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서 "뉴욕, 미국인의 이미지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영화나 미디어로 접했던 미국 이미지는 "기회의 땅"으로 도전과 모험과 같은 단어가 어울리는 나라고, 뉴욕은 젊음의 도시로 생각했는데, <순수의 시대>에서 만난 뉴욕은 너무 낯설었다. 역사도 짧은 미국 조차도 역시나 타인과 나의 차이를 구분짓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가진 자들끼리도 귀족과 진짜 귀족 등으로 서로를 나누는 모습이, 인간 사회가 매한가지구나하고 생각이 들었다. ^^
미국이 귀족이라는 단어가 어울리기나 하던가?
어느 나라든지 지배계층의 사고방식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뉴욕 아카데미 오브 뮤직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의 대비와 미국 상류층의 힘겨루기가 재미있었다.
다른 책과 달리 상류층의 취향에 대해서 묘사하는 부분이 많았다. 음악, 공연, 미술, 책, 식기들, 의복, 마차, 당대 유명한 작가나 가수들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가득했다.
<파우스트>공연으로 1장을 시작하고, 세브르 산 고급 자기, 트리베나의 조지 2세 접시, 로스토프트 자기, 크라운 더비 자기와 같은 식기들, 밴 더 루이든 부인을 카바넬의 그림 속 인물로 묘사, 아처 부인을 이자베이의 세밀화 속 인물로 묘사, 영국 작가의 <르네상스>, <미들마치>, 연극 <방랑자> 등 이런 상세한 묘사는 그 문화를 공유하고 있지 않은 나로서는 참 상상하기 어려운 것들이서 하나씩 찾아보면서 이 책을 읽어내야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차츰 상상이 되면서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순수의 시대'란 제목은 무얼 의미할까?
뉴욕의 바보같은 옛 모습을 말하는 듯하다. 체면과 가문을 중시하는 상류층 사람들의 시대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결론을 냈다. 지금 뉴욕은 순수의 시대가 아닌 바빠서 이웃을 성가시게 할 시간도 없고 원하는 건 당연히 원할 줄 아는 사람들이 사는 보퍼트의 사생아들과 결혼하는 그런 도시이기 때문이다.
순수와 구분짓는 상류층 이야기는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메이의 엘렌 퇴치법(?)은 너무 무서웠다. 살면서 메이같은 사람은 안만나며 살고 싶다. 그런데 그게 옛 뉴욕의 방식이었다니... 작가는 메이가 대표적인 순수의 시대 인물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것이 '피를 흘리지 않고' 목숨을 빼앗는 옛 뉴욕의 방식이었다. 412쪽
엘렌의 아래 대사는 내 마음에 와 닿았다. 우리도 얼마나 많은 거짓 흉내를 요구하고 요구 받았던가?
진짜 고독이란 거짓 흉내만을 요구하는 이런 사람들에게 온통 둘러싸여 사는 거예요! 99쪽
메이의 대사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대사는 저 한 문장 뿐이었다.
옷은 그들의 갑옷이야. 낯선 타인들에게 맞서 자신을 방어하는 수단이자 도전이지. 247쪽
아처가 엘렌을 포기하고 임신한 메이를 택하며 마음 속 성소를 만들었다는 표현이 좋았다.
그는 자기 마음속에 일종의 성소를 만들어 놓고 비밀스러운 생각과 열망가운데 그녀를 간직해 두었다. 그곳은 조금씩 그의 진짜 삶이자 이성이 활동하는 유일한 장이 되어 갔다. 324쪽
이 책을 읽는 시점에 미국 대선이 진행되고 있어 트럼프도 미국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혼한 전처와 피자 광고를 찍어 본인의 이미지를 바꾸는 전략적이고 저돌적인 트럼프. 날것을 있는 그대로 비판하는 트럼프. 순수의 시대 사람들이 그어 놓은 선을 트럼프는 가뿐하게 넘어가 버린다. 이런 사람들이 순수의 시대를 끝내버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