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네 사람의 '나'에 대해서. 상속받은 탄생을 기꺼이 소진할 수 있는 '나'라는 남성인물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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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다는 자신감과 막 태어난 자신의 아이를 '버리는' 결단력을 서슴없이 내보이는 '나'(「첫사랑」). 자신에게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음을, 추방이 곧 여정의 시작이라는 것을, 투명하게 말할 수 있는 '나'(「추방자」). 자신이 지나온 시간들과 "당신"의 젊음을 단번에 "비열한 시간"으로 엮어낼 수 있는 '나'(「진정제」). 죽음의 순간에도 "내 삶을 본뜬 그 이야기를 아무 미련 없이 어렴풋이 떠올"릴 여유를 갖춘 '나'(「끝」)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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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로부터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상속받아 근근이 생활한다는 것을 고백하는 이들에게,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방랑을 즐기는 이들에게, 내면의 혼란을 타자를 집요하게 관찰하는 것으로 잠재우는 이들에게 '베케트'라는 '거장'의 타이틀은 어떻게 부착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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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예측 불가능한 인생에 대해 사유할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다는 옮긴이의 말. 이를 통해 무엇을 옮기지 못했는지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고, 그럴수록 베케트는 결코 '소문'이 아닌 정확한 '실체'로서 여전히 옮겨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감각할 수 있었다. 문제적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