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부쩍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왜일까?
장인어른이 암에 걸렸다. 벌써 세 번째다. 수술을 두 번이나 한 전력이 있고 마지막 암이 걸렸을 땐 연세가 많은 나이라 손을 댈 수가 없는 상태였다. 장녀인 아내는 장인어른의 병수발을 자처하고 나섰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로서는 그런 아내가 안쓰럽기 그지없다. 장인어른은 아직 자신의 병이 어느 단계인지 적확하게 알지 못한다. 만약 4기 암이라는 것을 장인어른이 알게 되면 자포자기 할까봐 아내는 노심초사다. 하지만 지금은 발병한지 벌써 9개월이 지났기에 장인어른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눈치가 역력하다. 하지만 아직도 3기라는 정도만 알고 있다. 이 상태에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뭐라 해야 할지, 말 할 수 없는 묵직한 무언가가 명치끝까지 올라왔다. 어제도 장인어른 혼자 시골에서 올라오셨다. 살고자 하는 의욕이 강하다는 아내의 말이 왠지 모르게 씁쓸하다. 인간의 본성은 죽음을 이길 만큼 강하다는 말인가.
죽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생과 사는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아니 없다. 아직 겪어보지 못했기에 더욱더 그런 것 같다. 알고도 반복해서 실수하는 인간으로서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어찌 알 수 있으랴. 오십이라는 고개를 지나면서 이젠 부모들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삶 자체가 고통이다, 라는 말이 있다. 흔한 말이기도 하지만 이것을 달리 표현한다면, 고통을 없앨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 말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왠지 모르게 죽음으로써 삶의 고통이 없어진다는 말엔 알 수 없는 저항감이 생긴다. 우린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장인어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죽음보다는 살고자 하는 힘이 더 센 것 같다.
한국인 최초 미국의 호스피스 정신과 전문의로 13년간 활동해오며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해온 저자는 더 많은 이들의 마음을 돕고자 첫 책 『죽음을 읽는 시간』을 출간했다. 그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신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을 덜어주려는 도움이라고 말한다. 완치되지 못할 병으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집으로 돌려보내진 사람들은 삶의 의욕을 잃기 쉽다. 이런 극명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자살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할 계획을 품고 있거나, 삶이 자신의 통제권 밖에 있어서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살아야 하나?’라는 의문을 마음속에 품을 정도로 삶의 질이 바닥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언제든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 운명이다. 지금 당장은 건강하고 젊을지라도 한번쯤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 질문은 곧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로 이어지며 지금 이 순간의 삶을 만끽할 수 있게 만든다. 저자는 의사의 눈으로 바라본 환자들은 죽음 앞에 놓여 있다. 그들을 통해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한지, 무엇을 후회하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남은 생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지, 남은 이들을 위해 어떤 말들을 남겨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후회 없는 현재를 축제처럼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간접경험이라는 말이 있다. 만약 죽음을 경험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막대한 돈을 들여서라도 그 낯선 경험에 투자를 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미국의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의가 된 최초의 한국인 정신과 의사의 말을 들어보는 것도 괜찮은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