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김미진의 오후 3시

글. 그림 김미진

 

까마귀 한 마리가 멀리서 울었다. 리듬감 있게 내딛는 발소리가 산길 위로 퍼졌다. 발목을 감싼 얇은 덧신이 낙엽을 헤치며 바스락거렸고, 뿌옇게 흩어지는 입김은 햇살 속으로 번지듯 사라졌다. 산속 깊은 계곡은 숨을 죽인 채 잠잠했다. 그 고요의 한가운데, 한 남자의 심장 박동이 울려 퍼졌다.


쿵- 쿵-


봄기운이 천천히 산등성을 타고 오르던 그날 오후, 도준은 오대산 능선을 따라 묵묵히 달리고 있었다.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게 얼굴을 스쳤지만, 강인하게 다져진 그의 몸에서는 더운 김이 피어올랐다. 꽤 오랜 시간, 그는 같은 호흡으로 보폭을 이어갔다. 두 발이 일정하게 땅을 내딛는 순간마다 머릿속이 맑아지며 온갖 잡념이 사라졌다.


이런 의식의 공백은 그에게 익숙했다. 오직 달리는 일에만 몰두한 채, 세상의 시름에서 풀려난 무중력의 고요를 사랑했다. 등산로 끝자락을 지나자, 가파른 암벽길이 길게 펼쳐졌다. 울퉁불퉁한 화강암 절벽 앞에서도, 그의 몸짓엔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급경사의 바위들이 불규칙하게 솟아 있었지만, 익숙한 동작으로 거침없이 뛰어넘었다. 오대산의 거친 산길을 매일 달리며 체력을 단련해 온 그에게, 이 험준한 경사로조차 철저히 계산된 훈련 과정의 일부였다.


검은 바탕에 푸른 띠가 들어간 등산복, 얇은 폴리에스터 장갑, 길게 묶은 꽁지머리. 20킬로그램짜리 배낭에, 발목엔 모래주머니까지 찬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경사를 타고 올랐다. 두 발은 땅을 박차고, 호흡과 시선, 균형 감각이 정교하게 맞물렸다. 움직임은 빠르되 한 치의 무리도 없었다. 그는 야생의 본능과 생존의 가쁜 숨을 내쉬며, 자연의 심연 속을 달리는 한 줄기 맥박 같았다.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이 등줄기를 스쳤다. 그것은 그의 몸을 식히는 동시에, 주변의 공기 흐름에 몸을 맡기게 했다. 도준은 고개를 숙여 시선을 바닥으로 향한 채, 발걸음과 호흡만을 따라갔다. 나무와 돌, 떨어진 잎 하나까지도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감각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때로 그는 스스로를 시험하듯, 한층 더 가파른 바위를 올랐다. 손끝과 발끝에 집중을 모으고, 중력을 거슬러 몸을 밀어 올리는 순간마다 심장이 요동쳤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시선과 속삭임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과 산, 그리고 한 줄기 길뿐이었다.


계곡 사이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면서, 그가 달리는 길 위에 어둑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마치 그가 남긴 발자국처럼 땅에 새겨졌다가 곧 사라졌다. 도준의 내면에도 비슷한 밀도의 그늘이 깊이 자리 잡았다. 지난 기억과 앞으로 맞이할 고통, 그리고 끝내 닿을 수밖에 없는 고요한 결말까지.


그는 속으로 단 한 가지를 되뇌었다. 


‘달려라. 멈추지 마라.’ 


모든 판단과 감정이 그의 몸을 지배했지만, 달리는 행위 자체가 삶과 죽음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다. 자연의 리듬 속에서 느낀 온도와 바람, 땅의 질감은 그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증거였다. 


도준의 발걸음은 계속 이어졌다. 암벽과 계곡, 바람과 햇살, 그리고 심장 박동과 호흡이 하나로 맞물리며, 한 인간이 자연과 마주한 순간의 총체적 경험으로 이어졌다. 그 순간, 그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오대산은 그의 몸과 함께 숨 쉬고 있었고, 도준 자신도 그 흐름 속에서 삶의 맥박을 단단히 새기고 있었다.


해발 8,511미터.


로체.


피의 계곡처럼 벌어진 기억 너머에, 깎아지를 듯한 쿠로와르가 문득 머릿속을 스쳤다. 지난 100년간의 히말라야 등반사에서 가장 치열한 난코스로 여겨지는 로체 남벽을 완등한 이는 아직 없다. 오직 슬로베니아 출신의 저명한 산악인, 토모 체센만이 1990년 봄, 무산소 단독으로 초등정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4월 22일 오후 5시에 출발해, 25일 오전 7시에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고 알려졌다. 단 62시간 만에 등정을 마쳤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이 놀라운 발표는 곧 거센 의혹과 관심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처음 그는 등반 중 촬영한 사진이 없다고 밝혔으나, 이후 프랑스 등산 전문지에 제출한 사진들로 다시 논란이 일었다.


그 자료들이 사실은 다른 등반가가 촬영한 것임이 밝혀지면서, 그의 이름은 신화의 정상에서 허위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경외의 정점에 서 있던 그는 한순간, 조롱과 의심의 표적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그가 로체 정상에서 찍었다고 공개한 사진 속 풍경들조차, 실제 정상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도준도 한때 그 악마의 벽에 자신의 운명을 걸고 달라붙은 적이 있었다. 토모 체센의 등반 주장이 아직 논란에 휩싸이기 일 년 전인 1989년 10월, 그는 절친 민혁과 함께 메스너조차 21세기에나 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던 그 벽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이 단 5일 만에 8,200미터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목숨을 거는 위기마다 서로의 눈빛 하나로 결정을 내렸고, 등반로는 마치 기적처럼 열렸다. 벼랑 끝에서 손을 내밀고, 눈사태 속에서도 로프 하나에 서로를 지탱하며 수많은 고비를 넘었다.


로체봉 정상에 거의 도달했던 그날, 마지막 공격을 준비하던 순간이었다. 하늘이 찢기듯 열리며 눈보라가 몰아쳤고, 모든 것이 눈앞에서 뒤엉키는 바람에 그들은 정상 직하의 설원 낭떠러지에서 아이스 피켈을 필사적으로 찍으며 온몸을 내던지듯 하산을 시작했다. 그때, 떨어지는 낙석에 그는 자신의 분신 같았던 친구 민혁을 잃었다. 민혁은 로체의 크레바스처럼 깊은 계곡 속으로 아스라이 사라졌다.


해발 8천 미터를 넘나드는 고봉 위에서 인간의 운명은 희미한 그림자에 불과했다. 그곳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금단의 영역이었다. 과연 신의 선택을 받은 자만이 로체 남벽을 오를 수 있는 것인가. 때때로 그는 무력감에 빠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작은 가능성과 희망을 향해 좁은 보폭이나마 한발씩 내디뎠다. 시바 신이 미소를 지을지, 아니면 분노의 화살을 쏘아댈지, 그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