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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24
  • : 224

서문 정치의 두 가지 의미


"우리가 자주 쓰는 '정치'라는 말에는 크게 두 가지의 서로 다른 뜻이 있습니다. 일단 하나는 '큰 의미의 정치', 다른 하나는 '작은 의미의 정치'라고 부르기로 합시다. 먼저 '큰 의미의 정치'는 사람이 함께 모여 살 수 있게 하는 일에 관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산다는 조건을 깨뜨리지 않고, 일정한 규범과 규칙으로 질서를 유지하고, 일정한 목적을 공유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큰 의미의 정치입니다. '작은 의미의 정치'는 공동생활 내에서 자기 자신이나 집단이 더 많은 가치를 획득하고 향유하기 위한 수단과 능력, 활동에 관한 것입니다. 여기에 권력의 문제가 있습니다. 권력에는 한편으로 사람들을 뭉치게 하고 협력해서 공동의 사업을 이루게 하는 '물의 이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기 욕심만을 채우며 다른 사람들의 사정을 돌보지 않는 '피의 논리'도 있습니다." "정치의 두 가지 의미, 즉 '큰 의미의 정치'와 '작은 의미의 정치'는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것입니다."(31-3)


1장 정치의 시작과 양날의 검


"소크라테스는 당대의 현인 프로타고라스가 아테네를 방문하자 그를 찾아가 평소에 알고 싶었던 것을 물었습니다. 그가 제기한 문제는 정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프로타고라스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신화를 매개로 정치의 핵심적인 진실을 설명했습니다. 첫째, 가장 기본적인 진실로서 사람은 함께 모여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그는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도 지적합니다. 그에 따르면, 사람의 사회는 언제든 무질서 혹은 무정부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즉 큰 정치의 실패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둘째, 사람이 함께 모여 살 수 있으려면 누구나 인정하고 지킬 수 있는 일정한 원칙과 규범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규범은 일부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프로타고라스는 '양심'과 '정의'를 그 비결로 제시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가 '양심'과 '정의'를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으로 보았다는 점일 것입니다."(43, 47)


"서양은 근대의 전개 와중에 많은 불행한 일을 겪고 또 다른 세계를 상대로 사악한 일들을 많이 저질렀지만, 그 과정에서 독특하면서도 의미 있는 여러 정치적 실험을 해 왔습니다. 간단히 말해 근대 서양에서는 원래 함께 어울려 살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점차 함께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종족이나 언어, 문화, 종교 등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하나의 나라를 이루어 살게 된 것입니다. 근대 이전에도 큰 제국을 건설하여 여러 민족이 하나의 정치 질서 안에 함께 산 일이 있습니다. 다만 제국이 붕괴하면 그런 질서도 함께 무너져 버렸지요." "국민국가가 맞닥뜨린 또 하나의 난관은 이념의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갈등 관계의 이념적 집단들도 점차 주어진 정치 질서의 틀 안에서 공동의 법과 규범에 따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즉 국민국가는 인종적 차이, 종교적 갈등, 이념적 충돌 등을 같은 정치 질서 안에 수용하여 사람들을 같은 시민이자 국민으로 살게 하는 데 성공했던 것입니다."(49-50)


"물리적 폭력이 권력의 기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력을 본질적으로 더 강하게 해주는 것은 설득입니다. 강자는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육체적인 힘 외에 자기 나름의 '양심'과 '정의'를 내세워 '설득'을 합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강자가 이렇게 자기 권력의 이유를 구축하면서 실제 현실을 그런 말과 가깝게 만들어야 할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설득'은 한편으로 강자의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시켜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을 조금이라도 더 정의롭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문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시작됩니다. 이제 권력은 타고난 육체적 힘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이치를 따지는 '말'과 '상징'의 조작을 통해 유지되고 강화되는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기존 권력의 반대편에 있는 구성원과 세력 역시 이제는 말을 통해 반대하고 자신의 이해를 추구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언어가 발달하고 의식(儀式)이나 상징 등 문명의 요소들이 속속 고안되었으리란 것을 알 수 있지요."(58-60)


"모든 정치 현실은 부분적으로 '폭정'의 요소를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집단이든 개인이든, 소수든 다수든 일정 수의 사람에게는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 혹은 그 사회의 지배 권력이 항상 불의한 것으로 보이고, 이것은 그 자체로 현실입니다. 그런 사람은 항상 존재할 것이며, 이 또한 현실입니다. 따라서 권력은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정당화해야 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세계에서 힘과 술수만으로 권력을 지킬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고, 권력은 끊임없이 자신을 합법적으로 보이도록 스스로를 겉치장해야 합니다. 여기서 정치 이론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정치 이론은, 권력의 '설득'이 그랬듯이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정치 이론은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현실의 권력을 정당화해 줍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권력의 자의적이고 폭정적인 면을 제한하고 순화시키는 역할도 합니다. 권력은 스스로 정치 이론과 큰 간극이 없어 '보이도록', 또는 정치 이론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노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64-5)


2장 문명과 자유 그리고 신


"루소의 말처럼 사람들은 스스로의 결정으로 모여 살기로 했고 문명을 이룩했지만 동시에 모두가 그 문명의 쇠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들이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입니다. 사람이 '도시에 모여 사는 동물'인 한 공상적인 자연 상태와 그 속의 자유는 그저 환상에 불과합니다. 어쩌면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도 문명이 제공하는 혜택 덕분일 것입니다. 설령 문명 이전의 자연 상태를 가정하더라도 그 속에서 혼자 사는 자연인의 가장 큰 관심은 어떤 자유의 만끽 같은 것이라기보다 맹수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먹을 것을 찾는 일이었을 겁니다. 그러므로 문명에 대한 비판과 반발은 어디까지나 사람이 정치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 즉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명제에 부딪혀 나타나는 어려움의 다른 표현일 것입니다." "현대 문명이 초래하는 소외나 생태계 파괴 등의 문제는 물론 존재하고 또 중요하지만 이것은 다른 차원에 속하는 문제입니다."(80-1)


"그런데 집단생활 과정에서 사람을 독특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또 하나의 일이 등장합니다. 신의 등장입니다." "집단의 일을 기획하고 주관하는 지도자의 경우에는 보통 사람이 갖지 못한 초인적인 능력과, 그 능력의 사용에 관한 초월적인 정당성을 경험하게 됩니다. 집단의 윤리는 개인의 윤리와 다를 수 있습니다. 개인이라면 죄의식을 느낄 잘못된 행동이 집단의 일원으로서는 정당한 행동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이에 기반해 지도자는 모든 면에서 개인으로서의 상식적인 제약을 초탈하는 정치를 경험하고 그런 의식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경지에서 초자연적 혹은 초인간적 신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겼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신이나 종교가 오로지 인간의 집단생활과 관련해서 생겨난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다른 설명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의 주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권력을 중심으로 이룩한 집단의 성취가 신에 대한 영감을 구체화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82-4)


"때로는 정치가 종교의 대안이 됩니다. 저는 마키아벨리 같은 이의 저서를 읽을 때마다 신의 영광에 대비되는 사람의 영광과 더불어 정치 권력의 위대함을 되새기게 됩니다. 왜냐하면 앞으로도 끝없이 이어질 신의 영광을 향한 사람의 도전에는 근본적으로 사람들의 결집되고 축적된 능력, 즉 정치가 함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후에도 사람들은 새로운 바벨탑을 지으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작가는 진실을 향한 작품을 통해, 학자는 미지를 밝히는 연구와 실험을 통해, 다수 사람은 정치, 특히나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대혁명을 통해 신의 영역을 향한 도전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카로스의 이야기는 이제 실패담을 넘어서 현대인의 정신을 일깨우는 예술적 모티프가 되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소련 혁명, 중국 혁명 등도 모두 바벨탑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모진 좌절을 동반하고 행복한 결말이 보장되지도 않지만 사람들은 정치와 함께 초월적인 어떤 일을 꿈꿉니다."(91)


3장 적과 동지 그리고 동반자


"적이 있으려면 먼저 사람이 함께 살아야 합니다. 루소가 동경한 자연 상태는 공상에 가까운 것이고, 현실에서 사람들은 괴롭지만 한편으로 어쩔 수 없는 근본적인 결정을 먼저 내려야 합니다.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결정 말이지요. 즉 '함께 살아간다'라는 '큰 정치'가 있고 나서 그 안에 '작은 정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작은 정치'의 영역 안에서, 집단 안에서 싸우고 또 집단 바깥의 존재와 싸우는 것입니다. 적은 정치를 전제한 뒤에 있는 것입니다." "작은 정치나 적, 그리고 투쟁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외부 적과의 투쟁은 내부적으로 구성원 사이에 연대감과 동료 의식을 높여 주고, 그에 따라 구성원은 투쟁에 임하여 단결하고 때로는 자발적인 자기희생도 하게 됩니다." "내부 적과의 갈등이나 각축도 질서의 수준을 높이거나 더 고차원적인 사고와 언어의 발달을 촉진하여 진일보한 문명의 발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모든 것은 함께 살아간다고 하는 큰 정치의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104-5)


"갈등은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상대방과 자신을 구별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갓 태어난 아기는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엄마와 자기 자신을 구별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이것이 갈등의 첫 발단입니다. 그다음은 자신과 타인의 이해가 다를 수 있다는 것, 즉 차이를 인식하는 단계입니다. 이 '차이'에서 출발하여 자신과 상대방의 이해가 대립되는 단계에 이르면 드디어 적이 출현합니다. 그리고 이 적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상대방의 손해가 자신의 이득이 되고 자신의 손해가 상대방의 이득이 되는 모순의 단계에 이릅니다. 여기서 관계가 한 단계 더 악화되면 제가 '초모순'이라고 부르는 단계가 됩니다.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상대방에게 위해를 끼치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단계입니다." "정치의 본령은 갈등이 이렇게 높은 '모순' 혹은 '초모순'의 차원으로 악화하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나아가 가능한 한 이 갈등을 집단이 한 단계 더 나은 차원으로 발전하는 동인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107-8)


"1941년 1월 루스벨트 대통령은 후일 '네 가지 자유'로 알려진 연설을 행하였습니다. 이 연설에서 그는 말 그대로 네 가지 자유를 이야기합니다. '언론과 의사 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가 그것입니다. 우리의 주제인 '정치'와 관련해서 이 연설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큽니다. 왜냐하면 이 연설은 사고의 차원에서 처음으로, 적을 어떤 특정한 집단이나 인종이 아닌 보편적, 추상적 개념에 따라 정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루스벨트의 연설에 따르면, 인류의 공통된 적은 다른 민족이나 이웃 나라 혹은 어떤 인간 집단이 아니라 자유를 억압하는 어떤 것, 즉 추상적 개념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가난'이 인류 공통의 적입니다. 또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관습, 제도, 이념, 권력 등이 우리의 적입니다. 신앙의 자유도 마찬가지겠지요. 다른 신앙을 악마화하는 근본주의적 종교나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 그리고 우리 신변의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것이 우리의 적입니다."(109-10)


"19세기를 통해 스포츠에서 일어난 큰 변화는 이른바 '유혈 스포츠'를 지양하고, 점차 엄격한 규칙에 따라서 선수(혹은 동물)에게 잔혹한 피해가 가지 않는 방향으로 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투기를 새로운 차원, 즉 스포츠로 고양시킨 것인데, 이를 흔히 '체육 정신'이라고 부릅니다. 즉 승패만이 중요한 폭력적이고 사행심이 동반된 과거의 스포츠와 달리 인격의 도야, 용기, 인내 혹은 규칙을 지키는 공정한 경쟁을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상대방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타도해야 하는 적이 아니라, 훌륭한 경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동반자(파트너)입니다." "관중에게도 새로운 역할이 부여됩니다. 사실 스포츠 경기에서 관중은 그저 수동적인 구경꾼이 아닙니다. 이들은 제한된 차원이지만, 경기와 선수들에 대한 일종의 심판 혹은 평론가 역할도 합니다. 즉 국민은 정치가가 권력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정치의 장에서 행위자로, 심판자로, 그리고 관중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119-22)


4장 신념, 신앙, 이념


"어쩌면 우리는 이념을 세속적 신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념을 신뢰한다면 자유롭고 합리적인 토론을 지향할 법한데, 현실 정치에서는 이념의 힘보다 오히려 권력에 매몰되어 강제와 폭력, 일방적인 학습의 강요를 통해 이념적 '진리'를 실현하려고 하지요. 이 점에서는 합리적인 맑시즘이나 비합리적인 파시즘, '올바른' 신앙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사실 공산주의자가 자신의 이념을 버리고 다른 이념을 받아들일 때 그 모습은 합리적 토론이나 사고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한 신앙을 버리고 다른 신앙을 받아들이는 '개종'과 유사한 경우가 많습니다. 또 다른 유사점도 있습니다. 신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념의 경우에도 이를 '믿는' 사람들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 초기에는 어느 정도 그 믿음에 충실한 이상적인 통치가 시도됩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신앙과 마찬가지로, 이념도 권력의 논리, 즉 그것의 남용과 부패, 그리고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는 양상을 드러내고 맙니다."(133-5)


5장 내 안의 세계, 세계 안의 나


"19세기 영국의 공리주의자들은 인도에 적잖은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공리주의에 입각한 합리적 입헌국의 실현이라는 야심 찬 정치적 기획이 있었는데, 인도가 그 기획을 시험할 적절한 땅으로 보였지요. 많은 영국인이 이런 목적으로 인도에 건너가서 식민지 통치에 임했습니다. 영국이나 유럽은 기존의 입법 체계나 전통이 너무 복잡해서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하기에 번거로움이 많았던 반면, 인도는 그런 것이 없어서 마치 '백지(tabula rasa)'처럼 자기들의 이상을 마음껏 펼쳐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쌓인 문명과 문화가 엄연히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가 '백지'라고, 쉽게 지우고 쉽게 채울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나아가 이런 인식이 식민지 주민에게만 적용된 것은 아닙니다. 본국의 교육받지 못한 하층민도 그러한 인식 아래 선거권에서 배제되었습니다. 교육받지 못한 집단은 문명화된 집단이 아니라는 논리가 성립하기 때문입니다."(154-5)


"다른 세계에 대한 이해가 어려운 데는 여러 원인이 있습니다. 우선, 사람이 자아 형성기에 습득한 관념이나 습관을 버리기 어렵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다음으로, 기존의 세계에 남아 있는 편이 현실적으로 자신에게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원인은 역시 정치에 있습니다. 기성 권력은 구성원을 다른 세계로부터 차단하는 게 자신에게 유리합니다. 그래서 편향된 선전과 설득을 실시하고, 적절한 적대감을 조성해 구성원을 에워쌉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는 너무나 좁아졌습니다. 또 인류가 직면한 여러 시급한 문제들 중에는 어느 한 집단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게 많고 공동의 대응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세계 도처에는 여전히 순리대로 흐르는 물의 이치가 아니라 역류도 하는 피의 이치가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광활한 우주의 작은 점에 불과한 이 작은 지구에서 다시 더 작은 세계들로 갈라져 피의 이치를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165)


6장 축복과 저주 - 권력의 수수께끼


"어떤 집단이 성립하여 해체되지 않고 공동의 목표를 가진 집단으로 남아 있기 위해서는 '행위와 결정이 마비되지 않게 해줄' 권력이 필요합니다. 집단이 있으면 정치가 있고, 정치가 있으면 권력이 있습니다." "집단이 어떤 시기에 특정한 목적에 합의하고 또 이를 위한 노력을 조율하기 위해서는 권력이 필요합니다. 권력의 안정성이나 확장 여부는 집단의 성취 그리고 구성원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능력에 영향을 받습니다. 권력의 본질은 어쩔 수 없이 폭력입니다. 폭력에는 물리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니고, 따라서 권력을 분석할 때 관건은 권력의 폭력적인 요소가 어떤 형태로 또 어느 정도로 작용하는가입니다. 권력과 관련하여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집단의 목표를 달성한 후 발생하는 성취 혹은 가치를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입니다. 말하자면 분배 과정 및 결과가 구성원이 올바르다고 승복할 수 있는 것인가의 문제인데, 바로 여기서 물의 이치와 피의 이치가 가장 적나라하게 얽힙니다."(170-1)


"권력과 폭력의 관계는 몇 단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정도가 가장 큰 것은 이른바 '경찰국가'라고 부르는 경우입니다." "그다음은 '법치 국가'입니다. 분쟁은 법정에서 해결되고, 법정의 결정은 강제력에 의해 뒷받침됩니다. 이를 두고 '소송 사회'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공동체적 질서'의 경우가 있습니다. 질서 유지가 경찰의 개입이나 법에 의한 것보다 사람들 사이의 암묵적인 이해, 전통, 관행, 예절 등에 따라 이루어지는 경우입니다." "조금 다른 경우지만, 역시 폭력의 개입이 최소한으로 국한되며 정교한 의식(ritual) 등에 의지하여 통치를 하는 예도 있습니다. 문화인류학자들이 '극장 국가'라고 부르는 경우입니다. 한편 '문화적인 통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사회의 구성원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공적인 일에 스스로 '기쁘게' 참여합니다. 이 경우에도 표면에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폭력의 요소는 잠재해 있습니다."(187-9)


"한 가지 더 중요한 문제는 권력이 사람을 변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권력이 부패하는 문제의 이면에는 사람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집단의 결집된 힘은 개인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차원의 위력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힘을 움직일 수 있는 권력자의 정신은 이미 일반 사람들의 차원을 벗어나 있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인격 수양이나 도덕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그 이상의 문제입니다." "권력의 남용과 오용, 그리고 부패는 피하기 어렵다기보다 오히려 필연적인 것입니다. 그중 가장 경계해야 할 한 가지 형태는 이상주의와 권력의 결합입니다." "'대의'에 입각한 자신들의 행동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하고 이를 거부하거나 저항하는 사람들을 용서 없이 탄압하고 제거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면서 점차 자신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집권의 이유, 즉 권력의 본래 목적은 상실된 채 권력 그 자체가 목적이 됩니다. 집단을 위한 권력이 아니라, 권력을 위한 집단이 되는 상황이 초래됩니다. 흔한 일이지요."(191-4)


7장 정의와 정의의 다툼?


"국가란 매우 높은 수준의 추상체입니다. 국가는 하나의 단일 의사가 아니라 수많은 생각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복합체입니다. 기본적으로 국가는 정치 공동체로서 국민에게 공적 활동의 터전이 되는 동시에 고향과 같은 애착의 정서를 느끼게 해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실현하는 터전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애국심은 이미 국가를 이룬 사람들보다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신생 독립국가의 국민에게서 더 강한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애국심은 근대 세계에서 매우 강렬한 대중적인 열정이었습니다. 근대 국가는 이런 대중의 열정에 기초해서 성립했지요." "한편 국가에 대한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비판이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에게 국가란 단지 특정한 집단 혹은 계급이 인민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이런 근본적인 비판이 국가를 이론적으로 버티게 해주는 근대 세계의 근본 원리, 즉 이성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도 염두에 둘 만합니다."(207-8)


"헤겔은 국가 간의 전쟁을 일러 '정의와 정의의 싸움'이라면서, 전쟁이 한 국가의 건강 상태를 보여 준다고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현실에서 국가는 이성의 최고 발현 단계이므로 국가가 '최후의 이성'에 호소하는 경우, 그런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정할 권위는 없는 셈입니다. 전쟁이 특정한 국가의 건강을 보여 준다는 말은 전쟁 자체를 이상화하는 군국주의적인 뜻이 아닙니다. 육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질병에 잘 대처할 수 있듯이, 정신과 육체 모든 면에서 튼튼한 국가가 명운을 건 폭력 대 폭력의 대결, 전쟁이라는 질병에 더 잘 대처하리라는 이야기였지요. 한편 전쟁이 일어나면, 국민 개개인은 자신의 운명이 전체 즉 국가와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국가의 명운에 온몸을 바치기도 합니다." "이는 파시스트나 군국주의자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입니다. 헤겔의 말은 이처럼 학교 연구실을 벗어나 전쟁이 일어나는 현실과 맞물리게 되면, 애초 의도와 달리 엄청난 괴리를 만들어내게 됩니다."(212-3)


8장 물과 피 그리고 사람


"권력에 대한 견제 장치가 잘 구비되어 있고 그것이 안정적으로 작동한다고 믿는 이른바 선진 민주주의 국가조차도 권력의 오작동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합니다. 여기에 오늘날 주요 국가들이 축적한 무기의 위력을 떠올리면, 권력의 불안정성 때문에 전 세계가 한순간에 파멸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이란 게 의외로 소박한 데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바로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건전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한 사람, 자기 소신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한 명 한 명이 전 인류 차원의 엄청난 파국을 저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물론 언제나 권력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결정적이고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들이 세상 사람들을 위한 최선의 결정을 하리라고 믿고 또 그러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이들이 반드시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사람 사회의 권력이란 근본적으로 '물'보다는 '피의 길에 가까이 있기 때문입니다."(238-9)


"'위대한 지도자'는 온갖 좋은 말로 그의 권력을 정당화합니다. 자신이야말로 불의한 세상을 바로잡고 행복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적임자라고 주장합니다. 때로 그것은 진실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의 본질은 아닙니다. 그가 무슨 말을 하건 우리는 피의 길을 내다보고 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몸속에는 물도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 하나하나가 물의 이치, 즉 모두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동시에 언제 칼을 휘두를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권력은 그 작용에 관한 정보가 상당한 정도로 일반에게 공개되어야 하며 제도적으로 견제되고 제어되어야 합니다. 공동체가 함양한 도덕적 규범에 의해서도 제어되어야 합니다." "정치란 결국 사람의 영역입니다. 사람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가장 궁극적이고 중요한 희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명분으로라도 사람들 사이의 소통과 교류를 막는 것을 이 시대의 '인류의 적'으로 상정해도 될 것입니다."(240-1)


후기 한국 현대사를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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