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김미진의 오후 3시

글·그림 김미진


오후 두 시경, 오늘 방문이 예정된 초등학생들이 갤러리 앞에 도착했다. ‘아현초등학교’라는 표지도 선명한 노란색 스쿨버스가 멈추자, 햇살처럼 반짝이는 아이들이 하나둘 버스 계단을 뛰어내렸다. 그들은 앞다투어 재잘거리며 갤러리 앞마당에 초등학교 운동장 같은 활기를 더했다.


버스에서 먼저 내린 선생님 두 명이 아이들의 하차를 돕고 있었다. 단정한 단발머리의 여선생은 한 명씩 손을 잡아주며 따뜻하게 맞이했고, 깔끔한 셔츠에 넥타이를 맨 남선생은 버스 앞에서 차분하게 질서를 잡았다. 1학년과 2학년으로 구성된 아이들이 갤러리를 향해 흘러가듯 움직이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얘들아, 자자! 다들 선생님 보세요!


여선생이 손뼉을 가볍게 치며 아이들의 시선을 한데 모았다. 남선생은 출석부를 펴 들고 한 명씩 이름을 불렀다. 아이들은 자기 차례가 올 때마다 손을 번쩍 들고 힘차게 ‘네!’ 하고 대답했다. 서윤은 한 발짝 뒤로 비켜서서 웃음꽃처럼 환한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출석 확인이 끝난 후, 아이들은 갤러리 직원들의 안내를 따라 4층 전시관으로 향했다. 일부는 두 대의 엘리베이터에 나눠 탄 뒤 먼저 올라갔고, 나머지는 어미 오리를 졸졸 따르는 작은 오리 떼처럼 줄을 지어 천천히 이동했다.


피노키오 전시관 앞에 이르자 환상적인 동화 세계가 한눈에 펼쳐졌다.


-와아!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각국에서 모인 인형과 삽화, 입체 형상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엄지손가락만 한 소형 인형부터 키가 4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나무 조각상까지, 크기와 재질은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공통된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바로 길쭉한 코를 가진 피노키오라는 점이었다. 제페토 할아버지와 푸른 요정, 귀뚜라미도 군데군데 배치되어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상상력을 한층 풍요롭게 자극했다.


피노키오 왕국은 어느새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삼삼오오 어울려 전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아이들은 진열된 작품들 사이를 탐색하거나 장난스럽게 소곤거리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한동안 자유 시간을 보낸 뒤 선생님들의 지시에 따라 하나둘 자리에 앉았다. 이제 서윤이 나설 차례였다. 그녀는 휴대용 마이크의 스위치를 켠 뒤, 전시관을 간략히 소개한 다음 피노키오와 전시물 사이에 얽힌 이야기들을 실타래처럼 하나씩 풀어가기 시작했다.


-옛날 옛적에, 말을 하는 신기한 나무토막이 있었어요. 목수인 제페토 할아버지가 그 나무로 피노키오라는 인형을 만들었지요. 그런데 인형이 갑자기 말을 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어요. 제페토 할아버지는 깜짝 놀랐답니다. 믿기 힘든 순간이었죠. 피노키오는 호기심 많은 장난꾸러기였는데, 거짓말을 하면 금세 들통이 났어요. 왜였을까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점점 길어졌기 때문이에요. 여러분도 혹시 거짓말을 할 때 가슴이 콩닥콩닥 뛰거나 얼굴이 화끈거린 적 있나요?

-네!

-그렇죠!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할 때 코가 길어졌지만, 여러분의 코는 그대로예요. 대신 심장은 쿵쿵 뛰고, 두 볼은 화끈거리죠. '지금 거짓말하고 있습니다!'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는 거예요.


그녀는 시기와 지역에 따라 저마다 다른 모습과 색채를 지닌 각국의 피노키오 앞에서 설명을 이어가며 한동안 아이들과 함께 동화 속 세계에 푹 잠겨 있었다. 그러다 아이들을 이끌고 다음 칸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갑자기 경숙 씨가 다가와 조심스레 속삭였다.


-강수경 씨가 조금 전에 오셨어요. 지금 관장실에 계세요.


서윤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왜 하필 지금, 왜 이 시점에 나타난 걸까. 어젯밤 다래원 앞 골목에서의 장면이 불현듯 떠올랐다. 혹시 태일이 일부러 누이를 이곳에 보낸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바로 그때, 전시관 입구에서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관장과 수경이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멀리서 손을 흔드는 수경을 보자, 서윤은 잠시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