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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엄하게 산다는 것
  • 게랄드 휘터
  • 16,650원 (10%920)
  • 2019-05-17
  • : 2,871


우리는 타인에 의한 평가와 기준으로 점철된 삶을 산다고 할 수 있다. 10대에 대학 입시, 20대에 취업 준비, 30대에 결혼.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삶의 순차적 단계란 것에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 진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로 보인다. 이것은 게랄트 휘터의 『존엄하게 산다는 것』에서 그가 반복하는 "내면의 나침반"을 찾는 것. 즉, 다시말해 한 인간으로서의 고유한 '존엄성'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로 보인다. 

 


 

내면의 나침반

우리의 인생의 방향은 정해져 있는듯 하다. 성공적인 삶일수록 현 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예민하게 캐치하여 그에 현명하게 대응하는 방식을 택한 사람일 확률이 높다. 나는 이를 '현명하다'라고 수식한다. 나와 같은 수 많은 현대인들에게 저자인 휘터는 칸트의 말을 인용하여 인간 존재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바라보라고 한다. 경쟁이 만연해지고 당연시 되어버린 사회에서, 타인을 밟고 올라갈 수 '밖에'없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외면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존엄한 인생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더 이상 존엄하지 않은 인생을 살 수 없다."

 


그는 신경생물학자로서 인간이 자아를 확립해가는 과정을 동물과 차별이 되는 인간의 뇌 기능과 결부시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주체성이란 본능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것으로 긍정적인 관계를 통한 임펄스(자극)를 통해 구축된고 한다. 결국, 사회적으로 구축되는 자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아이들은 인간의 존엄을 가능케하는 삶의 나침반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단계'인 것이다. 아이들이 맺는 사회적 관계는 가족, 그리고 유치원일텐데, 그가 보는 현재의 교육방식은 삶을 수단으로 보게하며, 타인을 쉽게 대상화 시키는 방식이다. 이런 교육 기관에서 아이들이 만들 '나침반'은 획일화되어 제 기능을 갖추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근본적으로 이런 교육 체제의 문제점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것일까? 그는 원인과 대안이 바로 '우리', 어른들이라고 한다. 주체성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삶의 존엄성을 인식하는 것이야 말로, 지금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변화의 첫 단계라고 강조한다. 

 

 



영화 《죽은 시인들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은 자신의 수업 방식이 비전형적인 것에 대해, 이는 학생들이 스스로 사색하는 법을 터득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부모님들의 강요에 의해, 또 사회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기위해 정해진대로 움직이고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키팅의 수업은 "삶의 나침반"을 가지고 스스로 방향을 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고등학생인 학생들이 체화해버린 성실하고 착한 학생의 삶의 방식은 현실적으로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고집스럽게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관철시키는 아버지에게 끝까지 저항하여 벗어나는 것이 아닌 죽음을 택하는 것, 키팅 선생이 교실을 떠날 때 모든 학생들이 책상 위로 올라가지 않은 점만 보더라도 휘터가 주장하는 어린 아이들의 자아 구축 과정의 중요성을 떠올릴 수 있다. 아이들의 교육 체제를 바꾸기 위해서, 어른인 우리가 잊혀져가는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다시 일깨우자는 것이다. 모든 변화는 인식에서부터 시작한다. 인간다움, 존엄성, 삶의 나침반을 찾기를. 키팅선생과 같은 선한 영향력을 주는 '어른'이 되길.


 

어찌보면 뻔한 이야기였다. 이기적인 현대인의 삶의 방식에 경종을 울리는 그의 메시지는 분명했지만 새롭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변명할지도 모른다. 현재의 삶을 나름의 방식으로 "열심히", 혹은 "처절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이런 한가한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런 책이 계속,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100명이 있는데 그 중 오직 10명만이 '다른'생각을 할 수 있다면, 이 10명이 곧 20명, 50명, 80명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현재 나의 간헐적 존엄적 삶을 더욱 긍정하며,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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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유하기 내면의 나침반우리의 인생의 방향은 정해져 있는듯 하다. 성공적인 삶일수록 현 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예민하게 캐치하여 그에 현명하게 대응하는 방식을 택한 사람일 확률이 높다. 나는 이를 '현명하다'라고 수식한다. 나와 같은 수 많은 현대인들에게 저자인 휘터는 칸트의 말을 인용하여 인간 존재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바라보라고 한다. 경쟁이 만연해지고 당연시 되어버린 사회에서, 타인을 밟고 올라갈 수 '밖에'없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외면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존엄한 인생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더 이상 존엄하지 않은 인생을 살 수 없다." 그는 신경생물학자로서 인간이 자아를 확립해가는 과정을 동물과 차별이 되는 인간의 뇌 기능과 결부시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주체성이란 본능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것으로 긍정적인 관계를 통한 임펄스(자극)를 통해 구축된고 한다. 결국, 사회적으로 구축되는 자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아이들은 인간의 존엄을 가능케하는 삶의 나침반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단계'인 것이다. 아이들이 맺는 사회적 관계는 가족, 그리고 유치원일텐데, 그가 보는 현재의 교육방식은 삶을 수단으로 보게하며, 타인을 쉽게 대상화 시키는 방식이다. 이런 교육 기관에서 아이들이 만들 '나침반'은 획일화되어 제 기능을 갖추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근본적으로 이런 교육 체제의 문제점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것일까? 그는 원인과 대안이 바로 '우리', 어른들이라고 한다. 주체성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삶의 존엄성을 인식하는 것이야 말로, 지금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변화의 첫 단계라고 강조한다.   영화 《죽은 시인들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은 자신의 수업 방식이 비전형적인 것에 대해, 이는 학생들이 스스로 사색하는 법을 터득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부모님들의 강요에 의해, 또 사회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기위해 정해진대로 움직이고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키팅의 수업은 "삶의 나침반"을 가지고 스스로 방향을 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고등학생인 학생들이 체화해버린 성실하고 착한 학생의 삶의 방식은 현실적으로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고집스럽게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관철시키는 아버지에게 끝까지 저항하여 벗어나는 것이 아닌 죽음을 택하는 것, 키팅 선생이 교실을 떠날 때 모든 학생들이 책상 위로 올라가지 않은 점만 보더라도 휘터가 주장하는 어린 아이들의 자아 구축 과정의 중요성을 떠올릴 수 있다. 아이들의 교육 체제를 바꾸기 위해서, 어른인 우리가 잊혀져가는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다시 일깨우자는 것이다. 모든 변화는 인식에서부터 시작한다. 인간다움, 존엄성, 삶의 나침반을 찾기를. 키팅선생과 같은 선한 영향력을 주는 '어른'이 되길. 어찌보면 뻔한 이야기였다. 이기적인 현대인의 삶의 방식에 경종을 울리는 그의 메시지는 분명했지만 새롭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변명할지도 모른다. 현재의 삶을 나름의 방식으로 "열심히", 혹은 "처절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이런 한가한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런 책이 계속,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100명이 있는데 그 중 오직 10명만이 '다른'생각을 할 수 있다면, 이 10명이 곧 20명, 50명, 80명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현재 나의 간헐적 존엄적 삶을 더욱 긍정하며,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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