로 연결시켜야 한다. 지각은 틀림없이 각기 다르고, 인식 주체는 지각을 '직관'으로 수용하므로 능동적으로 생산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각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것은 그 자체가 동일하게 유지되는 것이어야 한다." "지성understanding은 경험자료만 판단할 수 있으며, 바로 이러한 접근 대상의 한계가 지성의 특징이다. 하지만 사유에는 세계 안의 구체적인 사물을 지배하는 법칙에 대한 판단 이상의 것이 포함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지성이 그러한 판단에 국한되는 것으로 기술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여기에는 사유가 지성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 경험적 판단을 넘어서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유의 추가적인 능력을 칸트는 〈이성〉이라고 부른다. 지성이 경험 자료들 사이의 통일성을 창조하는 반면, 이성은 지성의 규칙들 사이의 통일성을 창조한다."(44-5, 53-4)


# 칸트에서 '직관'은 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지각 경험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피히테와 같이 칸트 바로 다음에 나오는 사상가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초월적 주체'에 관한 주장들이 어떻게 입증될 수 있느냐다. 지식이 이러한 주체의 통일성에 기초하여 나온다면, 주체는 어떻게 자신에 관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는가? 인간은 언제나 공간과 시간과 범주라는 조건하에서 지식에 이르게 되고, 이러한 조건들은 바로 주체에게 의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체는 분열된다. 한편으로 주체는 세계 안에 있는 경험의 대상, 즉 자기 몸이다. 다른 한편으로 주체의 몸이 따르는 법칙은 다른 무언가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그 자체로 가능한 법칙이다. 왜냐하면 주체는 세계 안에 있지 않고 그 이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판단의 자발적 원천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나 프로이트 같은 몇몇 사상가는 자기 인식의 문제가 주체의 이성적 측면의 비이성적 기반을 드러낸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기반은 철학적 설명으로는 접근할 수 없고 예술이나 정신분석 같은 다른 수단으로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47-8)


"칸트의 도덕성의 기초에는 경험적 내용이 없고, 완전히 추상적인 명령이 있다. 〈나는 나의 준칙이 보편적인 법칙이 되기를 의욕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면 행동해서는 안 된다〉." "정언 명령의 선험적 지위는 우리가 경험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나 그러한 앎으로부터 타인에 관하여 도출한 정보를 도덕성의 기초로 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데서 시작된다. 정언 명령은 이런 불가능성 대신, 우리가 자신에게 부여하는 자율적 지위를 타인에게도 부여한다는 데 기초한다. 물론 우리가 이러한 자율성을 갖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칸트도 인정한다. 그러나 자율적이기를 추구한다는 관념은 이성적 존재로서 서로 공유하는 목표를 가질 가능성을 제공한다. 어떻게 우리가 타인에게 그런 지위를 부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문제에 칸트는 답하지 않는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의 뒤를 잇는 피히테와 헤겔이 매우 중요한데, 그들이 탈신학적 도덕에 요구되는 상호 인정의 기원을 설명하려 했기 때문이다."(61-3)


"칸트의 도덕 철학 논증은 현상적인 자연 세계와 예지적인 인간 자유의 세계 간 분리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그럼으로써 칸트는 우리 지식의 수용적 원천과 자발적 원천 사이의 엄격한 구분을 위태롭게 한다. 칸트가 직면한 문제는 칸트 이후 많은 철학에서 다시 나타날 것이다. 자유의 영역과 완전히 결정론적인 자연을 분리해 버리면, 어떻게 우리가 법칙에 매인 자연에 대한 객관적 관점을 얻을 수 있으면서 동시에 자기 입법을 할 수 있는지를 이해할 길이 없다. 게다가 자발성이 자연과 전적으로 다른 영역에 존재한다면, 지식과 행동의 기초가 되는 자발성이 어떻게 자연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 예를 들어, 1790년대에 셸링은 정신과 자연 사이의 그럴싸하지 않은 분리를 피하려면, 자연 자체를 본래부터 주관적이고 자발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적으로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어떻게 자기 결정적인 주관성을 낳을 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66-7)


"《판단력 비판》은 자연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지식의 측면이 아니라 쾌감의 측면에서 고찰한다. 자연의 몇몇 양상들에 대한 우리의 쾌감은 어떤 면에서 주관적이지만 지식이나 도덕을 판단할 때와 같은 방식으로 판단을 수반한다. 이는 부분과 전체의 관계, 특수와 일반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다." "제3비판서의 핵심 측면은 바로 반성적 판단이다. 반성적 판단에서 우리는 칸트식 의미로 지식의 지위를 갖지 않는, 사물들의 체계적 정합성에 대한 가정을 통해 개별에서 일반으로 이동한다. 반성적 판단이 인지 법칙을 확립하는 과제에서 해방되면 더 이상 지시받지 않고 자유롭게 부분을 전체에 결합할 수 있다. 이는 칸트가 처음에 다양한 현상에 대한 인지적 종합에 덧붙여 있다고 생각한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동일한 쾌감은 또한 우리로 하여금 예술 작품의 부분들이 서로 연관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칸트는 자연의 체계적 구성에 대한 관념을 심미적 향유 능력과 연결한다."(67-8)


2 언어의 발견: 하만과 헤르더


"우리는 낭만주의 철학에서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 사이의 대립을 만날 수 있다. 전자는 창조와 파괴의 힘이고, 후자는 형식과 질서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문제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특징지으려면 아폴론적인 것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다. 창조와 파괴의 힘에 대한 개념적 설명은 언어에 의존해야 하며, 언어는 형식적인 규칙과 구조에 의존하여 의미를 만든다. 따라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관해 무언가를 말하려는 시도에는 본유적 모순이 내재한다. 즉,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언어 안에 고정시키면 그 본질적인 성격을 놓치게 된다. 따라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불러일으키려면 '직관'에 호소해야 한다. 이는 비개념적 사유 방식으로만 접근할 수 있다. 이는 니체가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개념적 용어로는 완전히 설명될 수 없는 음악과 연결시키는 이유가 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직관(칸트의 직관 개념과는 다르다)과 개념적 사고의 긴장에 관한 문제는 근대 독일 철학사에서 시종일관 매우 중요하다."(82)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의 은유를 언어와 연결시키면 하만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합리론적 사고는 세계에 내재된 이성적 질서라는 '아폴론적' 관념에 의존하며, 참된 언어란 이러한 질서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만은 우리가 애초에 이성이라는 개념에 어떻게 도달하는지를 고찰함으로써 이러한 사고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이를 언어 습득과 분리할 수 없다고 본다. 언어는 본질적으로 창조적이며, 우리가 종종 예술과 연관시키는 실존의 새로운 측면을 드러내는 능력과 분리될 수 없다. 따라서 사물의 질서를 언어에 고정시키려는 시도는 세계가 우리에게 드러나는 방식을 언어가 끊임없이 재구성할 수 있는 언어의 '디오니소스적' 측면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이 관점은 언어에 철저하게 역사적인 차원을 도입한다." "하만의 인식론적인 주장은 우리가 세계와 일차적으로 접촉하는 일이 관념이 아니라 '느낌'/'감각'의 측면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계몽주의적 사고에 반대한 핵심 내용이다."(84-5)


"하만이 칸트에게 던진 주된 질문은 범주의 지위에 관한 것이다. 〈말들은 순수하면서도 경험적인 직관일 뿐만 아니라 순수하면서도 경험적인 개념이다. 경험적인 까닭은 시각이나 청각이 말에 영향받기 때문이며, 순수하다는 것은 말의 의미가 그러한 감각에 속한 어떤 것에 의해서도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언어는 감각적으로 나타나면서도 논리적 구조에 의존하기 때문에 칸트가 지식의 원천을 수용성과 자발성으로 나눈 것을 '해체'한다." "하만에 따르면, 우리는 경험 세계에서 반복되는 소음과 표시를 받아들임으로써만 수용적 사고의 수단을 얻을 수 있다. 그러한 소음과 표시가 의미를 담게 하는 것은 사고의 자발성이다. 따라서 두 원천은 분리될 수 없는데, 둘이 기능상 서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세계에 의존하는 것과 정신에 의존하는 것 사이의 철학적 이분법을 극복하려는 하만의 시도는 독일 관념론과 초기 낭만주의에서 매우 중요해진다. 하만의 (비의적인esoteric) 글쓰기 방식도 논증의 일부다."(89-90)


"헤르더는 《최근 독일 문학에 관한 단편들》(1766-1768)에서 〈우리가 생각 없이는 사고할 수 없고 말을 통해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게 사실이라면, 언어는 인간의 지식 전체에 한계와 윤곽을 부여한다〉라는 말로, 신기원을 이룬 그의 첫 가설을 명확히 한다. 칸트는 인간 지식의 한계가 지식 생성에 필수적인 정신의 형식들로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칸트가 주요 사상을 공식화하기도 전에 헤르더는 이러한 한계가 언어의 측면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소통할 수 있는 지식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으로 이미 제시했다. 물론 이제는 이러한 아이디어가 현대 철학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헤르더에게 〈생각한다는 것은 말한다는 것과 거의 다름 없다.〉 그는 언어의 문화적 발전을 강조하며, 이를 한 문화의 문학과 연결한다. 그는 〈문학은 언어 속에서 성장했고, 언어는 문학 속에서 성장했다〉라는 말로, 언어를 단순히 기존 관념들의 표상으로 간주하는 계몽주의 관점과 확실하게 거리를 두었다."(93)


3 독일 관념론: 피히테에서 초기 셸링까지


"피히테는 이론 이성과 실천 이성의 공통 원천이 주체의 자발성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핵심 사상은 칸트의 주장을 발생적 측면에서 탐구한 결과다." "생명 없는 객관적인 물질은 유기체가 되지 않고 '마음 없는' 상태로 남아 있었을 수도 있다. 왜 그렇게 남아 있지 않은가를 설명할 만한 것이 물리학, 화학, 생물학의 법칙에는 없는 것 같다. 일단 자연에 유기체가 있고 난 다음에야 이러한 법칙들로 사물이 발달하는 방식이 설명될 수 있다. 물론 순전히 물질이었던 존재에서 유기적 존재가 되어 스스로에게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조건이 자연 자체에 담겨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저 법칙들은 이렇게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자연에 대해 알게 된 존재자들 자체가 자연의 일부다. 여기서 선택은 '주관적' 측면을 제거하려 하거나, 아니면 근대 과학에 관한 정당한 설명과 잘 들어맞을 수 있는 주관성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는 것인데, 이것이 독일 관념론의 목표 중 하나다."(110-1)


"피히테는 순전히 객관적인 측면만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절대적 나'가 세계의 궁극적 토대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을 어떤 유사-신학적 의미에서 '정신'이 물질세계를 창조한다고 봤다는 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다음과 같이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즉, 객관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는 세계가 조금이라고 객관적인(대상적인) 것으로 나타나기 위해 세계에 앞선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Gegen-stand'(대상)라는 독일어를 이루는 두 부분이 내비치듯이, 무언가가 대상이 되려면 그것이 아닌 것, 즉 주체인 '나'와 '맞서'stands against 있어야만 한다. 문제는 나의 개인적인 주관적 사유가 이 본질적인 '주관적' 원리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개인이 자리한 특수하고 주관적인 위치와 '주관성'(주체성)이라는 일반 원리 사이의 관계에 관한 상당한 어려움이 여기서 발생한다. 이후 슐라이어마허와 키에르케고어는 개인을 그러한 일반 원리로 환원하는 것을 반대한다."(111-2)


"피히테는 주관적 원리에 절대적인 토대의 우선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객관적 세계의 독립성을 바랄 수 있고, 그는 그런 식의 독립성을 마법으로 사라지게 하지 않으면서도 객관적 세계의 저항을 설명해 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피히테가 모든 것이 주체에게 종속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는 사물의 저항과 자연법칙의 객관성을 인지하지만, 또한 주관성의 원리가 없다면 이러한 저항은 전혀 저항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므로 사물을 알려고 노력할 이유도 없다고 주장하고 싶어 한다. 매우 영향력 있는 그의 발상은 주체가 자기 자신에 대해 분열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절대적 '나'는 '나'(의식)와 비아(객관적 세계)로 나뉘는데, 이것들은 서로 상대적이다. 그 결과 '나'는 '자신에 관하여 하는 행동'으로 이해되는데, 이는 우리의 사유와 행동을 반성하는 능력을 통해 이해될 수 있다. 절대적 '나'가 '무한'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자기-제한은 제한을 극복하기 위한 끊임없는 요구를 만들어 낸다."(123)


"그렇다면 나의 주관성과 다른 주체들의 주관성 사이의 관계는 무엇일까?" "피히테는 《지식론 원리에 따른 자연법의 토대》(1796-1797)에서 나 아닌 주체가 나라는 주체에게 할 수 있는 자유로운 행동 '요구' 내지 '요청'의 측면에서 이 문제를 검토한다." "'요구'는 '나'로 하여금 행동할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게 만든다. '나'는 요구의 원천인 '대상', 즉 다른 주체도 〈이성과 자유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그렇게 한다. 이 과정은 상호적이어야 한다. 각 주체는 자기 자유에 대한 인식의 조건으로서 다른 주체를 의존한다. 여기에 관련되는 구조, 즉 반성 구조는 독일 관념론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 구조 안에서 다른 무언가에 의해 자신에게 자신이 비추어지는 반성(반영)을 통해서만 자신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요구를 통해 나의 자유를 이해하며, 이를 통해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를 모두 깨닫게 된다. 반성은 무언가가 자기 자신과, 자기와 관련된 타자로 나누어짐을 통해 일어난다."(125-6)


"셸링이 피히테에게서 본 문제는 그의 친구이자 시인이며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에 의해 처음으로 식별되었다. 횔덜린의 생각은 같은 시기의 초기 낭만주의 철학의 여러 측면에서, 특히 노발리스의 피히테 비판에서 다시 반복된다. 무언가가 인식 가능한 의미의 '나'가 되려면 타자에 대한 의식이 있어야 하고, 따라서 그 타자와의 관계 안에 있어야 한다. 어떤 것과의 관계 안에 있다는 것은 바로 절대적이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이러한 관계의 전체적 구조는 이 관계에 있는 것 중 어느 한쪽을 바탕으로 한 관점에서만 특징지을 수 없다. 횔덜린은 결과적으로 주체와 대상의 관계 구조를 〈주체와 대상을 부분으로 하는 전체〉에 근거하여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는 이를 '존재'라 불렀다." "이러한 발상은, 주체의 사고 구조를 통해 세계가 파악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하여 그 위에 철학을 세우려는 독일 관념론의 시도 전체를 약화시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무언가를 함의하고 있다."(132-3)


"피히테식 접근은 자연을 주체의 대상으로만 환원할 위험이 있다. 셸링은 자연을 바로 '우리를 위해'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피히테를 공격하며, 이것이 단지 추상적인 철학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원시생태학적 방식으로 분명히 한 예언자적 모습을 보였다. 그는 《초월적 관념론 체계》에서, '절대적 나'가 '자기의식의 역사' 속에서 자신을 소급적으로 알게 된다는 측면으로 자연에서 사유 주체가 생겨난 것을 설명하려 한다. 자신을 인식하는 지점에 도달하면 사유는 이러한 자기 인식 이전의 무의식의 역사를 추적할 수 있다. 이러한 모델은 '나'를 기술하는 피히테의 발생론적 방식에 역사적 요소를 도입한 것으로, 헤겔의 1807년작 《정신 현상학》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체계》는 역사를 이야기하는데, 초월적 주체가 그 역사의 결과다." "그래서 셸링은 무의식의 역할을 파악하려면 개념적이고 규칙에 얽매인 측면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 즉 예술로 철학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35-6)


4 독일 관념론: 헤겔


"헤겔의 《정신 현상학》은 역사에서 정신이 나타난 것에 관한 설명이다. 칸트의 용어로 정신은 사물이 주체에게 나타나기 위한 조건이므로 그 자체로는 나타날 수 없는 것이다. 헤겔은 이 모델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는 칸트가 범주표로 제시한 것과 같은 사고 형식들에 관한 추상적인 설명이 실제로는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생기게 하는 것임을 보임으로써 이 모델을 극복하고자 한다. 칸트는 사고 형식이 그 형식의 대상과─즉, 형식을 통해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와─분리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이런 식으로 둘 사이의 간극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가정은 우리가 현상을 인식하는 형식과 항상 분리되어 있는 '사물 자체'의 문제를 야기한다. 헤겔의 주장은 사고의 형식들이 자극에 대한 반응이라는 가장 원시적인 형식에서부터 정교한 과학 연구 및 철학에서 사용하는 발전된 개념이 이르기까지, 주체와 세계의 상호 작용을 통해 역사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고와 사고의 내용을 분리해서 생각할 이유가 없다."(143-4)


"그렇다면 헤겔은 어떻게 토대에 의존하는 또 하나의 체계 제시를 피해 가는가? 그 답은 헤겔이 '변증법'이라는 말로 의미하는 바에 있다. 헤겔의 '변증법'은 흔히 정립, 반정립, 종합이라는 삼일체의 측면에서 특징지어진다. 그러나 이는 그가 제시하는 방식이 아니다. 변증법의 핵심은 헤겔이 〈부정의 부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감각 자료는 우연적이며 또 다른 감각 자료와 결코 동일하지 않고 모두 제각기 다르므로 우리에게 어떤 진리도 제공할 수 없다. 따라서 감각 자료는 '부정적'이며, 감각 자료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개념이 요구된다. '이것', '여기', '지금'과 같은 문맥 의존적 개념도 그 자체로는 부정적이다. 이련 개념들이 보편자가 아닌 것, 즉 세계 안의 개별적인 것에 적용될 때만 진리를 산출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런 개념의 내용은 그것의 부정적 상태에 의존하여 규정된다. '이것'은 '저것'이 아니고, '여기'는 '저기'가 아니고, '지금'은 '그때'가 아니며 등등. 이런 것들은 더 넓은 맥락 안에서만 진리로 기능한다."(148-50)


"우리는, 사실로 여겨지는 것은 그 사실성이 다른 사실에 의존하기 때문에 부정에 열려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구체적인 주장은 모두 그것을 검증하기 위해 다른 주장에 의존하고, 모든 주장은 결국 새로운 주장과 관련되므로 수정에 열려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식을 자의적인 것으로 만들지는 않는데, 왜냐하면 부정된 것은 그 자체가 지식으로 생각되었던 구체적인 것이며, 새로운 설명을 통해 더 잘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새로운 설명으로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가리키기 위해 헤겔은 '규정적 부정determinate neg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를 헤겔은 〈아우프헤붕〉Aufhebung(지양)이라 불렀다. '아우프헤붕'에는 '부정하다', '보존하다', '고양하다'라는 딱 보기에 모순되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어떤 사실에 대한 초기 지식은 새로운 설명으로 부정되는 동시에, 새로운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보존되고, 새로운 설명이 이전 설명보다 우수하므로 고양되는 것이다."(150-1)


"헤겔의 《논리학》은 존재 관념에 대한 검토로 시작한다. 어떻게 우리는 다른 개념과 연관시키지 않은 채, 즉 매개함 없이, 어떤 관념을 이해할 수 있을까? 매개함이 없다면, 그 개념은 완전히 텅 비어 있고 규정되지 않아서 우리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수 없지 않은가?" "헤겔의 논증은 어떤 개념이든 규정되기 위해서는 모두 다른 개념과의 관계에 의존한다는 것이며, 존재 개념조차도 예컨대 무 개념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 둘 사이의 모순은 생성 개념으로 이어진다. 무언가가 처음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후 다른 어떤 것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즉 자기 자신을 '부정'하기 때문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생성 개념이다." "어떤 개념이 한계를 지니고 있음이 드러나면, 그것의 본질을 바꿔서 한계를 보완할 다른 개념이 등장하고, 사고 구조의 한계에서 나올 수 있는 또 다른 사고 구조가 없을 때까지 이 과정이 계속된다. 철학에서 모순이 소진되는 지점은 헤겔이 말한 《절대 관념》이다."(159-60)


5 관념론 비판1: 초기 낭만주의에서 포이어바흐까지


"슐레겔은 〈당신이 요구하는 대로 전 세계가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완전히 파악될 수 있게 된다면 당신은 괴로울 것이다〉라고 말한다." "예술 작품이 우리 존재의 본성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바로 우리가 예술 작품의 의미를 다 알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정말로 예술 작품을 모든 면에서 다 파악한다면, 더 이상 예술 작품에 관계할 이유가 없다. 위대한 예술은 우리가 그 작품의 위대함을 전부 알기 때문에 위대한 게 아니라, 우리가 그 작품을 계속 다시 찾게 하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다. 따라서 예술에는 '종결'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낭만주의자들은 현대의 실용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의 몇몇 발상과 가깝다. 낭만주의자들의 사유 방식에서 또 주목할 만한 측면은 그들이 직설적인 담론이 아닌 글 쓰기 형식을 취했다는 점이다. 가장 잘 알려진 그들의 몇몇 작품은 짧은 단편과 아포리즘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불완전한 감각을 표출한다."(175-6)


"(계몽주의적 구상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던) 초기 낭만주의자들은 예술이 개념적으로는 접근 불가한 것을 표현하는 방법을 제공할 수 있는 더 포괄적인 이성 개념을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헤겔의 접근 방식은 '범汎논리주의'로 불리는 것, 곧 존재 자체가 본유적으로 이성적이라는 가정 때문에 위험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낭만주의자들이 이성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예술을 사용하는 것은 중요한데, 왜냐하면 전적으로 이성을 초월하거나 이성 바깥에 있는 것에 대한 신비주의적 접근에 의존하거나 무책임하고 아이러니하게 사회와 단절하는 것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성의 한계를 고려하는 또 다른─관련된─방식은 쇼펜하우어, 니체, 하이데거 등에게 나타나는 측면인데, 이는 훨씬 더 큰 문제들을 불러온다. 이는 철학적 합리성에 한계가 있음을 제안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다른 어떤 비이성적인 방식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 이해 방식이 있다는 주장으로 가는 단계다."(181-2)


"쇼펜하우어의 초기 가정은 칸트적이다. 즉, 우리는 세계가 우리에게 '표상'으로 나타난 형태로 세계를 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모든 것에 이유/원인/근거가 있다〉라는 충족이유율의 측면에서 합리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칸트와의 차이점은 쇼펜하우어의 경우 우리가 세계 자체에 '직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과학에 있는 종류의 지식 형태는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가 세계에 접근하는 방식은 '의지'다. 의지는 고통, 배고픔, 성욕처럼 최종적 통제가 우리의 의식적 의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험에 접근할 수 있다. 우리가 실제로 이러한 경험들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식에 주목해 보라. 배고픔이라는 개념이 없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배고픔의 본질, 즉 극복이 요구되는 고통스러운 결핍을 직접적으로 느낄 것이다. 우리의 존재에서 배고픔과 같은 측면들은 우리 몸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에 대한 형이상학적 근거가 비현상적으로 현시된 것이다. 따라서 '의지'가 우선적인 실재다."(188)


"쇼펜하우어는 왜 세계가 움직이지 않는, 분화되지 않은 하나의 사물이 아닌지에 대한 문제를 풀려고 했다. 존재가 본유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맞서 분열되어 있다면, 왜 계속 변하고 있는지가 이해하기 쉬워진다. 의지가 바로 존재의 한 상태를 다른 상태로 바꾸려는 동기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동기가 더 높은 상태의 실현을 향한다고 제안하려는 모든 시도가 망상이라고 생각한다. 즉, 개인의 의지가 공동의 목표에 종속되는 더 높은 상태, 관념론자들이 꿈꾸듯이 개인의 욕망과 공동체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진 더 높은 상태가 망상이라는 것이다. 헤겔에게 욕망에 관한 진리는 자아와 타자 사이의 상호 인정을 통해 직접성이 극복되어 정신이 더 높은 형태로 발전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이 과정에서 욕망은 폐지되는 게 아니라 더 전체를 아우르는 형태의 상호 작용으로 통합된다. 쇼펜하우어는 이런 생각에 반대한다. 그가 볼때 욕망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욕망을 구원하지 못한다."(189)


"우리가 헤겔에게서 보았던 진리의 위계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 개념으로 이어진다. 즉 헤겔의 구상은 국가를 '주어'로, 개인과 가족을 주어의 '술어'로 보는 측면에서 정형화된다. 청년 헤겔주의가 관념론을 비판하는 기본 발상은 관념론으로 인해 주어와 술어가 뒤바뀌었기 때문에 올바른 관계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존재론적인 것에서부터 정치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문제 전체와 관련하여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의 한 가지 형태는 국가가 진정한 실재이며 그 주체들이 진정한 실재의 술어들이라기보다, 실제 살아 있는 개별 주체 없이는 국가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동시에, 관념론에서 인식된 반전을 바로잡고자 하는 이러한 사상가 중 마르크스와 같은 몇몇 사상가는 개인이 주로 사회적 관계에 의해 구성된다는 헤겔 사상의 측면들도 취한다. 이 점에서 헤겔에 대한 반대는 왜곡된 사회적 맥락이 어떻게 개인을 왜곡시키는지를 헤겔이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다."(195-6)


6 관념론 비판2: 마르크스


"마르크스와 니체는 19세기의 기존 철학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과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방식이 점점 더 조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확신을 공유했다. 이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서로 근본적 차이가 있지만, 학계 철학에 관한 그들의 신념에서 비롯된 공통된 결과도 있다. 학계 철학은 철학에 대해 급진적으로 비판하더라도 기존의 제도적 틀 안에서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철학이 현실 세계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것이 중요하게 떠오르는 새로운 문제라면, 빈틈없는 형이상학적 논증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상정하는 종류의 철학 활동은 세계에 무엇을 이루어 내느냐가 결정적이라는 생각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낭만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완전한 철학 체계에 도달한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사람들이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들거나 사람들이 더 합리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가? 오히려 애초부터 사태가 정해진 세계에서 사는 삶이 얼마나 허무한지 사람들이 직시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209)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가 우리가 기본적으로 고향에 있지 않다는 느낌인 '낭만주의적인' 소외감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마르크스가 일찍이 청년 헤겔주의 입장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소외 개념을 재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는 포이어바흐의 입장이 추상적인 방식으로 철학과 종교에 너무 관여하고 있다고 보게 되었다. 마치 주어와 술어의 뒤바뀜에 관한 널리 퍼진 철학적 통찰이 그가 유럽 자본주의에서 본 불의를 실제로 바꿀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마르크스는 소외를, 즉 인간의 권력이 인간으로부터 분리되어 다른 무언가로 전이되는 것을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는 감각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포이어바흐의 관심을, 인간의 자연적 능력이 사회에서 전용되는 방식 때문에 인간에게서 소외된다는 생각으로 확장한다. 루소는 사회적 형태에 따른 인간 본성의 왜곡이라는 주제를 계몽주의에 도입했는데, 어떤 면에서 마르크스는 루소가 확립에 이바지한 전통에 속해 있다."(213-4)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자기 세계에 관해 어떻게 생각할지, 무엇을 할지 결정할 때, 생산과 교환이라는 사회적 형태가 이른바 순수 과학적 또는 철학적 탐구의 결과물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점점 하게 된다. 이는 철학에 대한 청년 헤겔주의적 비판이 철학의 독자적인 존재를 더 이상 지지할 수 없다는 보다 철저한 주장으로 확장된다는 의미다." "동시에 마르크스는 당대의 지배적 사유 형태에 내포된 기만들과 특정한 형태의 사회적·경제적 교환의 관계를 분석함으로써, 그러한 기만들을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을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생각은 이론이 환상 뒤편에 있는 궁극적 실재를 드러낸다는 식의 더 실재론적인 접근 방식을 상정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이는 결국 그리스 시대부터 철학자들이 시도해 온 일이다." "이 시대와 이후 시대에 많은 사람이 과학은 단순히 실재의 본성을 추측하는 데 그치지 않고 테스트 가능한 실재상을 제공하기 때문에 결국 철학을 대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221-2)


7 관념론 비판3: 니체


"19세기 후반에는 이성적 사유가 세계의 진정한 본성을 은폐할 수 있다는 생각이 여러 다양한 형태로 되풀이된다." "그 중 하나는 사유가 우리의 의식적 의지와 독립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유를 선택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그냥 우리에게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초기 셸링은 물질적 자연의 생산성과 정신의 생산성 사이의 유사성이라는 측면에서 사유에 대한 이러한 관점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종류의 사유로도 자연적 생산성 자체에 접근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데, 왜냐하면 자연적 생산성은 광기를 포함하여 모든 양상의 '생각'을 발생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사유가, 이성의 통제가 그칠 때에만 진정한 형태로 드러나는 것을 근본적으로 억압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다. 예컨대, 황홀경이나 광기의 상태에서 사물이 진정한 형태로 드러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태는 개념적 사유로 인해 억압된 사물의 본질을 접하게 해 주는 것으로 추정된다."(231-2)


"칸트의 '정언 명령'은 모든 이성적 존재의 도덕적 평등을 그러한 근거로 상정한다. 물론 문제는 이 근거가 실제로 어디까지 보편적이라 할 수 있냐는 것이다. 《도덕의 계보》에서 니체는 도덕의 기원을 살펴보는 유일한 방법은 도덕 언어의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도덕의 기원에 관한 니체의 중요한 논증은 무엇인가? 니체는 도덕 개념이 초기에는 자기주장의 한 형태라고 결정짓는다. 도덕 개념은 이를테면 권력자가 자신이 가치있게 여기는 것을, 곧 자기 자신을 도덕적으로 우월한 것으로 칭하는 형태다. 그는 도덕 개념을 이렇게 〈이름을 수여할 수 있는 주인의 권리〉이자 〈지배자의 힘을 표현한 것〉이라고 언어 자체와 연결하여 말한다." "따라서 반성 없는 자기주장이 가치의 원천이자 그 자체로 궁극의 가치 같은 것이며, 이러한 가치는 이를 위해 타인을 억압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이러한 입장이 지금까지 살펴본 독일 근대 윤리 사상의 전통적 측면과 어긋난다는 것은 분명하다."(255-7)


"니체는 근대의 도덕적 삶이 〈도덕에서 노예 반란〉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 반란은 약자가 강자에게 분노한 데서 비롯되었고, 따라서 가치를 창시한 귀족들이 '능동적'으로 가치를 명명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저 '반응적'일 뿐이다. 이 주장은 유대-그리스도교 세계관이 그리스-로마 세계관에게 승리했다는 해석이다. 강자는 자기 상태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게끔 약자에게 설득당한다. 니체의 수사는 '포식동물 인간' 길들이기인 문화라는 관념에 그가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나타낸다. 그가 반대하는 까닭은 문화가 인간의 본질적 상태를 억압하기 때문이다. 그는 현대 문화가 이러한 억압으로 오염되어 사람들이 삶에 진저리치게 한다고 주장한다. 문명을 억압으로 보는 발상은 이 시기부터 독일의 문화 비평에서 흔해졌다. 이 발상에 열광하기 전에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많은 젊은이가 (종종 니체를 읽고 나서) 전쟁이 숨 막히는 문화에서 벗어날 방법이라 생각하며 기꺼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는 사실이다."(258)


"니체에게는 (1) 힘으로서의 해석에 관한 형이상학적 주장을 강력히 옹호하는 것(그는 철학 전통을 떠나고자 했지만, 이러한 주장을 펼침으로써 떠나려 했던 전통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2) 그가 '관점주의'라고 부르는 것의 결과를 보여 주는 것 사이에서 분열이 있다. 관점주의는 객관성을 이해하기 위한 중심 위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버린 데서 비롯한다." "《즐거운 학문》을 읽다 보면 쟁점에 관한 관점이 끊임없이 변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 결과 새로운 생산적인 통찰을 얻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심지어 받아들일 수 없는 지배적 관점이 등장하거나, 관점들이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말이다. 이렇게 수행적으로 철학 하는 방식은 철학적 발견은 물론 일상생활에 중요한 실용적 통찰에도 원천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수행적 방식은 또한, 힘의 부과가 아닌 다른 것에서 타당성이 나올 가능성을 무시하고 수행할 때 수행적 방식이 반대하는 것만큼이나 독단적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264-5)


# 수행적遂行的, performative : 청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행위 형태로 생각되는 언어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 '설득의 기술'인 수사학은 언어의 수행적 성격과 관련된다.


8 언어적 전환


"슐리크가 환상이 이닌 실제적 물음에는 오로지 과학적인 해결책만 있다고 가정하고 동시에 언어에 집중한 점은 일반적으로 '분석 철학'의 특징이다." "소위 '언어적 전환'은 앵글로·색슨 세계 분석 철학의 특징이다. 하지만 언어적 전환에는 언어를 철학의 중심으로 삼았다는 생각으로는 포착될 수 없는 매우 특수한 특징이 있다. 18세기 독일 전통에서 주요 사상가들은 이미 언어를 핵심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철학 전통은 지금까지 살펴본 이야기와 어떻게 관련되는가? 예컨대 《비극의 탄생》과 슐리크의 주장 사이에서 과학에 대한 견해 차이는 가장 큰 대조를 이룬다. 18세기에 언어 중심적 철학은 하만과 헤르더에게서 보았던 것처럼, 계몽주의가 감각적 인간 존재 및 역사와 언어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분석 철학은 경험적 증거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형이상학적 사변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과학적 확실성을 추구하는 계몽주의의 한 측면을 이어가고 있다."(271-2)


"이 문제─분석 전통이 언어를 철학의 중심으로 가져왔다는─가 복잡해지는 지점은 언어가 무엇인지에 따라 많은 것이 좌우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하만, 헤르더, 슐라이어마허, 훔볼트는 언어를 주로 세계 안의 사물을 표상하는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 대신 언어를 세계와 우리 안에서 사물이 드러나거나 나타나게 만드는 사회적 행동의 형태로 보았다. 하지만 과학 용례에서는 용어들을 과학 법칙이 예측하는 사물을 애매함 없이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여기서는 언어의 주된 기능이 이미 거기 있는 것을 '재-현전시킨다'는 의미에서 표상적 기능으로 보일 것이다. 분석 전통은 특정 영역에서 언어의 표상적 차원이 결정적이라는 확신이 커지면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수학을 기반으로 한 자연 과학이 신뢰할 만한 과학 법칙을 생산하는 데 성공한 것을 고려해 볼 때, 분석 철학의 선구자들에게 철학의 과제란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언어에 대한 설명를 통해서 기술하는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274)


"빈학단의 철학은 종종 '논리 실증주의'로 불리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명칭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보고 '논리 경험주의'라는 말을 더 선호한다. 일부 좌파들은 여전히 실증주의를 경멸적인 용어로 여기는데, 이 용어는 너무 자주 매우 모호한 방식으로 사용된다. 이 용어는 1830년대에 프랑스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에 의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콩트에게 과학은 '신학적' 단계, '형이상학적' 단계, '실증적' 단계라는 세 단계를 거친다. 마지막 단계는 형이상학적 사변을 거부하고 감각 증거에 기반한 지식을 고수하는 데서 비롯된다. 콩트의 개념은 빈학단의 개념과 차이가 있지만, 빈학단 구성원들도 경험 자료를 지식의 주요 원천으로 삼아 과학에서 형이상학을 배제한다는 콩트의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실증주의에 대한 반감은 처음부터 실증주의가 철학의 영역에서 배제하고자 한 것과 많은 관련이 있다. 이러한 배제에 반대하는 것은 가톨릭교회와 여러 마르크스주의자가 실증주의를 반대하는 것과 연결된다."(289)


"마흐는 19세기 말부터 여러 과학 지향적 철학의 특징이 되는 급진적 움직임에 착수한다. 그는 자신이 실재로 여기는 것을 논리적 추론을 통해 과학적 지식을 구성하는 데 사용되는, 감각 자료에 있는 '기본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제한한다. 감각을 유발할 수 있는 주체나 실재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마흐는 이러한 구성을 사유하는 주체의 일로 보지 않는다. 예측은 논리 법칙을 따라 조직된 반복적 자료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고, 이는 이론이 현실을 '반영'한다거나 현실에 '대응'한다는 주장을 하지 않고도 과학 이론을 형성하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주체와 대상이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보일 필요가 없다." "이와 동시에 우리가 지금 우리 자신에 관해 느끼는 많은 것을 철학적 고찰에서 배제한다. 마흐식으로 보면 '자아'는 '기본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나타날 수 없기 때문에 허구가 된다." "이는 선험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칸트의 선험적 종합 지식 사상이 거부되었음을 의미한다."(290)


"현재 분석 전통에서 무의미를 바라보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다. 두 방식 모두 형이상학이 전적으로 논리적이거나 전적으로 경험적이지 않은 진리 주장을 포함하므로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무의미를 바라보는 첫 번째 방식에서, 형이상학에 대한 이러한 판단은 암묵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경멸적일 수 있다. 빈학단이 대체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는 비트겐슈타인이 생각했던 것처럼,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물음은 〈말할 수 없는〉 것으로 이어지므로 과학적 또는 철학적 해답을 명확하게 얻을 수 없다는 암시도 될 수 있다. 그러나 형이상학이 무의미하다는 주장 자체도 논리적 진리가 경험적 진리가 아니다. 그러한 주장은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조건이 허용하지 않는 주장이다." "그래서 초기 낭만주의는 예술에 집중하는 쪽으로 갔다. 예술 작품이 빠짐없이 완전히 해석될 수 없는 방식을 통해, 철학이 말할 수 없는 것이 나타나는 장소로서의 예술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296-8)


9 현상학


"현상학에서 출발점은 세계 자체가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상학은 분명 '궁극적 실재'의 문제를 여전히 포함할 것이며, 일부 비평가들은 현상학이 현상론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상학은 사물, 소음, 냄새 등의 세계에 대한, 즉 직접적 의미의 세계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일상적 경험에서 출발한다. 후설을 비롯한 사람들은 우리가 사물을 이미지로만 경험한다는 잘못된 생각이 이러한 일상적 경험을 가린다고 생각한다. 사물을 이미지로만 경험한다는 것은 경험이 '사물 자체'에 대한 경험이 아니라, 우리와 사물 사이의 매개에 대한 경험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후설은 우리가 나무를 볼 때, 나무 이미지나, 우리가 나무를 구성해 내는 재료인 한 다발의 감각 자료를 보는 게 아니라, 나무 자체를 본다고 주장한다." "후설은 주관성에 대한 강한 관심을 과학적 객관성이 중요하다는 주장과 결합한다. 이렇게 그는 근대 철학의 낭만주의적 측면과 실증주의적 측면을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한다."(319-20)


"후설이 '본래적 주어짐'이라는 측면에서 본 '거기 있는 것'에 대한 직관은 내 앞에 있는 특정한 사물에 대한 경험의 형태를 띨 수도 있지만, '본질 직관'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경험론자는 사실에 관한 모든 지식은 직접적인 경험 자료로 정당화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후설도 이에 동의한다. 새로운 과학이 그저 이미 알려진 것에서 도출되는 게 아니라면, 직접 경험한 것이자 '본래적으로 주어졌다고' 여겨지는 증거에서 출발하지 않고서,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그러나 그는 이 원리 자체가 경험의 측면에서 확립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원리 자체를 지식의 유일한 근거로 확정할 수 있는 경험 자료라는 게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상학이 극복하고자 것이 바로 이러한 경험론의 실패다. 이 실패를 극복할 원리는 그 자체로 절대적 지위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원리는 과학이 직면한 우연성에 종속될 것이다. 즉, 과학에 토대를 제공하려 하지만 과학이 직면한 우연성에 종속될 것이다."(324-5)


"후설은 〈과학적 사고 활동을 포함하여 모든 실제 생활을 그 안에 담고 있는 전前과학적이고 초과학적인 생활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는 세계가 담고 있는 것에 관하여 서로 의견이 다르더라도,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세계이자 물리칠 수 없는 세계를 바라보는 데서 철학이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의 더 발전된 버전이다." "후설이 제안하는 것은 초월적 철학의 또 다른 버전이다. 생활 세계는 과학의 가능성에 대한 '주관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사회 안의 역사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회들 간의 본질적인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생활 세계 구조는 모든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동일한가? 다른 문화와 과거의 문화 유물을 이해하는 우리의 능력을 고려하면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우리의 이해가 실제로는 타자에게 우리의 관점을 부과한 것에 불과할 위험이 항상 있다. 하지만 근간이 되는 배경적 합의가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다른 언어를 배우고 문화적 차이를 가로질러 소통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어렵다."(338-40)


10 하이데거: 존재와 해석학


"하이데거에게 '존재론'의 과제는 존재Sein와, 개별적인 존재적 과학의 탐구 대상을 구성하는 '존재자'Seiendes를 구별하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근대 철학의 전형으로 간주하는 데카르트에게서, 존재는 〈지속적 현전〉으로 이해된다. 데카르트의 세계는 탐구되기 전에 이미 그렇게 있는 대상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는 사유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이 대상들을 '재-현전시키는(표상하는)' 것이다. 세계의 새로운 측면을 열어밝히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그래서 데카르트의 존재론 개념은 근대 과학이 세계를 수학화하기 위한 기초이다. 이는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 무시간적이고 법칙 지배적으로 기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기서 존재 물음의 '망각'이라는 개념이 더 발전된 의미를 갖는다. 하이데거는 자연 과학의 물질적 대상들을 그 기반으로 상정하는 존재론은, 이것이 '현전'으로서의 존재에 대한 역사적으로 특수한 이해지, 존재 물음에 대한 궁극적인 답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356, 359-60)


"하이데거는 데카르트식으로 세계를 보는 방식, 즉 진리가 무시간적으로 현전하는 세계로 보는 방식을 거부한다. 그 대신 진리는 우리가 세계에 존재함으로써 시간 속에서 출현한다. 어떤 진리가 거기 있든 간에 그것은 우리가 서로, 그리고 세계와 상호 작용함으로써 출현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측면─진리가 이해에 의존한다면, 진리가 있음을 이해하는 존재자가 있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이지만, 문제는 하이데거가 주장하는 방식으로 진리를 시간의 측면에서 적절하게 특징지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현존재는 진리의 가능성의 조건으로서 초월적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하이데거의 입장이 작동하려면, 그러한 가능성의 조건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은 그 자체가 분석 가능성의 조건이기 때문에 더 분석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하이데거는 진리가 모든 분석에 전제되어야 하므로 분석될 수 없는 개념이라고 생각한 도널드 데이비슨 같은 의미 이론가들에게 가깝다고 볼 수 있다."(367-8, 371)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현존재가 진리의 궁극적 기반이라는 생각에서 이미 벗어나기 시작했던 측면들에 집중한다. 그는 존재 자체가 시간에 의해 이미 열어밝혀져 있지 않았다면 현존재가 진리에 접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의 관점의 변화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항상 개별 존재보다 앞서 있으며 세계의 의미와 연결되어 있는 언어의 의미에 현존재가 의존한다는 사실의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누구도 언어나 의미를 '발명했다'고 말할 수 없으며, 후기 하이데거는 언어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존재로부터 온 일종의 '선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그가 언어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토록 반대하게 된 이유다. 과학의 가능성 자체가 존재의 선행적 계시인 언어에 의존하며, 과학적 주장은 세계에서 진리가 '일어나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진리는 또한 과학이 결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있는 '문학'이나 '시', 즉 '디히퉁'Dichtung의 형태로도 일어난다."(372-3)


"하이데거의 후기 저술은 평가하기도 어렵다. 나치즘과 관련하여 자신의 역할에 책임이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때 쓴 것이기 때문이다. 윤리적 결정에 직면한 개인적 상황의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는 기획인 현존재에서 벗어나서, 존재의 진리로 이행하는 것은 편리하게도 세계사적인 변화를 개별 주체를 아주 넘어서는 것으로 만들어 준다고 하버마스는 말한다. 따라서 하이데거는 그 정당성에 대해 공적으로 논할 수 없는 더 높은 진리라는 이름으로, 잘못된 편에 있었던 것을 암묵적으로 변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지만, 그 자체로 결정적 주장은 아니다." "그의 개인적 실패는 차치하더라도, 하이데거 사상의 문제 중 하나는 그의 사상에서 윤리학이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일어나는 일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다. 사태를 그렇게 만든 것은 현존재의 의도가 아니며, 다만 존재가 그런 식으로 '일어난다'면, 그는 누구를, 아니면 무엇을 비판해야 하는가?"(377-80)


11 비판 이론


"프랑크푸르트학파는 급격한 기술 발전이 양차 대전의 어마어마한 파괴와 끔찍한 인명 손실을 불러왔다고 본다(물론 어떤 분야에서는 삶을 훨씬 더 좋게 만들기도 한다). 기술 혁신의 능력은 도덕적, 사회적 진보와는 점점 더 분리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한 가지 반응은 칸트와 실러의 사상에서 비롯된 도덕 교육 개선을 바라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의 근원이, 신학이 더 이상 명확한 지침을 제시하지 못하는 세계에 사는 개인의 윤리적 실패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바로 기술의 응용 자체도 야만성이 늘어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대체로 기술 수단의 사용자들은 기술로 인해 발생한 결과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끔찍한 사건들의 뿌리를 근대 과학의 응용과 사회 조직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서도 찾아보아야 한다. 이러한 탐색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새로운 방식에 대한 요구로 이어진다. 이러한 검토의 주된 모델은 마르크스, 베버, 프로이트였다."(386-7)


"루카치는 전통적인 인식론의 문제─주체와 대상의 분열─를 극복하여 혁명적 행동이 합리적으로 성취 가능해지기를 바랐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발상은 '전체성'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전체에 접근하는 것은 사회생활의 고립된 경험 자료들을 그 의미가 분명히 드러나는 맥락에 통합시킨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 연결 원리는 자본주의가 모든 사물을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헤겔은 모든 것의 상호 연결성에서 근대성의 본질적 측면을 파악하는 철학의 능력을 보았다. 이는 절대정신에 관한 그의 설명에서 드러난다. 루카치는 이러한 상호 연결성을 근대 사회의 물질적 재생산 형태에 기반한 구체적인 역사적 발전으로 간주한다. 세계화의 영향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구상의 힘은 분명하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가져온 변화의 핵심 특징은 개인이 그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 변화에 종속된다는 점이다. 루카치는 이것이 근대 철학에서 이론과 실천이 분리된 근원이라고 주장한다."(388-9)


"발터 벤야민의 작업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열심과 유대교 신비주의에 대한 관심이 결합해 있다. 그는 특히 신이 이해 가능한 세계를 창조한 것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신비주의적 언어 개념에 관심을 두고 있다." "초기 작품부터 벤야민은 자연 과학의 도구적 언어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한 까닭에 가려질 수 있는 언어의 차원들에 관심을 가졌다." "근대 시기의 언어에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한 가지 방식은, 도구적 사용과 심미적 사용 사이의 차이에 있다. 전자는 빈학단의 논리적으로 걸러진 언어라는 발상이 제안한 것처럼, 단어 사용을 훨씬 더 정밀하게 상술하는 데 의존한다. 후자는 다른 진리로는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진리를 갖는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억압된 언어 자원을 이용하고자 한다. 이런 식의 진리는 언어를 새로 독특한 조합으로 구성하는 데 의존한다. 시와 같은 텍스트는 이런 식으로, 그 텍스트를 구성하는 언어적 재료의 역사적 자의성을 초월할 수 있다."(395-9)


"벤야민은 참된 언어가 무엇인지에 관한 신학적 관점을 인류와 근대 세계의 새로운 관계를 수립할 정치적 기획과 결합하고자 한다." "벤야민의 후기 성찰은 대체로 문화 개념 자체가 역사에서 지금까지 승리한 자들의 야만성과 불가분하게 연결됨으로써 훼손되었다는 확신이 기저에 깔려 있다. 문제는 이것이 현재의 완전한 변혁을 통해 과거 전체가 구속redemption될 필요가 있다는 종말론적 의미로 그를 이끌어 간다는 점이다. 이러한 필요는 나치즘이 부상하는 절박한 상황이었기에 이해할 만하지만, 이러한 생각의 배후에서 추동하는 힘은 의문스러운 신학이다. 문화에 대한 기록이 어떤 면에서는 항상 역사의 불의에서 비롯된 억압에 대한 증언이라는 것은 비판 이론의 주요 통찰 중 하나다. 하지만 벤야민이 역사의 구속이 무엇을 수반할지를 구체적인 정치 전략의 측면에서 제시하려 한 진지한 시도는 거의 없다. 게다가 이러한 생각은 역사가 실제로 진보의 측면을 포함하는 방식을 너무 쉽게 간과할 수 있다."(400-2)


"헤겔의 변증법이 규정적 부정에서 철학의 완성인 긍정적 '절대 관념'으로 나아가는 데 반해, 아도르노의 변증법은 철학적 결론이 없기 때문에 '부정적인' 상태로 남아 있다." "근대 자본주의 세계는 많은 사람의 삶을 훨씬 안락하게 만들어 주는 동시에, 가장 급진적이고 비판적인 사유에도 완전히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깊은 상처와 폐해를 가져온다. 아도르노에게 자본주의의 본질을 드러내는 역사적 사건은 홀로코스트다. 홀로코스트의 한 가지 요인은 모든 근대 관료제에 특징적인 조직 구조를 이용해 야만적인 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개인은 자신이 전체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외면하고 자신의 개별적 역할을 변호할 수 있다." "아도르노는 그의 철학적 주저인 《부정 변증법》(1966)에서 히틀러로 인해 우리에게 생긴 새로운 '정언 명령', 즉 아우슈비츠가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명령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도르노는 리처드 로티와 같은 현대 실용주의자에 가깝다."(412-5)


결론


"포이어바흐와 마르크스에서 하이데거와 빈학단에 이르는 다양한 버전의 철학의 종말 개념은 모두 철학과 자연 과학의 관계에 대한 해석에 달려 있다. '실증주의'에 대한 아도르노의 적대감은 자연 과학을 우선시하는 철학이 사회정치적, 문화적 상황에 대한 비판과 관련된 문제들을 배제하려 한다는 그의 인식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아도르노의 반대자들이 경험적 사회 탐구로 인해 비판적 관점이 배제되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 "아도르노는 설명적 과학 이론이 삶을 더 견딜 만하게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실제적 예측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정당한 주장─이는 수많은 철학적 입장이 공유할 수 있는 주장이다─과 과학주의의 구분을 너무 자주 흐리게 한다.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은 주체가 타자를 지배하는 것이 근대성 병폐의 뿌리라는 주장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주장은 후기 하이데거를 비롯하여 하이데거에게 영향받은 이들과 아도르노를 가장 가깝게 만드는 지점이다."(426-8)


"하이데거는 근대성이, 모든 존재와 모든 진리에 대한 확실성이 단일한 자아라는 자기의식, 즉 〈나는 생각하므로 존재한다〉에 기초한다고 본 데카르트에게서 유래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가정을 바탕으로 리오타르는 자연이 가하는 위협과 자기가 부과한 제약으로부터 자신을 해방한다는 명목하에 타자를 통제하거나 배제하려는 주체의 시도를 근대성의 일반적 특징으로 규정한다. 주체의 자기 해방의 '거대 서사'는 실패하였고, 그 결과 인종, 젠더 등 여러 문제와 관련된 다양한 형태의 억압으로 되돌아왔다. 리오타르는 이성이 자신의 틀에 맞지 않는 것을 항상 배제하기 때문에 본유적으로 테러적 요소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세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경쟁적 방식들은 더 이상 일반적인 '정당화 담론'에 대한 '근대적' 탐구에 의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도르노는 이성의 힘에 대한 믿음을 여전히 남겨 놓았다. 물론 그가 정확히 이성의 어떤 점을 옹호하는지는 간혹 불분명하다."(429)


"하이데거와 마찬가지로, 가다머도 근대가 진리를 자연 과학의 전유물로 여기며 전념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했고, 이해를 과학이 제공하는 구체적인 형태의 설명보다 더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진리와 방법》이라는 제목은 자연 과학이 세계가 어떻게 나탈 수 있을지를 미리 결정하는 규칙 지배적인 방법들에 의존한다는 점을 암시한다. 반면 에술은 개별 주체의 우연적인 반응을 초월하는 전통의 '발생'이라는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예술의 진리는, 다양한 맥락에서 전달되고 수용자와 예술 작품 사이에 '지평 융합'을 수반하는 새로운 종류의 이해를 불러일으킴으로써 드러난다." "예술에 대한 이해는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음으로써 일어난다기보다, 작품에 영향을 받아 자기 지평이 변하는 데서 일어난다. 이는 필연적인 종착지가 없는 계속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이해는 예술작품의 '현재적' 본질로, 즉 대상이 아니라 실제 문화에서 시대마다 '발생'하는 무언가로 간주된다."(433-5)


"하버마스는 그가 〈주체 철학의 패러다임〉 또는 〈의식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함으로써 그의 구상 중 가장 영향력 있는 구상에 도달한다. 이 패러다임은 철학의 임무가 주체 쪽에 속하는 것과 대상 쪽에 속하는 것을 규명한 다음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본다. 〈다양한 현상 안의 선행적 통일성〉을 보장하는 칸트의 초월적 주체는 하버마스가 거부하는 것의 대표적인 예다." "하버마스가 볼 때, 주체성의 근간에 도달하려는 시도는 결국 주체의 본성을 신비화해 버릴 가능성이 큰 정초 원리(예컨대 의지)를 찾는 헛된 탐색으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그는 〈주체성이라 이름할 만한 모든 것〉은 실제로 한 사회의 상호주관적인 언어와 관습으로 사회화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하버마스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칸트가 〈예지〉라고 부른 영역에 이성이 초시간적으로 존재한다는 형이상학적 가정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합리성 개념을 발전시키는 것이다."(442-3)


"하버마스는 다른 사람의 의사소통 행위를 이해하는 능력 자체가 이미 합리성의 근본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논증에 참여한다는 사실은 '합의라는 텔로스'를 수반한다." "칸트가 인식, 윤리, 미학의 세 가지 비판으로 나눈 것과 베버의 근대 합리성에 대한 견해를 따라, 하버마스는 〈각각의 고유한 논리를 따르는〉 〈과학, 도덕, 예술〉이라는 세 가지 가치 영역의 분화라는 측면에서 근대성을 본다. 이들 영역은 각각의 〈타당성에 관한 비판 가능한 주장〉, 즉 〈명제적 진리, 규범적 올바름, 주관적 진실성〉을 포함한다. 하버마스는 논리 실증주의가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명제에서 토대를 찾는 식으로 이러한 각 영역의 타당성의 토대를 찾지 않는다. 그 대신 인간 활동의 다양한 영역에서 타당성 주장이 어떻게 '유효화' 될 수 있는지에 집중한다. '의식 철학'이 추구하는 식으로 인간의 관심 영역에 직접적으로, 언어 외적으로 접근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주장의 유효화는 오직 의사소통 행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4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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