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김미진의 오후 3시

글·그림 김미진


다음 날 점심 무렵, 서윤은 자전거를 타고 횡계 읍내로 나가, 별장 지붕 공사를 맡았던 설비 가게 주인을 만났다. 오십 중반쯤 되어 보이는 그는 허리에 넓은 압박 밴드를 두르고 있었다. 엊그제 작업을 나갔다가 허리디스크가 악화되어, 어제는 강릉 큰 병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물리치료도 받았다는데, 아직은 몸을 제대로 가누기조차 힘들어 보였다.

 

-마무리까지 꼼꼼하게 했으니, 당분간 지붕에서 비가 샐 일은 없을 겁니다.


그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공사 장비와 건축 자재가 무질서하게 쌓인 가게 안은 오래된 고물 창고를 연상시켰다. 가장 안쪽, 전기난로 곁에 앉아 장부를 뒤적이던 나이 든 여자가 자꾸 이쪽을 흘끗거렸다. 눈매에는 어딘가 날 선 기운이 배어 있었고, 그 시선이 스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괜히 감시당하고 있는 것만 같아,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지붕에서 다시 물이 새면, 하자 보수는 해주시는 거죠?

-그럼요. 하지만 제가 공사한 자리가 아닌 곳에서 샌다면, 다시 손을 봐야 할 겁니다.

-또 누수 공사를 해야 한다는 말씀이세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그녀가 되물었다.


-지붕이 오래돼서 그럴 수도 있다는 겁니다. 전체적으로 점검을 해보는 게 어떨지 아버님과 상의해 보세요.


전체 지붕 공사라니. 서윤은 얕은 한숨을 삼켰다. 가게 주인이 내민 견적서에는, 이번에 시공한 부분 공사비보다 0이 하나 더 붙어 있었다.


-네, 잘 알겠습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그녀는 공사 내역과 부가세가 포함된 영수증을 건네받고 가게 문을 나섰다. 중앙로에는 흙먼지와 기계음이 뒤엉켜, 도로 전체가 거대한 공사판처럼 들끓고 있었다. 자전거 바퀴가 지나갈 때마다 먼지가 풀풀 일었고, 아득하게 펼쳐진 소도시 풍경이 눈앞에서 뿌옇게 흐려졌다. 잠시 근처 슈퍼에 들러 몇 가지 필요한 것들을 챙긴 뒤, 그녀는 다시 자전거에 올라 별장으로 향했다.

 

횡계에 온 지도 어느새 사흘째였다. 목요일 오후, 이제 읍내에서 볼 일은 더 이상 없었다. 휴가를 즐기는 셈치고, 오늘은 별장에서 하루 더 느긋하게 쉬다가 내일쯤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다. 어쩌면 집에 가는 길에 평창동 명명희 선생 작업실을 먼저 찾아, 양녀 김순자 씨와 전시 계획을 미리 상의하며 조금 더 친분을 다지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아주 잠깐, 김 씨 할아버지의 조카라는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름조차 모르는 이에게 잠시 흔들렸던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어제 커피 한 잔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한 일이 괜히 마음에 걸렸다. 그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질까 봐, 오히려 자신이 더 두려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다 지난 일이다. 이제 끝난 거야. 


그녀는 그렇게 단정 지으며, 머릿속을 떠도는 불길한 망상들을 하나씩 밀어냈다. 그 남자 역시, 어쩌다 스친 생의 편린에 불과하다고, 가슴 깊이 새기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얼마 후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별장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앞마당에 멈춰 서 있는 랜드로버가 멀리서부터 시선을 붙잡았다. 김 씨 할아버지의 조카가 다시 찾아왔다는 생각이 스치자,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가볍게 두근거렸다. 서윤이 탄 자전거를 발견한 도준은 차에서 내려, 그녀가 다가오기를 묵묵히 기다렸다. 저물어 가는 석양을 등지고 선 그의 모습은 오래된 조각상처럼 고요하면서도 단단해 보였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