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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진의 오후 3시

글·그림 김미진


피노키오 전시관 안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몇몇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자, 수경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아이들이 많이 기다리는 것 같네요. 서윤 씨는 어서 가서 계속 진행해 주세요.


관장은 평소와 달리 존대어까지 쓰며 부드럽게 말했다.


-네. 그럼, 조금 있다가 뵙겠습니다.


서윤은 짧게 목례하고 서둘러 아이들 쪽으로 향했다. 장난치는 아이들을 일단 진정시킨 뒤, 고래 뱃속을 형상화한 설치물 앞으로 데려갔다. 바다에 빠진 피노키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을 때,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고래 뱃속에서 피노키오가 살 수 있나요?

-그럼요. 바닷물이 못 들어오게, 의자로 막아 둔 거예요. 여기서 잠도 자고, 책도 읽을 수 있어요.


아이들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윤의 해설은 동화 속 이야기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슬픔에 잠긴 피노키오와 파랑새가 한데 어우러진 상상의 모험이 아이들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때, 작은 키에 두꺼운 안경을 쓴 남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화장실… 저, 진짜 급해요.


그 한마디가 신호탄이라도 된 듯,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오고 몇몇 아이들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노키오 이야기를 더 이어갈 수 없을 만큼 상황이 어수선해졌다.


-좋아요. 잠깐 쉬었다 가죠. 얼른 다녀오세요.


서윤은 담담하면서도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들은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화장실이 있는 로비 쪽으로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노영미 연구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왔다. 바구니에는 청포도 사탕과 미술관 마크가 찍힌 종이 카드가 담겨 있었다. 그녀는 남아 있는 아이들에게 그것들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이건 ‘모험 카드’예요. 고래 뱃속에서 빠져나온 피노키오처럼, 어린이 여러분도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씩씩하게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뜻이에요. 알았죠?

-네!


아이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서윤은 문득, 벼랑 끝에서 아이들의 손을 붙잡은 채 버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멀리서 수경과 관장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쪽으로는 끝내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모험 카드는 나부터 한 장 필요한 게 아닐까?’


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마음을 다독였다. 아이들은 청포도 사탕을 입에 물고, 카드를 주고받으며 조잘조잘 웃음꽃을 피웠다. 서윤은 그 풍경 속에서 이 순간이 자신에게 얼마나 귀중한 위안인지 새삼 깨달았다.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하루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도 이런 평온이 뜻밖의 선물처럼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


아이들의 정제되지 않은 웃음과 반짝이는 눈빛이, 그 순간 무형의 언어가 되어 그녀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하지만 그런 따스한 온기는 바람결에 흩날리는 모래알처럼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아이들 뒤로 둘러선 관람객들 사이에서 문득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는 낯선 기운이 감돌았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기척이 알 수 없는 긴장을 불러왔다. 처음엔 그저 기분 탓이라 여겼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리는 순간, 피부 아래로 스며드는 시선 하나가 정확히 그녀의 몸을 스치는 듯했다. 보이지 않는 깃털처럼 은밀하고도 뜨거운 감각이었다.


서윤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온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관람객들 사이에 얼핏 떠오른 낯익은 얼굴. 횡계의 기억이 소용돌이치듯 밀려왔다. 이런 곳에서 마주칠 줄 예상치도 못했던 단 한 사람.


도준.


심장은 순식간에 리듬을 잃고 요동쳤다. 주변 소음은 먼 바람 속으로 흩날리듯 사라지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뜻밖에도 얼굴이 달아오르고, 두 손끝이 떨렸다.


‘그럴 리 없어. 이건 꿈이야.’


두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는 그 자리, 그 눈빛으로 그녀의 모든 것을 꿰뚫듯 바라보고 있었다. 소리도, 움직임도 사라진 듯했다. 남은 것은 오직 그와 자신, 그리고 정지된 세계 속에 남은 숨결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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