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그림 김미진
월요일 오후, 인사동의 리온 갤러리는 전시회 준비로 분주했다. 이번 전시는 ‘한국의 툴루즈 로트렉’이라 불리던 손문기 화백의 회고전으로, 오프닝 행사는 이틀 뒤인 수요일 정오에 열릴 예정이었다. 내일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휴관일이라서 오늘 안으로 모든 준비를 마쳐야 했다.
-부딪치지 않게 조심해.
-네, 걱정하지 마세요.
서윤은 새로 들어온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커다란 캔버스를 옮기고 있었다. 나무 액자까지 씌워진 100호짜리 그림은 두 사람이 간신히 들 수 있을 만큼 묵직했다. 다른 방해물들을 피해 가며, 두 사람은 그림 표면이 가능한 한 흔들리지 않게 조심스레 이동했다. 그때 최승주 실장이 2층 사무실로 올라가려다 그녀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나 선생. 전시 화보와 도록은 어떻게 된 거야?
-수요일 아침에 인쇄소에서 직접 가져오기로 했어요.
-초대장 발송은?
-지난주에 모두 완벽하게 처리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중에 이걸 다 끝낼 수 있겠어?
그가 짜증 섞인 표정으로 전시실을 둘러보며 던진 말이었다. 아직 설치를 마치지 못한 작품들이 벽을 따라 여럿 남아 있었다.
-거의 다 됐어요. 이제 작품에 레이블만 붙이면 됩니다.
서윤이 미소를 지으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나 선생, 분류 번호, 사이즈, 사용된 재료, 하나하나 꼼꼼히 잘 점검해. 저번처럼 뒤섞이는 일 없도록 조심하고. 다들 아셨죠?
최 실장의 목소리가 한 톤 높아지자, 함께 일하던 직원들이 불편한 기색으로 서로 눈치를 주고받았다. 그는 관장 최희숙의 남동생이자, 갤러리 운영 전반에 막강한 권한을 쥔 인물이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공기가 싸늘해지며 사람들의 마음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긴장과 불안이 번져갔다. 리온 갤러리에 5년 넘게 몸담아온 서윤조차도 최 실장 앞에서는 업무에 필요한 말 외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이곳에서 오래 일한다는 건, 능력보다도 침묵과 인내를 먼저 배웠다는 뜻이었다.
서윤은 리온 갤러리의 큐레이터였다. 전시 기획과 작가 섭외, 작품 리스트 정리, 도록 제작과 홍보 등 갤러리 실무의 중심을 맡고 있었다. 그녀는 늘 생각했다. 전시란 곧 균형의 예술이라고. 주제의 통일성과 시선의 흐름, 여백의 배치와 조명 각도 하나하나가 철저한 계산 아래에서야 비로소 조화를 이룬다고 믿었다. 그 조율은 캔버스 너머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동료들 사이의 공기, 말의 온도, 침묵의 간격까지. 서윤은 전시를 준비하는 공간 전체를 ‘하나의 작품’처럼 가다듬고자 했다.
최 실장이 자리를 뜨자, 전시실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다들 조금만 더 힘내요. 오늘 오버타임을 해도, 내일은 푹 쉴 수 있잖아요.
서윤이 ‘내일’이라는 단어에 살짝 방점을 찍으며 부드러운 표정으로 직원들을 둘러보았다.
-내일? 아, 내일!
직원 하나가 긴 숨을 내쉬며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 다시 힘 좀 써봐요.
서윤의 말에 알바생이 다시 캔버스를 번쩍 들었다. 그 바람에 액자가 휠 듯 출렁이며 캔버스 표면이 크게 흔들렸다.
-아아, 맙소사! 작품은 아기 다루듯 천천히.
-아, 죄송합니다.
알바생이 얼굴을 붉히며 난감해했다.
이 전시는 서윤에게도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녀는 손문기 화백에게서 직접 그림 지도를 받으며 미술의 기초를 다졌다. 방화동 공항시장 근처에 있던 손 화실은 스승의 거처이자 작업실이었고, 입시생과 취미생이 함께 모여 그림을 익히던 공간이기도 했다. 드나드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그곳에는 늘 가족 같은 친밀감이 흘렀다.
선생은 늘 제자들에게 따뜻하고 자상했다. 작고 구부정한 몸이었지만, 그 안에서는 묵직한 에너지가 배어 나왔다. 깊고 맑은 눈매와 걸걸한 숨소리, 말투와 웃음, 드로잉 도구를 다루던 손끝의 습관과 팔레트 위에 물감을 짜던 손놀림까지, 모든 것이 아직도 기억 속에 또렷했다. 선생은 가끔 화실 식구들과 야외 스케치를 다녀오곤 했다. 김포의 한 시골 마을에서 함께 그림을 그리고, 가져간 재료로 소박한 한 끼를 나누던 날들. 그가 남긴 그림일기와 예술과 삶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 그 모든 것이 겹겹이 쌓여,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는 서윤을 만들어주었다.
리온 갤러리는 인사동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와 역사를 자랑하는 화랑이었다. 이곳에서의 전시는 곧 한국 미술계 한가운데에 작가의 이름을 새기는 일이기도 했다. 손 화백의 존재감은 이제 분명한 보폭으로 한국 화단의 중심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머지않아 미술 교과서에서 그의 이름을 마주하게 될지도 몰랐다. 이미 세상을 떠난 스승의 회고전을 직접 준비하고 있는 지금, 서윤에게 이번 전시는 끝까지 책임지고 감당해야 할 하나의 과제이자 의무였다.
-그렇지, 그렇지. 조금만 더 왼쪽으로…
-넵!
알바생의 이마에는 땀이 번들거렸다. 점심 이후 그는 거의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불평 한마디 없이 일하고 있는 그를 보며, 서윤은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옮기고 있는 작품은 손 화백의 1980년대 대표작, ‘공작 도시’ 연작 중 하나였다. 마티에르의 질감을 밀도 높게 쌓아 올린 회색 화면 속엔, 무너진 철근과 도시 구조물이 서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채 뒤엉켜 있었다.
서울을 배경으로 한 도시 풍경화에는 거대한 기계 도시의 혼란과 욕망이 거칠고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하철 2호선 공사로 뒤엉켰던 도심, 해머 드릴의 쇳소리. 데모 진압대가 쏜 최루탄 가스와 시위대의 함성,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자동차들, 무질서하게 파편화된 거리의 모습. 그 속에 잠복한 디스토피아적 환영과 자본주의의 그늘을 손 화백은 누구보다 일찍, 누구보다 날카롭게 포착해 냈다.
스승이 세상을 떠난 뒤로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서윤은 여전히 회색 지대의 어딘가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선생의 그림 앞에서, 그 시대를 통과해 온 자신의 그림자가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되살아나는 듯했다. 알바생과 ‘공작 도시’를 들고 중앙 갤러리 입구로 향하던 그때, 사다리가 비틀거리며 한쪽으로 쏠리는 모습이 서윤의 시야에 들어왔다.
-앗, 조심해!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다리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조명을 조정하던 남자 직원은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다리가 쓰러지면서 이동 중이던 '공작 도시'를 그대로 덮칠 기세였다.
그 순간, 알바생이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등으로 사다리를 밀쳐내며, 한쪽 팔로는 그림을 감쌌다. 간발의 차로 더 큰 충격을 막을 수 있었던 건, 그가 발등으로 그림 아래를 받쳐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