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나라에서 운전면허증에, 사고로 사망할 경우 장기 기증을 할지 안 할지 표시해둔다. 이 표시 형식도 훨씬 더 나은 틀이 따로 있다. 장기를 기증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사람은 없겠지만, 사람들 대부분이 별생각 없이 이 선택을 한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장기 기증률을 비교한 것이 그 증거인데, 이 수치는 문화가 비슷한 이웃 나라들 사이에서도 크게 달랐다.7 2003년에 나온 기사에서, 오스트리아는 장기 기증률이 거의 100퍼센트인 데 반해 독일은 12퍼센트에 그쳤고, 스웨덴은 86퍼센트인 데 반해 덴마크는 고작 4퍼센트였다.
이 엄청난 차이는 질문 형식이 유발한 틀짜기 효과다. 기증률이 높은 나라는 장기를 기증하고 싶지 않다면 기증 거부 칸에 따로 표시를 해야 하는 ‘거부 선택’ 형식을 택한 나라다. 그러니까 이 간단한 조치를 하지 않으면 기증하겠다는 뜻으로 간주된다. 반면에 기증률이 낮은 나라는 기증하고 싶다면 기증 찬성 칸에 따로 표시를 해야 하는 ‘찬성 선택’을 택한 나라다. 이게 전부다. 사람들이 장기를 기증할지 안 할지를 예견하는 최고의 단일 지표는 해당 칸에 별도로 표시하지 않았을 때 자동으로 선택되는 기본 옵션을 무엇으로 지정했느냐다.
시스템 1의 특징으로 설명되는 다른 틀짜기 효과와 달리, 장기 기증 효과는 시스템 2의 게으름으로 가장 잘 설명된다. 이미 결심이 선 사람들은 해당 칸에 표시를 하겠지만,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해당 칸에 표시를 할지 말지 애써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장기 기증 여부를 표시할 때, 해당 칸에 있는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한다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어떤 칸에는 ‘2+2=?’라고 묻고, 다른 칸에는 ‘13×37=?’라고 묻는다. 이러면 기증률은 틀림없이 요동칠 것이다.
구성 형식의 중요성을 인정한다면, 정책적 고민이 생긴다. 어떤 형식을 택해야 할까? 답은 간단명료하다. 장기 기증이 활발해야 사회에 이롭다고 생각한다면, 운전자의 기증률을 100퍼센트 가까이 끌어내는 구성 형식과 4퍼센트 끌어내는 구성 형식을 두고 중립을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알라딘 eBook <생각에 관한 생각> (대니얼 카너먼 지음, 이창신 옮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