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그림 김미진
타멜 거리. 도준은 낯선 이방인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스쳐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다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토바이 경적과 관광객들의 소란스러운 행렬, 향신료 냄새가 뒤엉킨 복잡한 골목 한복판에서 누군가 불현듯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외쳤다.
-와, 이게 누구신가?
도준이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이 환한 미소를 건네왔다. 훤칠한 키에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체격, 웃을 때마다 양쪽 뺨에 깊이 파인 볼우물이 인상적인 노르부였다.
-마이 프렌드, 바이!
네팔어로 ‘바이’. 형제를 뜻하는 친근한 호칭이었다. 노르부가 도준을 그렇게 부를 때는 조금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는 티베트계 셰르파족으로 네팔에서 나고 자란 서른여섯 살의 남자였다. ‘히말라야 트레킹’이라는 여행사를 직접 운영했는데,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오랜 경력의 고소등반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둘은 과거 에베레스트 북서쪽 초오유를 함께 오르며 굳건한 신뢰와 깊은 우정을 쌓았다. 당시 노르부는 아홉 명의 셰르파를 이끄는 대장이었고, 등반 루트 결정부터 고정 로프 설치, 피톤 작업까지 진두지휘했다. 정상까지는 무사히 올랐지만, 하산 도중 뜻밖의 눈사태에 휘말렸다. 그때 크게 부상을 입고 쓰러진 노르부를 끝까지 업고 내려온 이가 바로 도준이었다.
그날 이후 두 사람 사이에는 목숨의 무게를 함께 짊어진 자들만이 나눌 수 있는, 말로 다할 수 없는 끈끈한 유대가 자리 잡았다.
-내 생명의 은인! 연락도 없이 카트만두엔 언제 온 거야?
-오늘 도착했지. 그동안 잘 지냈어?
도준이 현지어로 짧게 인사를 건네자, 노르부는 활짝 웃으며 그의 어깨를 힘껏 끌어안았다.
-나야 잘 지냈지. 도준, 정말 반갑다.
-나도 마찬가지야. 지금 어디 가는 길이야?
-스와니가 호텔에 잠깐 다녀오는 길이야. 클라이언트 몇 명이 거기 묵고 있거든. 내일 아침 일찍 포카라행 버스를 타야 해서 전달할 게 좀 있었어.
-나는 사흘쯤 파노라마 포인트에 머물다가 루크라로 갈 생각이야. 그런데 저녁은 먹었어?
-마침 나도 출출하던 참이야.
-그럼 맥주 한잔하면서 같이 먹자. 모처럼 이 동네 로컬 푸드가 당기네.
-좋아! 잘됐다.
좁고 어두운 골목길을 한참 따라 걷다가 왼편으로 꺾어 들자 허름한 식당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천막 아래 듬성듬성 놓인 테이블 위로 낮게 매달린 알전구가 바람에 흔들리며, 낡았지만 묘하게 따스한 정취를 풍겼다. 쌀밥에 렌틸콩 수프와 야채 커리를 곁들인 달밧(Dal Bhat), 그리고 버팔로 고기와 야채가 들어간 모모(Momo)가 이 집의 대표 메뉴였다.
삐걱거리는 의자에 앉자마자 주인 여자가 마른행주로 테이블을 재빨리 훑듯 닦아주었다. 그들은 네팔 맥주 ‘뚜벅’ 세 병과 달밧 두 개를 주문했다. 주인 여자가 맥주를 먼저 가져다 놓고는 커다란 호박처럼 생긴 오이를 도톰하게 썰어 바구니에 담아 내왔다.
노르부는 맥주잔을 가득 채우며 존중과 환대의 뜻을 드러냈다. 그 단순한 손놀림에서 도준은 오래전 눈보라 속에서 맺은 인연을 떠올렸다.
-요즘 비즈니스는 어때?
-정신없어. 가이드만 여든 명, 포터가 백쉰 명이야.
-그 정도면 돈 좀 벌었겠는데?
-젠장, 네팔에 돈 쓰러 오는 사람 봤냐? 다들 다른 나라에선 펑펑 쓰고, 여긴 마지막 코스로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와선 싸구려만 찾아다닌다니까. 얼마 전엔 일본 애들이 이십 년도 더 된 여행 책자 들고 와서, 왜 이렇게 비싸졌냐고 따지더라. 질렸지, 완전히. 두 손, 팔다리 다 들었어.
-힘들겠네. 그래도 얼굴은 훤해 보이는데.
도준이 오이를 우걱우걱 씹으며 말했다. 노르부는 픽 웃으며 맥주잔을 다시 채웠다.
-루크라는 왜 가는 거야? 이번엔 또 어디로 올라갈 생각이지?
-올해는 시등만 할 거야. 추쿵 쪽으로 빠져 로체샬 중턱쯤까지. 그때 컨디션 봐서 임자체도 다녀올지 몰라. 혼자라서 편해. 마음 내키는 대로 움직일 수 있으니까.
-혼자 정찰 등반을 왔다, 그런 말인가? 진짜 노리는 봉우리는 어디지?
-로체 남벽.
-뭐라고?
노르부는 웃음기가 싹 가신 얼굴로 도준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