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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님의 서재
  • 부림지구 벙커X
  • 강영숙
  • 13,500원 (10%750)
  • 2020-02-28
  • : 353

재난을 너무나도 가깝게, 그리고 무겁게 마주하고 있는 지금, 매일같이 ‘타겟’이 갱신되면서 (너무) 많은 주목이 권해지는 지금. 이 시점에서 강영숙 소설은 부림지구라는 장소와 벙커라는 터전을 제시하면서 보다 섬세한 주목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 산업화의 영광을 잔뜩 품에 안으면서 성장을 거듭했던 지상의 부림지구, 그리고 모든 것(과거의 제철단지와 현재의 지진을 모두 포함해서)이 무너져내림에 따라 유일한 생활공간으로 기능하는 지하의 벙커. 그럼에도 이 두 공간에서 공고하게 유지되는 것이 하나 있다면, 인간의 이기심이나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손쉽게 명명할 수 없는 혐오가 바로 그것이다.

혐오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에서 출발해서 인간 사회 내부의 갈등과 폭력을 불붙이면서 전염되는 정동이라는 너스바움의 말을 참조한다면, 소설 속 두 공간에서 비-인간, 즉 ‘인간으로 인식되지 못하는’ 존재로 끊임없이 호명되는 존재는 여성이다. 이는 곧 처음부터 “부림지구는 남자들의 땅이었”(248면)기 때문이다. 국가의 개발 드라이브를 짊어지며 탄생한 부림지구 산업 역군 남성의 권력만큼은 무너지지 않는다. 빛바랜 영광은 곧 추억이라는 혼령이 되어 곳곳을 떠돌며 소멸을 연기한다. 그러므로 부림지구에서 태어난 여성의 삶은 곧 처음부터 재난이었다.

한편 소설은 결말에 이르러 여성들이 (삶의) 재난을 극복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점에서 재난-실패 서사를 넘어서고 있어 주목된다. “다 부서져버린 이 삶”(290면)의 실재하는 생존자로, 새로운 “부림지구의 주인”(같은 면)으로 스스로를 명명하며 어떠한 폭력도 혐오도 약속하지 않는 ‘나’. 그리고 미래 사회(국가의 강권으로 계획되는 ‘칩’의 사회)를 거부하면서 애도와 돌봄으로 꾸려나가는 작은 사회.

이 가능성은 어쩌면 일상이 재난으로, 재난이 일상으로 인식되는 ‘지금’의 우리가 상상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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