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과 풋사과
_모든 것이 불타 버린 잿더미 위로 다시 한번 삶을 쌓아 올리는 의지와 소망
#단요 #위즈덤하우스 #장편소설 #성냥과풋사과 #소설
책을 다 읽고 한참 멍하게 있었다.
한 권의 긴 철학서를 읽은 듯한 기분도 들었고, 그저 아이가 시골로 내려와서 주인공과 함께 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데 이처럼 두툼한 책 속에 가득 채워질 내용으로 그것도 지루할 틈 없이 읽히는 기록으로 만들어낸 서사에 놀란 얼굴로...
'섣부른 이해 대신 인내를, 손쉬운 다정함 대신 기다림을 건네는 작가만의 방식으로 전하는 위로와 회복의 서사'
출판사에서도 기뻐할 책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위와 같은 멋진 문장으로 시작하는 서평을 남기고 싶었고, 읽으면서 차곡차곡 스며들어 누적된 감동을 고스란히 잘 묻힌 글을 나름대로 써보고 싶지만 글쓰기에 특화되지 못한 못난 머리와 몸뚱이를 탓하며 그렇게 멍하게 있었나 보다.
길든 짧든 삶의 여정 속에서 커다란 굴곡 없이 살아온 독자들이 읽어 내려가며 느끼는 감동과 그렇지 않은 독자들이 느끼는 공감 또한 다를 듯하다.
난 어느 쪽일까?
내가 이렇게 내 삶 속에 어려움을 자로 재 듯, 저울로 달 듯 글 속 주인공들이 그러하다.
선재와 건우, 이서, 당고모 그리고 지금 세상에 없는 할아버지들, 큰이, 작은이 까지 모두 자신이 겪은 고통과 남이 겪는 고통을 서로 비교하며 힘들어하거나 자신만의 위로를 건네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비교해서 어쩌려고.... 굳이...라는 말이 글 속에서 꽤 나왔던 것 같다.
가장 많은 말을 하며 이 글을 이끌어 가는 선재는 말이 많다.
그 말은 건우에게 건네는 말이 가장 많고, 파트너인 수와 당고모, 사촌형에게 하는 말이 그다음일 거다.
이서에게 하는 말은 왠지 쉼표 같은 느낌이었다. 답답하지 않고 그저 과거를 회상하며 선재에게도 꿈같고 꿀 같은 시간처럼 느껴져서 말이다.
선재의 가장 많은 말을 듣게 되는 건우는 어떤 느낌이고 건우에게 쏟아내는 선재의 느낌은 어떠했을까?
열다섯의 건우는 그 많은 말 중 얼마만큼 이해했을까?
선재는 자신의 말이 얼마만큼 전달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며 말을 한 것일까?
건우를 쳐다보며 말을 하지만 그 말은 곧 자신에게 하는 말이고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하는 말이며, 혹여나 과거의 자신에게 건네는 말은 또 아닌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내가 어째서 이렇게 힘들어하는지 의아해하곤 했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세상으로부터 밀어내는지... 나는 그 이야기를 오래도록 망설여왔지만 조만간 털어놓게 될 듯하다. 내가 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제멋대로 떠들어댈 것이기 때문이다. 학대나 참사를 겪은 아이가 감정 없는 살인마가 되는 이야기도 무감각한 아이가 감정을 되찾아 완전해지는 이야기도 모두 지겹다. 나는 그냥 이 상태로 살아 있다. 삶이란 모든 것이지만 생각보다 별것 아니다.'
뒤표지에 나온 이야기가 바탕이 되고 토대가 되어 선재는 끊임없이 건우에게 이야기를 해준다.
인내하며 기다리며 말이다. 과거의 소년 선재를 생각하면서... 물론 선재의 말을 못 알아들은 듯한 건우 역시 선재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끝까지 있어준 것도 건우 방식의 인내이며 기다림이라고 생각이 든다.
'내가 선을 행하려 할 때에는 언제나 바로 곁에 악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라는 문장의 인용, '나는 누가 불쌍하다거나 슬프다거나 하는 감정은 잘 모른다. 전혀 몰라. 하지만 네가 좋아지길 바란다는 것만큼은 진심이고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진심이고...'라는 고백에서 선재가 건우를 바라보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설익은 채로...
수많은 사건과 사고, 지금도 전쟁으로 이유 없이 죽어가는 생명들 고통받는 사람들
한때 낙원이었을 여기에 없이 천국에 머무는 신을 찾아 기도하지만 그 신의 역할에 의문을 던지고 원망을 하기도 하고, 나 혼자 힘으로 태우기 힘든 아픔을 나름 대형 폐기물 같은 쓰레기로 취급하고 내놓으면 수거해 가는 공무원들과 같이 신이 가져가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같이 미워하지도, 달리 축복을 기원하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 혼란스럽다.
다만 나도 생각을 멈추지 않고 기다리고 인내하며 답을 찾기 위해 성냥을 태워 만든 다 타버린 재를 쳐다보거나 시금털털한 풋사과라도 어디에 내다 팔아보든 뭐든 해볼 뿐
_도서협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