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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진의 오후 3시

글·그림 김미진

 

‘내 가족이 나를 가장 모른다.’

 

요즘 들어 서윤은 그 생각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태일이 메가톤급 폭탄 몇 개를 터뜨리고 돌아간 뒤에도 집안 곳곳에는 다른 자잘한 불발탄들이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재앙의 씨앗처럼, 일상의 틈바구니 어딘가에 은밀히 잠복해 있었다.

 

당시 강남 모처에는 태일 집안이 비즈니스 차원에서 보유 중인 아파트가 여러 채 있었다. 태일은 명의 이전까지 해주겠다면서 그중 한 곳으로 서윤 가족이 이사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물론 어머니 때문이었다. 치매 증세가 날로 깊어지는 상황에서 익숙한 동네를 떠나는 일은 오히려 독이 될 터였다. 오랜 세월 정 붙이며 살아온 방화동 옥수탕 골목은 그 자체로 어머니를 지난날의 기억과 이어 주는 마지막 연결 고리였다. 그러나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아직 결혼식도 치르지 않은 마당에 사돈댁의 도움을 선뜻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버지로선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가 아무리 없이 살아도, 자존심까지 내던질 수는 없는 거다. 신랑 자리에 끌려다니기 시작하면 서윤이는 시집가서도 평생 기를 못 펴고 살아. 남의 걸 탐내다 보면, 그 화는 결국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법이지.

 

평생 교단에 몸담으며 박봉 생활을 묵묵히 견뎌온 아버지였다. 쌓아둔 것 하나 없는 민둥산 같은 삶이었지만, 체면과 자존심만큼은 한 치의 타협도 허락하지 않았다. 과년한 딸의 혼사가 오가는 지금도 사돈 집안의 덕을 입지 않겠노라, 오래전부터 스스로 다짐해 온 듯했다.

 

어머니의 치매 증상은 찔끔거리는 수돗물처럼, 조금 나아졌다가 다시 악화되기를 반복했다. 낙상 사고의 후유증이 육신뿐 아니라 뇌에도 영향을 미쳤던 걸까. 가족조차 인지하지 못할 만큼 어머니는 아주 조금씩, 한 눈금씩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정신과 육체가 함께 무너지면서, 고장 난 인형처럼 하루하루 무력해졌다.

 

덕분에 온종일 시어머니 곁을 떠날 수 없게 된 올케는 태일이 제안한 간병인이 하루빨리 와주기만을 학수고대했다. 두 집 살림을 오가며 병든 시어머니의 화장실 수발까지 들어야 하는 현실은 그야말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과중한 가사 노동에 지친 그녀는 날이 갈수록 피폐해졌고,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으며 말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끝내 태일이 보내준 간병인마저 받아들이지 않았다. 50대 후반의 여자 간병인이 몇 차례 문 앞까지 찾아왔지만, 문지방조차 넘어보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서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올케는 단단히 뿔이 나서 얼굴이 붉어졌다. ‘잘난 시누이 덕 좀 보자는데, 그게 뭐가 그리 잘못이냐’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번번이 시아버지가 내세우는 도덕적 상식이라는 고차원의 벽에 막혀 좌절하고 말았다.

 

그녀가 시아버지의 부당한 처사에 이를 갈면서도 여전히 시댁을 드나들며 가사를 돌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오로지 오빠 때문이었다. 태일이 알아봐 주겠다던 오빠의 취직자리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고, 회사 내부에 무슨 복잡한 일이 생겼다는 소식만 전한 채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로 시간을 끌고 있었다.

 

오빠는 요즘 들어 유난히 초조한 얼굴로 여동생의 눈치를 살폈다. 서윤이 태일과의 결혼을 망설이고 있다는 걸 직감한 듯했다. 태일이 자신의 취직 문제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혹시 그 때문이 아닐까 싶어 오빠는 점점 더 조바심을 냈다.

 

하루는 서윤이 2층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있을 때, 오빠가 쭈뼛거리며 따라 나왔다. 그녀는 축축한 옷 몇 가지를 빨랫줄에서 재빨리 걷어 바구니에 담았다. 아무리 피를 나눈 오누이라 해도, 오빠에게 속옷을 보이는 일은 여전히 껄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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