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대학도시에서 수공업으로 교과서가 제작되는 과정에
인쇄문화의 여러 특징이 이미 싹트기는 했으나,
지식 생산 체제에 있어 결정적인 변화가 활판인쇄에 의해 나타난 것은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활판인쇄의 산업화가 중세의 대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신의 장인'이라는 영역 횡단적 네트워크를 새롭게 창조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초기의 인쇄업자 중에는 성직자나 대학교사가 드물지 않았다.
전직 수도원장이 인쇄소에서 편집자나 교정자로 일하면서
금속 장인이나 기계공과 밀접하게 제휴를 맺은 관계도 나타났다.
천문학자와 금속조각사, 의사와 화가가 손을 잡는 이러한 상황은
지적 노동의 낡은 경계선을 무너뜨렸고,
"두뇌와 눈과 손의 노동이 합쳐진 새로운 방식"이 ... 발전해나갔다.
...
이렇게 출판업자는 경직되어버린 동시대의 대학보다 훨씬 뛰어난
지적 창조성을 갖춘 네트워크 환경을 형성해나갔다.
게다가 이 네트워크는 저자 발굴이나 책의 편집 과정만이 아니라,
재판을 찍을 때 내용을 개선하고 간행 목록을 갱신하는 등 반성적인 통로로서도
유효하게 기능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신간에 관해 종종 독자들이 지적해오는 오류를 수정하거나
새로운 정보를 얻어 이를 다음 판에 반영하는 식이었다.
16세기의 출판사 중에는 "통신원이라는 큰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각 출판물에 대해 비판을 요청하고,
때로는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거나 오류를 없애도록 지적해준 사람의 이름을
발표하겠다고 공약하는 업자"도 있었다고 한다.
16세기 이후 이와 같이 출판사가 매개하는 지식 네트워크가
대학을 능가하는 지적 창조성의 거점이 되기 시작한 상황은,
지적 창조를 담당하는 주체가 도시에서 도시로 편력하는 '학생'으로부터
서재나 서고에서 대량의 책을 읽고 비교하는 '독자'로 변화한 사실과도 대응한다.
활판인쇄에 의해 책이 대량으로 양산되고 값은 저렴해졌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지식인이 이전보다 훨씬 싸게 많은 책을 구입하여
수중에 둘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이전이라면 일생을 여행에 소비해야만 가까스로 볼 수 있었던 양보다
훨씬 많은 수의 문헌을 가만히 앉아서 손에 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책장에 나열된 책이 늘자 당연히 다양한 텍스트를 조회, 비교할 기회도 늘어났다.
바야흐로 지식인이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 수도원에서 저 수도원으로 편력하는 시대가 가고
서재나 도서실에서 "서책을 면밀하게 비교하고 대조하는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 요시미 순야, <대학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