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지 잘 보여 주는 본보기가 있다.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호레이쇼 스패포드HoratioSpafford는1871년에 일어난 시카고 대화재로 전 재산을 잃어버렸다.2년 뒤, 아내 애너와 네 딸을 대서양을 건너는 여객선에 태워 영국으로 보냈다. 그런데 그 배가 다른 선박과 충돌해 침몰하기 시작했다. 물이 점점 차오르자 애너는 딸들을 부둥켜안고 기도했다. 마침내 여객선은 물속으로 완전히 가라앉고 가족들도 파도에 휩쓸려 뿔뿔이 흩어졌다. 결국 네 딸은 물에 빠져 숨졌다. 애너는 정신을 잃은 채 떠다니다 구조선에 발견되었다. 영국으로 이송된 애너는 남편에게 단 두 단어로 전보를 보냈다. "혼자 구조됐음."
아내를 데리러 영국으로 가는 배 위에서 호레이쇼 스패포드는 찬송가를 지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이곡이 바로 그가 쓴 찬양이다. 여기서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사실이 있다. 깊은 슬픔을 다독이느라 안간힘을 쓰며(늘 잔잔한 강 같은) 하나님의 평안을 갈구하는 이가 찬송의 대부분을 예수님과 그분의 구원 사역을 노래하는 데 쏟은 까닭은 무엇인가? 어째서 그처럼 참담한 상황에도 자신의 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스패포드는 이렇게 노래했다.
내 지은 죄 주홍빛 같더라도, 주 예수께 다 아뢰면
그 십자가 피로써 다 씻으사 흰 눈보다 더 정하리라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11]
이러한 고백이 잃어버린 어린 네 딸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모든 면에서 연관된다. 까닭을 가늠할 수 있겠는가? 고난이 닥쳤을 때, 평안을 잃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벌을 받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십자가를 보라! 모든 형벌이 예수님께 쏟아졌다.
또 다른 요인은 하나님이 보살펴 주시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십자가를 보라! 성경은 "나도 아들을 잃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가 아니라 너희를 위해 자원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게 했다. 그러기에 너를 내 가족으로 맞아들일 수 있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밝히 드러내 보인다.
이 찬송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을 생각하고, 감사하며, 사랑해서 그 평안에 깊이 잠기는 이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바울 역시 어떤 환경에서도 그런 평강을 누렸다. 이제 그 평안이 우리에게도 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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