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적 호기심을 가진 독자라면 이 책의 목차를 보고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상의 인문학> 속에는 근현대를 아우르는 철학 사상들과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목차를 보고 내가 상상한 이 책은 두꺼운 백과사전 만한 크기의 모든 근현대 지식을 총괄하는 개론서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 책은 각각의 저작을 충실하게 설명해주는 책이 아니라, 그 책들을 토대로 저자인 장석주가 풀어주는 정신적 여행의 지침서였다. 물론 책의 내용을 벗어나는 부분은 없으나 책의 짧은 분량은 그 수많은 사상과 문학들을 담아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더욱이 저자가 충실한 부분은 책의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 자신이 풀어내는 사유의 전달이다. 즉 이 책을 통해서 목차의 모든 저작들을 섭렵하리라고 마음 먹었던 나는 다소 아쉬움을 느꼈다.
요컨대 이 책은 장석주의 사유, 그가 어떻게 책을 먹어치우고 어떻게 책을 읽었는지 증명해 보이는 증거물이다. 또한 각 책을 소개하는 지문들은 열 페이지 정도로 제한되어 있어서 주요 사상만이 내용이 압축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소개된 책들을 이해하는 입문서 정도로 볼 수는 있어도 그 요지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다만 아주 고급 독자가 행하는 독서법, 하나의 책을 파악하는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 다른 책과 텍스트를 엮어 더 큰 사유로 재창조해나가는 과정은 똑똑히 볼 수 있다.
이 책의 중요한 점은, 장석주의 사유가 점이 아니라 끊임없이 흐르는 선처럼 흘러간다는 점이다. 그는 리좀의 완결된 체계와 귀납적 완결을 내려고 하지 않는다. 이 책은 시작이 없고 끝도 없고 파편화되어 있다. 어느 부분에서부터 읽어내려도 상관 없으며 원한다면 필요한 부분만 읽더라도 상관이 없다. 이 책은 개개의 사유로 분리되어 있지만 또한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이 책은 리좀의 체계, 노마드적인 독서법을 필요로 하는 책이다.
<일상의 인문학>은 다소 어렵다. 그건 여기서 다루는 책들이 모두 아주 깊은 사유와 중요한 사상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최대한 짧은 지면에 그 핵심을 온전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근현대에서 중요한 사상과 질문들이 무엇인지, 혹은 읽어야하는 책들이 무엇인지 확인하게 해준다. 한동안 어떤 책을 읽어야할지 고민을 하던 내게도 아주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이 책 한 권을 읽고나서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책들이 수십 권으로 늘어나버렸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인용한 김연수의 글을 패러디하면서 글을 마친다.
“책 속에서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와 나 자신 사이의 어떤 것이다. 어떤 점에서 그 둘은 같다. 온전하게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이 바로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