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영 작가의 『무근본 음악 방송 제작기』 3부와 에필로그는 치열하게 달려온 무대의 막이 내린 뒤, 남겨진 자리에서 비로소 피어나는 성찰과 성장을 보여준다. 갑작스러운 코로나19의 습격으로 관객의 환호성이 증발하고, 마침내 다가온 ‘프로그램 종영‘ 통보는 성취와 보람 대신 깊은 허무함을 남겼다. 잘나갈 때가 아니라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날 때 비로소 키가 쑥 자란다는 대목은, 오랜 세월 한 길을 걸으며 크고 작은 위기를 견뎌온 내 마음을 깊이 두드렸다.
과거의 영광에 갇혀 ˝나 때는 말이야˝를 반복하는 어른이 되기보다, 침묵 속에서도 그 시절을 품고 오늘을 살아내겠다는 작가의 다짐이 참 고결하다. ˝서울이 아니어서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일단 해보자˝는 마음은 비단 방송계뿐만 아니라, 내 삶의 모든 변방에서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격려다. TV와 라디오를 오가며 매일 마감의 압박과 싸우면서도 ˝넘어졌다고 세상이 끝나는 게 아니라는 실용적인 능력˝을 배웠다는 에필로그는,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멋진 무대를 만들어가는 모든 이들에게 최고의 반창고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