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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너구리님의 서재
  • 위저드 베이커리
  • 구병모
  • 13,500원 (10%750)
  • 2022-03-27
  • : 9,186

**스포일러 포함**


제목과 표지 일러스트를 보고 내용을 지레짐작했다간 예상치 못한 ‘매운맛’에 화들짝 놀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 소설은 『해리 포터』 속 ‘다이애건 앨리’의 어느 빵집에서나 일어날 법한 마냥 신기하고 환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위저드 베이커리』. 어느 동네에나 한 군데쯤은 있는 ‘빵집’과, (마법사 최현우 씨가 거주한다는 논현동이 아니고서야) 어느 동네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마법사’를 맞붙였다. 학교 폭력, 아동 성폭력, 자살, 살인 등 온갖 잔악한 사건이 줄줄이 벌어지는 현실의 한복판에 이 소설은 ‘마법의 빵 가게’라는 자칫 엉뚱하게 느껴지기 쉬운 판타지 요소를 끌고 온다. 하지만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너무도 흔히 일어나는 현실이기에 동네 빵집에서 마법의 힘을 가진 빵을 판다는 ‘있을 수 없는 일’은 이 비극적 현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청소년 문학을 많이 접해보지 않았다면 이 소설의 내용이 낯설거나 당혹스러울지도 모른다. 16세 주인공이 살아내는 현실이 상당히 참담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어릴 적 어머니가 전철역 대합실에 자신을 버리고 자살하면서 아버지와 단둘이 살게 된다. 이후 아버지가 새살림을 꾸리면서 새어머니의 눈엣가시가 되자 새어머니의 눈에 띄지 않게 자기 방에서 숨죽여 지내며 매일 빵 한 개로 끼니를 때운다. 그러다가 초등학생인 의붓동생을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쓰고 위저드 베이커리로 도망쳐 온다. 빵집 손님들의 사례도 하나같이 끔찍하다. 내심 못마땅한 우등생 친구를 골려주려 마법의 쿠키를 선물한 일이 친구의 자살로 이어지기도 하고, 짝사랑하는 학생회장에게 마법의 프레츨을 건네준 일이 그를 스토킹 살인범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주위에 이 책을 읽으려는 청소년이 있다면 말리지 않겠다. 온라인 서점에 달린 평을 살펴보면 ‘청소년이 읽기에는 너무 잔인하다’는 학부모 의견을 이따금 마주친다. 이 잔혹한 세상을 알기에는 아직 어리다는 걸까. 그러나 어른의 짐작과 달리 아이들은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이 책이 다루는 스토킹, 성폭력, 자살 등은 청소년에게 결코 미지의 주제가 아니다. 나아가 이들은 자신이 알게 된 세상을 이해하고 그에 대응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 적어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세상을 숨기거나 미화해서 그린다면 외려 현실감 없고 어딘가 답답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실제로 이 소설은 창비 청소년문학상 심사 당시 청소년 심사단 5인 전원에게 재미있다는 평을 얻었다. 온라인 리뷰에서도 자녀가 재미있게 읽었다는 평이 흔히 보인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많은 청소년이 이 소설의 내용을 위화감 없이 받아들일 정도로 성숙한 게 아닌가 싶다.


잔혹한 현실 외에도 이 소설에는 고소하고 달콤한 판타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빼먹어선 안 된다. 우리 동네 빵집이 알고 보니 각종 마법의 빵을 구워내는 신비한 공간이라면 어떨까? 마주하기 두려운 현실에서 빠져나와 따뜻한 빵과 쿠키를 맛보며 잠깐 숨 돌릴 수 있는 곳. 툴툴대지만 사실 다정한 제빵사와 나를 늘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상냥한 파랑새도 함께다. 이 소설은 판타지를 현실 도피의 수단이 아니라 현실을 직면해 한층 성장하도록 돕는 장치로 활용한다. 잠깐의 도피를 통해 우리는 주어진 현실을 다시 살아낼 용기와 자신을 위한 선택이 무엇인지 판단할 지혜를 얻는다. 청소년을 둘러싼 잔혹한 현실 세계와 노릇노릇한 빵을 맛보며 쉬어갈 수 있는 환상 세계를 오가면서 마음속에 자신만의 위저드 베이커리를 만들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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