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선명한 윤곽선 안쪽을 꼼꼼히 채색한 그림을 그린다. 사람에 의해 재해석된 시각 장면인 그림과 달리, 장면을 그대로 담아내는 사진에는 빛의 밝기에 따라, 색채의 차이에 따라, 사물간의 경계가 흐리기도 하고 선명하기도 하다. 실제 시각 세상에는 사물간의 윤곽이 분명하지 않으며, 그림 속의 윤곽선은 우리의 뇌에서 추론해낸 것이다. 실제로 윤곽선이 모호한 그림들은 오히려 자연스럽고 생생하게 느껴진다. 윤곽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채색하여 배경과 인물의 경계를 흐린 피카소의 <모자상>이나 김호도의 풍속화에서 그러한 생생함을 발견할 수 있다.
존재하지 않는 윤곽선을 추론해내는 경향은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대할 때도 나타난다. 좋은 삶을 살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우리는 이성보다는 감성에 따라야 한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극단적으로 칸트와 같은 철학자는 욕망에 사로잡힌 육체적 존재로서의 본성은 도덕법과 적대적이므로, 도덕법을 받아들이는 이성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에는 자연스러운 감성은 어딘가 못미덥고 부정적이며, 이성으로 이 열등한 부분을 통제해야 한다는 우열이 가정되어 있다. 결국 인간은 끊임없이 이기적인 본성과 싸우며 개인의 생존과 공동체의 선을 고통스럽게 저울질해야 한다. 자신의 생존이 걸린 이 저울질에서 저울추는 종종 자신을 위하여 기울고, 양극화는 심해지고, 온난화는 계속되며, 공공재는 감소하고, 양적 완화를 거듭해도 돈은 엉뚱한 곳으로 흐르며 살기가 각박해진다.
이성과 감성에 대한 많은 이들의 믿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이성과 감성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뇌에는 이성을 다루는 영역과 감성을 다루는 영역이 따로 있지 않으며, 소위 이성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정신 작용과, 감성이라고 부를만한 정신 작용의 경계 또한 모호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우리가 이성이라고 불러왔던 정신 작용 또한 우리가 믿는 것처럼 냉철하고, 완벽하고 논리정연하지 않다. 최대한 냉정하고 논리적으로 계산하면서 따라가다가 보면 어느샌가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공리주의에서 우리는 이성의 불완전함을 발견한다. 우리가 감정이라고 부르는 대상 또한, 좋다거나 나쁘다는 딱지를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음식이 들어오면 소화를 시키고, 상한 것이 들어오면 복통을 일으키는 장이 좋거나 나쁘다고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감정이란 생명체가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가기 위한 적응적 반응일 뿐이다. 심지어 인간 감성은 많은 ‘이성’이 굳게 믿는 것처럼 이기적기만 한 것도 아니고 대단히 이타적인 측면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성과 감성을 굳이 나누고, 이성에는 좋음이라는 딱지를, 감성에는 불신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유난스러운 고집은 계몽주의 이래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서구 사상가들의 주장에서 그러한 구분과 우열이 두드러진다. 이성과 감성의 구분은 꼭 필요한 것일까? 이것은 언제, 왜 시작되었는가?
나약한 인간이 상대하기에 자연은 너무도 거대하고 강한 존재였을 것이다. 이 두려움을 감당하기 위하여 어떤 이들은 자연물을 숭배하는 토테미즘을 발전시켰고, 어떤 이들은 인간을 자연 안에 자연스럽게 포함시켰으며, 자연보다 강한 힘을 가진 절대신을 앞세워 인간을 지키고자 한 이들도 있었다. 서구에서 취한 것은 맨 마지막의 방법이었다. 기독교에서 인간은 신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 죄를 대신 지고 떠났다. 인간은 마땅히 자연보다 우월한 존재였다. 르네상스 이후 서구에서는 신에 대한 인간의 해방이 일어났지만 그것은 인간을 자연 위에 둘 근거를 상실하는 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선택된 것이 이성이라고 한다. 동물과 달리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으며 이 이성을 가지고 대항해를 떠나고 기계를 만들어 자연을 부린다고…. 이성과 감성을 구분하고, 둘 사이에 서열을 매기는 태도의 이면에는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고 그 사이에 서열을 매기는 태도가 있었다.
신은 버릴 수 있어도 스스로를 낮추기는 어려웠던가. 진화론이 나온지 200여년이나 지났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른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진화라는 연속선상의 한 가지일 뿐이라는 인식은 아직 내면화되지 못한 듯 하다. 굳이 종교와 과학의 대결이 아니어도 진화론은 여러 분야의 담론에서 아직도 심심찮게 등장하니, 어지간히 마음이 불편한 모양이다. 내가 딛고 선 땅이 돈다는 지동설도 이렇게 오래 싸울 필요는 없었건만 인간이 자연보다 우월하다는 계급 아닌 계급 인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겸허해지기는 커녕 생명에까지 계급 인식을 투여한 우생학이 생겨났다. 머리 좋은 하버드생이나 외모가 뛰어난 이들의 정자며 난자를 판매하는 시장에서, 인간 유전자 조작을 연구하는 기술에서, 나는 차마 우생학이라고 불리지 않을 뿐인 우생학을 본다.
인간은 자연에서 똑 떨어져나온 존재로, 그것도 자연 위에 선 존재로 인식되어야만 하는가? 서구 사상의 모태로 여겨지는 그리스에서도 이러한 인식 구도가 당연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신화에는 반인반마인 켄타우로스가 나오고, 바다와 대지와 태양을 대표하는 신들이 있으며, 신과 사람이 사람과 동식물의 모습을 오가곤 한다. 고대 이집트에도 그러한 신들이 있으며, 단군 신화의 곰과 호랑이에서 우리는 토테미즘을 발견한다. 심지어 도가에서는 자연과 인간을 굳이 구분하지 않고, 물처럼 자연스러운, 자연을 닮은 삶을 주창한다. 즉,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고 그 사이에 계급을 두는 시각은 유일한 정답도, 보편적인 시각도 아니다. 이러한 시각은 생물 분류학의 선구자이기도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기독교가 받아들이면서 서구인들의 세계관에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우생학에서부터 이기적인 (것으로 추정되는) 인간과 공동선의 고통스러운 저울질의 근원에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시작된 모든 것들에 대한 구분과 우열이 있었다.
세상의 많은 것들에 분명한 윤곽선을 긋고 우열을 지으면 세상은 참으로 명쾌해진다. 그러한 구분을 통해서 논리적인 분석이 가능해지고, 과학도 가능해지고, 구분된 계층에 대한 투쟁을 통해 자유, 평등, 다양성이라는 귀중한 개념이 탄생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이들 개념이 현실에서 실현된 형태이다. 하지만 사진에는 없는 그림속 윤곽선처럼, 구분과 우열은 인간의 지각에 근거하여 인위적으로 매겨진 것이기에, 이러한 편의가 통용되지 않는 지점에 이르면 그만 장애물이 되고 만다. ‘와! 이렇게 명쾌한 게 다 있구나!’ 하고 기뻐서 손을 뻗었는데 얼마 못 가서 딱딱한 벽이 만져지는 식이다. 그래서 구분과 우열은 태초부터 모순과 투쟁을 내재하고 있다. 서양 열강들이 자로 그린 아프리카 국경을 따라 종족간 종교간 분쟁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 처럼…
다른 시각도 있다. 노자는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라고 하였다. 무엇을 무엇이라 구분하고 한정짓는 순간, 그 무엇은 영원하고 보편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노예 제도처럼 인식과 개념과 제도는 상황의 제약을 받는 것으로서 보편절대적인 것일 수 없다. 하지만 특수한 개별 상황이 일반화될 수 없음을 주장하는 상대론은 사람을 참 하릴없게 만든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된다는 건지… 어떤 법이나 이름이나 제도가 보편절대적인 진리가 못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특수한 개별 상황들을 살아가고 있다. 결국, 상대론은 상대성을 여러 개별 상황에 일반화함으로써 특수한 개별 상황을 일반화하는 절대론과 마찬가지의 오류를 범한다.
불가에서는 한단계 더 나아간다. 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도가 아닌 까닭에 도라고 이름한다는 주장을 편다. 상대성과 개별성을 모두 인정함으로써, 개별성의 유용함을 인정하되, 개별성에 구속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러한 개별적 상황에 있기에 상황적 특수성을 수용하지만, 이것이 절대적인 무엇이 아니라는 상대성 또한 인지하고 있으므로 개별성을 일반화 하는데서 생겨나는 모순과 싸움을 넘어서겠다는 논리다. 일체의 단어와 개념이 이미 개체분절적인 속성을 지니므로 개별성을 넘어서려는 도가나 불가의 논리는 언어의 이치에 닿지 않는다. 도대체가 이해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은 달에 닿지 않는 손가락을 뻗어 달을 가리키며, 손가락 말고, 저 달을 봐달라고 한다.
옛 화가들은 실제 시각 장면에는 없는 명확한 윤곽선을 그렸다. 뇌가 구성해낸 윤곽선은 개별 사물을 인식하는데 유용하지만, 선명한 윤곽선을 가진 그림의 생동괌과 자연스러움은 감소하였다. 후대의 미술가들은 윤곽선을 그리되 윤곽선을 부드럼게 넘어 채색함으로써, 윤곽선이 가지는 부자연스러움을 넘어섰다. 구분하고 우열짓는 태도는 민주주의와 과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발전의 다음 단계는, 구분을 넘어서는 김홍도와 피카소의 그림 같은 것이어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