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그림 김미진
작년 4월, K2 등정을 마치고 스카르두와 이슬라마바드를 거쳐 카트만두로 돌아온 도준은 곧장 네팔 관광청으로 향했다. 로체 남벽 등반 허가증을 신청하기 위해서였다. 그곳, 친구 민혁이 목숨을 잃었던 바로 그곳. 가혹하면서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남벽. 다시 그 벽에 도전장을 내민다는 것은 더 이상 한때의 목표가 아니라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K2에서도 그는 최소한의 장비만 지닌 채 알파인 스타일로 단독 등반을 감행했다. 극한의 환경 속에서 홀로 서는 것, 혹독한 고독과 마주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가 꿈꾸던 등반의 방식이었다. 그 길은 민혁과 함께 시작한 길이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둘은 알파인 스타일로 로체봉을 오르겠다는 꿈을 나누어 왔었다. 그러나 이제 민혁은 없다. 그저 그의 흔적이 남아 눈 덮인 산맥 어딘가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을 뿐이다.
-민혁아. 이제 내가, 우리의 꿈을 이어갈 거야.
해발 8천 미터가 넘는 고지까지 산소마스크도 없이 홀로 버티겠다는 결심이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이번 도전은 더 이상 그저 한 번의 등반이 아니었다. 친구의 영혼을 기리기 위한 도전이기도 했다.
혼자서 로체 남벽을 오른다는 것은 사실상 죽음을 불러오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6400미터 지점, 클라이머에게 최악의 난관으로 여겨지는 그곳. 가파른 설빙이 널브러져 있어 안전하게 비박할 곳조차 찾기 어려웠고, 자일에 몸을 의지한 채 절벽에 매달려,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극한 상황 속에서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야 할지도 모른다. 조금만 방심해도 돌풍에 휘말리거나, 확보 지점이 무너지며 깊은 크레바스로 추락할 수 있었다.
-크레바스의 끝은 지구 반대편까지 뚫려 있다고 하더라.
언젠가 민혁이 농담처럼 남긴 말이 떠올랐다. 도준은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왜 또다시 고독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가. 무엇을 위한 증명인가. 나만의 고집일까, 아니면 치기 어린 아집일까. 아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것은 단 하나. 인간의 한계를 넘어보고 싶은 열망뿐이다. 그것만이 유일한 답이었다.
매킨리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온 한 선배가 무심한 듯 충고했다.
-앞으로 길어야 몇 년이나 더 현역으로 뛰겠냐. 체력에도 한계가 있어. 산에서 죽을 생각 아니면, 이제 슬슬 먹고살 궁리 좀 해야지.
도준은 그 조언을 묵묵히 들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 다짐뿐이었다. 신은 인간의 한계를 정하지 않았다. 한계란 결국 인간 스스로가 그어놓은 선일 뿐이다. 그는 나이 들어감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세월과 함께 조금씩 닳아가는 것이 나이 아닌가.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싶은 욕심도 없었다. 무덤에 비석 하나 세우고 이름을 새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는 그런 부질없는 명예와 이기심에 더는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생의 종착역에서, 남이 정해준 꿈을 좇는 삶은 끝내고 싶었다. 그는 이제 자신의 꿈을 향해 걸었다. 도준이라는 이름은 국내에서 제법 알려진 등산가였지만, 삶의 본질은 세상에 속하지 않는 방랑자에 가까웠다. 1987년, 독일의 한 회사에서 제작한 특수 차량으로 3년에 걸쳐 세계를 일주했다. 적도에서 극지까지, 산간 오지마을에서 대도시까지 정해진 경로 없이 여행하며, 배터리 성능을 실험하면서 다양한 사진을 찍고 그 모든 과정을 기록했다.
그 여정의 기록들은 한 시사 잡지에 연재되었고, 한동안 내셔널 지오그래픽 한국판에도 실렸다. 그렇게 떠도는 동안 그는 깨달았다. 너무 멀리, 너무 길게 내다볼 필요는 없다는 것을. 멀리서 보면 아무리 시력이 좋아도 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한 걸음씩 내디딜 때, 비로소 원하는 곳에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그렇게 바람처럼 떠돌며 어느새 서른다섯이 되었다. 여전히 주변에서 관심을 보이는 여성들이 드물지 않았다. 강인하고 야성적인 외모와, 어딘가 여성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우울하면서도 지적인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풍겨 나오는 매력 같았다. 방탕한 생활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가끔 마음에 맞는 여성과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와도 오래 만나지는 못했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자신이 추구하는 삶에 균열이 생길 것 같은 불안감과, 책임을 질 수 없는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서른한 살 때, 그는 결혼을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상대는 조용하고 성실한 초등학교 교사였다. 한동안 깊은 관계를 나누며 서로에 대한 정을 쌓았지만, 결국 결혼은 취소되었다. 험한 산을 오른다는 것은 불가피한 죽음과 마주하는 일이고, 언제 그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는 사실을, 그 무게를 그녀에게까지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도 그 마음을 이해했고 두 사람은 담담히, 그러나 아쉬운 마음을 안고 헤어졌다.
산은 그의 삶을 어느 정도 제약했지만, 동시에 기대 이상의 것을 안겨주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이미 알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일본 북알프스를 처음 올랐을 때부터 산은 그의 또 다른 인생이 되었다.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산을 오르는 것은 남들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도, 기록을 세우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산을 내려서며 다시 오를 결심을 하는 것은 숨 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삶처럼, 오르내림의 반복 그 자체가 그의 존재였다. 더 큰 의미나 목적은 필요하지 않았다.
살아오는 동안 늘 옳은 선택만 한 것은 아니지만, 돌아보아도 크게 후회되는 일은 없었다. 몇 년 전, 에베레스트를 함께 오른 오스트리아 출신 등산가는 이렇게 말했다.
-일주일 내내 일하며 일정한 수입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일이, 산에서 영웅적인 일을 수행하는 것보다 더 큰 극기와 용기를 요구하지요.
어쩌면 그 말은 자기 변명일지 모른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 자체가 인내와 극기, 그리고 용기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위도나 고도와 무관하다. 높은 산에서든 지표면에서든 본질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도준에게 회색빛 일상은 고통이었다. 생계를 위해 현실과 타협하는 것은 본성에 맞지 않았다. 차라리 고독 속에서 공포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했다. 그렇다. 도준은 고독과 친숙한 인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