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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맡겨진 소녀
- 클레어 키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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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
- : 83,131
아름답다.
그 이상 어떤 말이 필요할까.
단어 하나, 문장 한 줄마다 꾹꾹 눌러쓴,
조용하지만 다정함으로 눈부신 여름.
(p.17) 이제 나는 평소의 나로 있을 수도 없고 또 다른 나로 변할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다.
앞부분은 읽는 내내 뭔가 모를 불안함이 느껴졌다.
다 읽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 불안함은 전이된 것이었다.
낯선 곳에 갔을 때의 불안함,
또 버려질지 모른다는 유기 불안,
버릴 거면 차라리 빨리 버려다오 하는 초조함.
나 또한 유기 불안이 오랜 시간 과제였기에
어떤 마음이었을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저 사랑받을 수 있다는 안정감은 하루아침에 얻어지지 않는다.
한 번도 손잡아 주지 않은 아빠.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맛.
손을 잡아주고 무릎에 앉히고 꼭 안아주는 다정함.
글 읽는 법을 알려주고, 달리기 기록을 재주고, 농담을 던지는 따스함.
애는 원래 오냐오냐하는 거라는 자상함.
무엇보다 정말 대단한 목청이라고, 폐가 너보다 튼튼한 애는 없을 거라고,
다리가 길어서 달리기를 잘할 거라며
아이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긍정한다.
<밝은 밤>의 새비 아즈 바이와
<빨간 머리 앤>의 매튜 아저씨 이후 최고의 아저씨…
이런 돌봄은 만나자마자 침을 묻혀 얼굴에 묻은 걸 닦아주고,
목욕시키며 손톱의 때도 벗겨주고,
백까지 세며 머리를 빗어주는 아주머니의 세심함에서도 볼 수 있다.
(p.82) 참 이상하다. 엄마 소의 우유를 짜서 내다 팔기 위해서 젖소에게서 송아지를 떼어내 우유 대신 다른 걸 먹인다니. 하지만 송아지는 만족스러워 보인다.
킨셀라 아주머니 댁에 가는 동안 아이가 상상한 첫 번째 이미지는 키 큰 여자가 나를 내려다보며 갓 짜서 아직 따뜻한 우유를 마시라고 하는 모습이었다.
집에 돌아갔을 때도 엄마는 갓 태어난 막내에게 모유를 먹인다.
아이는 이 부부의 집에서 이유식을 먹는 송아지가 된 기분이었을 테고, 이상한 일이지만 송아지마냥 만족스러웠던 게 아닐까.
작가가 단어 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다는 건
아저씨와 함께 읽은 책들에서도 볼 수 있다.
<하이디>도 친척 할아버지와 지냈고,
할아버지와 떨어졌을 때의 상실감과 향수병 때문에 시름시름 앓기도 한다.
<눈의 여왕>은 소녀의 진정한 사랑으로 얼음 저주가 녹아내리는 소년의 이야기이고,
<다음으로 케이티가 한 일은>은 케이티가 기숙학교에서 겪는 모험과 도전을 그린 작품이다.
(p.96) 심장이 가슴속이 아니라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것 같다. 나는 내 마음을 전하는 전령이 된 것처럼 그것을 들고 신속하게 달리고 있다. 여러 가지 일들이 마음속을 스친다. 벽지에 그려진 남자아이, 구스베리, 양동이가 나를 아래로 잡아당기던 그 순간, 길 잃은 어린 암소, 젖은 매트리스, 세 번째 빛. 나는 내 여름을, 지금을, 그리고 대체로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한다.
'내 여름', '내 집', '내 삶'..
뭐 하나 온전하게 가져본 적 없는 아이가 처음으로 가져본 것들.
부끄러움도, 비밀도 없는 '내 집'에서
처음으로 독차지해 본
그 사랑이 담긴 심장을 손에 쥐고 달린다.
아저씨에게, 아니 '아빠'에게....
(p.86) 하지만 양동이를 들어 올리려고 남은 한 손을 마저 뻗었을 때 내 손과 똑같은 손이 물에서 불쑥 나오는 듯하더니 나를 물속으로 끌어당긴다.
아이는 이 집에서 처음으로 죽음을 마주한다.
우물에서 다른 손이 잡아당긴다고 느낀 건 어쩌면,
죽은 아들이 받아야 할 사랑을
자기가 대신 받고 있다는 죄책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사랑이 좋으면서도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다가 죽음의 유혹을 받았고,
우물에 빠졌다가 나옴으로써 그 죄책감을 덜어냈는지도 모른다.
성장통, 상실에 대한 애도, 떠나기 싫은 본심.
그 모든 걸 감기로 앓아낸 건 아닐는지...
(p.75) "보렴, 저기 불빛이 두 개밖에 없었는데 이제 세 개가 됐구나."
... 바로 그때 아저씨가 두 팔로 나를 감싸더니 내가 아저씨 딸이라도 되는 것처럼 꼭 끌어안는다.
아주머니 댁에 있을 땐 내내 햇빛 찬란하다
이별의 순간에는 비가 온다.
하지만 세 번째 빛은
아이도, 아저씨도,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때문에 우는 것 같은 아주머니도,
이 아름다운 글을 읽은 나도
꾸준히 빛을 내며 비춰줄 것이다.
한 편의 아름다운 시와 같은 작품.
그녀의 다른 작품도 얼른 번역이 되어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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