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봉현 #김영사
'이곳이 싫어 떠난 여행에서 어디든 괜찮다고 깨들은 순간의 기록'이라고 앞표지에 적혀있다.
그가 배낭을 메고 아침에 그림을 그리러 나간 곳만큼 많은 작가가 그린 작가의 많은 수의 그림과 함께 말이다.
표지에는 모자와 머플러를 둘러쓰고 있기도 하고, 똥머리에 반팔로 가볍게 입은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지도를 펴보며 작은 배낭 차림이기도 하고 배낭 없이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 그리고 책을 읽다 보면 알게 되면 산티아고를 가는 중이구나. 싶은 복장을 입은 그림도 보인다.
뒤 표지도 보자.
베를린, 파리, 산티아고(두 번이나), 이집트, 인도, 네팔... 가만 인도에 가기 전에 비자를 받기 위해 스리랑카에도...
지구 반 바퀴를 돌았다고 적혀있다.
그래도...
많이 돌아다녀서 많이 보고 많은 곳에 여권 도장을 찍은 것으로는 다른 여행기에 오히려 모자란 감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슥슥 그린 그날그날의 순간 기록. 그림인지 일기인지 모를 말이다.
또
끊임없이 성찰하고 고민하는...
떠날 때부터 답을 구하겠다는 굳은 마음은 없었던 듯하다. 그냥 싫어서 혼자가 낫겠다는 생각에 훌쩍 떠난 여행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답은 참 쉽게 구해지지 않는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멈추지 않는다. 걷기를 멈추지 않는 것처럼...
파리에서 농장으로 다시 어딘가로 가서 머무는 것은 멈춘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낯선 곳이 낯설지 않게 되는 익숙한 하루하루를 쌓았을 뿐...
그릴 곳이 많은 곳은 그렇게 머물다가 다시 떠나고 또다시 찾기도 하고...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내린 결론에 대해 궁금하고 큰 기대를 했다면
어찌 보면 싱거운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에 실망? 할 수도 있다.
싫어서 떠났는데 그곳에서도 세상 어디에서도 '나'는 여전했고
행복과 불행, 만남과 이별, 기쁨과 슬픔이 있었다고 적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의 끝에서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는 답을 이미 제목에 툭 던져놓은... 정답과 해설지를 먼저 보고 문제를 풀어낸 기분이 든다.
그래서 결론 보다 과정에 초점이 맞춰진 책이라고 아주 건조하게 평할 수 있다.
p164
'글의 끝에 도착하려고 걷는 것이 아니다. 길을 걷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즉 이 책은 답을 찾지 못해 방황한 수많은 여행지 사이를 걷고, 쓰고, 그리고, 사색하다가 마침내 '나'로 가득 채운 작가의 일러스트 에세이라는 두어줄 평이 이 책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러니 결론보다 무엇이라 쓰고 무엇을 어떻게 그렸으며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걷고 또 어디를 걸었는지 그 시간을 함께 공감하고 공유하면 그만인 것이다. 작가님의 경험에 비추어 나 역시 나를 만날 때까지 그렇게 책을 읽는 내내 마음으로 따라 걷고 따라 그리고...
나를 찾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p235
'주어진 책임이 사람을 짓누른다. 무언가를 해야 해, 무엇이 되어야 해, 그런 것들이 나에게 무엇을 남겨주었나?'
굳이 이런 힘든 과정을...
p208
'내가 태어나기 전 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떠나는 것...'
주어진 책임으로도 벅찬데... 세상과 남을 위해 무엇을 더 해야 한다는 것 역시 부담이고... 그런데....
p238
'세상은 완벽하지 않고, 누구도 완벽하지 않지만, 사람은 완벽해지려고 하고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지'
라고 너무 시크하고 비관적일 필요도 없지 않나 싶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없던 작은 텃밭 하나 가꾸는 것, 내 마당에 나무 한 그루 심고 돌보는 것, 나를 찾고 나서 아주 예쁘게 웃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고 작은 용기와 힘을 주는 것... 그렇게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해보면 될 것을... 너무 겁을 내고 불확실성을 근거로 이미 실패라고 단정 짓는 겁쟁이가 될 필요는 없겠구나. 싶다.
스무 살 조금 넘어 '나'를 찾아 무작정 용기를 낸 작가가 보낸 시간과 일련의 경험이...
훨씬 더 많이 살았으면서도 여태 겁을 내고 있는 내겐 그렇다. 이제라도... 아주 멋지게 웃을 수 있기를... 스스로 기대해 본다.
"내가 여기 있다고... 나 좀 알아달라고.." 아등바등 말고..
#그럼에도나는아주예쁘게웃었다 #봉현 #여행에세이 #에세이 #봉현작가 #책추천 #그림 #그림에세이 #일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