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동물들
_동물과 함께 살기 위해 시작해야 할 이야기들
#최태규 #이지양 #도시의동물들 #사계절 #한국도시동물
표지에 공을 얼마나 많이 들였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음 어쩌면 모를 수도 있다. 한쪽 눈이 잠긴 아기 고양이의 웅크림이 너무 애처롭게 보여서 모든 시선을 그쪽에 빼앗길 수도 있으니 말이다.
책을 반으로 분할하여 오른쪽에 은색 사각형 작은 점이 점점이 찍혀 있는 것을 꼭 봐줘야 한다.
조류 충돌 방지 스티커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 책을 꼼꼼하게 읽고 주변을 다니면서 필요한 곳에 그 필요성을 할 수 있는 최대한 전하고 다녀야 할 사명감 같은 것이 생긴다.
폭력과 멀지 않은 돌봄, 자본의 횡포, 달라진 횡포, 달라진 환경과 새로운 윤리의 들끓음 속에서 여전히 소외된 동물들의 삶
동물의 입장에서 동물을 주어로 삼아 대화하는 공론장의 탄생
뒤표지에서는 이렇게 책을 홍보하고 있다.
맞다. 동물의 입장! 이 강조되어야 하는 부분이 이 책의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이다.
동물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늘었으나 '제 딴에는~'이 붙는 듯하다는 추천인의 말처럼 우리가 마음대로 좋아하고 그 좋아하는 티를 내고 표현하는 그 모든 행동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책은 꼼꼼하게 문제 제기를 한다. 그래서 추천인 역시 이 책은 '뻔한 동물책'이 아님을 강조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우리와 아주 친숙한 동물들이다.
1부 인간과 부대끼며 사는 동물 편에서는 길고양이, 개, 비둘기, 쥐, 해충, 제비가 등장하고
2부 도시 속 야생동물의 의미 편에서는 너구리, 멧돼지, 고라니, 백로, 까막까치, 작은 새들, 야생동물구조센터가 나온다.
3부 돈이 되는 동물_동물 산업 편에서는 동물원, 푸바오, 넙치와 우럭, 마트의 동물들, 동물을 업으로 돌보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며 글을 쓴 최태규 님과 사진을 찍은 이지양 님의 대화로 마무리된다.
책을 읽으면서 페이지 모서리를 참 많이도 접었다.
그만큼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접한 것이고 그 수와 양이 상당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오랜 교직 생활 중 수업과 조종례를 통해 도시를 가르치고 동물권을 언급한 횟수가 꽤 된다고 생각했으나 부끄럽게도 아직도 그 깊이는 얕고 아직도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어떤 해결책을 강력하게 제시하는 억지스러움보다 읽고 보는 이의 준비된 상황? 마음가짐?을 알 수 없기에 그랬는지 열린 마음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수준이다. 툭 던지고 함께 생각해 주기를 권한다.
'길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말아야 할 그 많은 이유를 알고 있으면서도 기어코 밥그릇과 물그릇을 비가 들이치지 않는 곳에 가져다 놓고 고양이가 주린 배를 채우기를 바라는 것일까? 동물원에서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고 그렇게 써붙여 놓아도 관람객들은 기어코 자기가 먹던 음식을 던져 준다. 눈앞의 동물에게 이타적이고 싶은 인간의 마음은 이상할 정도로 강력하다.'
이성과 감성이 내리는 선택과 결정 속에서 우리가 진짜 동물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고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동물들을 사랑하고 챙긴다고 행동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과 화두! 대상을 바꾸지만 모두 우리 인간이 사는 터에서 함께 공존하는 동물들에게 함께 적용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개는 가축이 아니다.'라는 구호는 정작 육견 농장, 애완견 농장을 운영하며 축산법에 의해 농업인이라는 지위를 얻은 사람들의 이해와 상충될 수 있다. 한데 그것보다 이 책은 개만 가축에서 빼내려는 듯한 이 구호가 종간 차이를 과장하고 강조하는 인간의 오래된 습관에서 비롯됨을 지적하고 파고든다. 다른 동물 중에 인간이 그렇다고 내세우듯 이제는 다른 동물들과 개를 구분하려는 시도 역시 그런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너구리와 멧돼지에 대한 기록에서 이 문장도 인상적이다.
'너구리는 개과 동물이고 라쿤은 아메리카너구리과 동물이다. 둘 다 귀엽지만 둘 다 우리의 귀여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한반도의 인간은 멧돼지의 천적을 모두 없애버린 죄로 멧돼지를 계속 죽여야 하는 시시포스의 노동을 하게 되었다. '공존'이라는 말을 대충 쓰기에는 너무 늦었다. 시시포스의 노동이라는 것이 얼마나 기운 빠지는 일인지 우리가 지금 동물을 상대로 그런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니 스스로 한심스럽다 할 수 있겠다. 끝없이 반복되면서도 결코 완성되지 않는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노동에 대해 왜 고치려고 하지 않는지 말이다.
고라니 이야기에서 인상적인 문장은 '~그리고 또 한 가지 누군가의 죽음을 조롱하지 않으면 좋겠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부분이었다. 어느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된다는 것, 그 분야에 대한 공감을 전혀 이 분야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 읽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문장력까지 모든 것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더 옮겨두고 싶은데 이 공간의 글자수 제한이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