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김미진의 오후 3시

글·그림 김미진


서윤은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지붕 공사를 맡긴 설비 가게 주인을 만나지 못한 상태였다. 어제는 다른 현장 공사로 자리에 없었고, 오늘은 갑작스레 몸이 아파 병원에 갔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다.


아버지는 공사비를 건네기 전에 반드시 가게 주인을 만나, 하자 보수에 관한 설명과 다른 유의 사항들을 꼼꼼히 챙기라고 누누이 당부하였다. 결국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려면 이곳에서 하루를 더 머물러야 했고, 설비 가게를 다시 찾아가려면 아무래도 자전거가 필요할 것 같았다.


‘큰할머니의 친한 이웃이었다잖아.’


연두색 털모자와 연두색 망토가 그 말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큰할머니의 뜨개질 바구니에 수북하게 담겨 있던 털실과 뜨개바늘이 그녀의 마음을 잠시 느슨하게 만들었다.


-그럼… 누추하지만, 잠깐 들어오세요.


그녀는 열쇠로 문을 열고 그를 돌아보았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자전거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실내 공간은 그 안에 누가 들어서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마련이다. 남자의 큰 키와 넓은 어깨 탓에, 집안은 갑자기 전보다 좁아 보였고 천장도 한결 낮아진 듯 느껴졌다.


그녀는 출입문 근처 거울 앞에 서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입술과 턱 주변에 붉게 벗겨진 자국이 남아 있었다. 크지 않은 상처였지만, 그 흔적은 마음 어딘가에 생긴 작은 균열처럼 위태롭게 보였다. 자전거에서 떨어지며 쓸린 살갗은 불에 덴 듯 쓰라렸고, 턱 아래의 욱신거림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다행히 입안에는 별다른 상처가 없었다.


-좀 어때요? 병원에 가야 할까요?


그가 불쑥 거울 속으로 얼굴을 디밀었다. 하나의 거울 안에서 두 개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 순간, 그녀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엇갈리듯 급히 한발 옆으로 비켜섰다.


-이제 괜찮아요. 흉이 질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그녀는 무심한 듯 낮게 깔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부엌 수납장에서 구급함을 꺼내 후시딘 연고를 찾아 들었다. 손을 수돗물에 씻은 다음 면봉에 연고를 묻혀 부어오른 턱에 조심스레 펴 발랐다. 따갑고 쓰라린 느낌이 조금 누그러졌지만, 피부 속 깊이 남은 뻐근한 통증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크게 다친 것도 아닌데… 이 정도면 괜찮은 거잖아.’


그녀는 스스로를 다독이듯 속으로 짧게 중얼거렸다. 그 사이 도준은 아무 말 없이 한 걸음 물러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얼른 집 뒤쪽 창고로 가서 타이어 펌프와 펑크 수리 키트를 들고 돌아왔다. 길쭉한 상자 안에는 여러 종류의 패치 키트가 들어 있었다.


-이거면 될까요?

-네. 충분합니다.


그의 커다란 손바닥 안에서 MTB 자전거는 작고 가벼운 장난감처럼 보였다. 자전거포 주인 못지않은 노련한 솜씨로, 두 개의 레버를 다루며 타이어를 벗기고 납작해진 튜브를 꺼냈다. 바람을 불어 넣은 튜브를 귀에 가까이 가져다 댄 그는, 숨소리를 죽인 채 공기가 새는 소리를 들었다.


-아하, 여기네요. 바로 이 구멍이에요. 보이죠?

-어디요?

 

그녀는 무릎을 굽혀 그의 손끝을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 익숙한 비누 향과 은은한 남자의 체취가 코끝을 스쳤다. 가슴이 불현듯 요동쳤다. 그녀는 얼른 몸을 일으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제 본드를 바르고 조금 기다려야 해요.

-네?

-본드가 꾸덕꾸덕해져야 서로 잘 붙어요.

 

도준은 사포로 튜브 표면을 부드럽게 문질러 정리한 뒤, 키트에서 적당한 크기의 패치를 골라냈다. 길고 두툼한 손가락으로 접착제를 능숙하게 펴 바르는 그의 동작은 빠르고도 정확했다. 그 익숙한 손놀림을 바라보는 동안, 서윤은 자신이 어느새 낯선 리듬 속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숨을 고르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머리로는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몸은 아직 그 판단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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