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헤르만 헤세님,
당신의 <데미안>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독자입니다. 이번에는 <싯다르타>로 다시 인사드리네요.
제가 <데미안>을 읽었던 시기는 아이엄마가 되어 육아로 인해 고군분투하고 누구누구 엄마로 불리며 제 이름 석자가 지워져가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제게는 가장 힘겨운 시간이었답니다. 그때 <데미안>을 읽게 되었고 흔들렸던 제 마음을 추스려 다시금 육아의 터널을 씩씩하게 걸아가게 되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데미안은 자아를 찾아가는 책이었어요.
<싯다르타>는 자아를 버리고 좀더 큰 범위에서 의미를 찾는 것 같았습니다. <데미안>은 젊은 시절의 방황하는 헤르만 헤세를 보는 것 같다면, <싯다르타>는 노년의 헤르만 헤세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예요. 아이들을 다 키우고 바쁜 시절이 점점 끝나가는 이 시점에 이 책을 읽게 되었지요. 육아터널의 시작에 <데미안>을 읽고 터널 마지막에 <싯다르타>를 읽는다니 왠지 운명처럼 느껴지네요.
초년의 <싯다르타>는 길을 떠나요. 중년의 <싯다르타>는 삶을 경험하고, 노년의 <싯다르타>는 아들을 사랑하며 절망하기도 하고 떠나는 자식을 슬슬프게 바라보기도 하죠. 그러다가 강물을 바라보며 깨닮음을 얻구요. 저는 아직 자식을 사랑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삶을 경험하고 있구요. 아직 갈길이 멀지요.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다음 단계가 다가오더라도 당황하지 않으려고요. 노년의 저도 깨닮음을 얻게 되겠지요? 마치 싯다르타처럼요.
책을 읽다보니 '강' 이야기가 많이 나오더라구요. 그러다 문득, <월인천강지곡>이라는 세종대왕이 지은 노래가 있는데, 그 제목이 여러 중생을 널리 교하시킨 것이 마치 달은 하나이나 달빛이 수만개의 강에 골고루 비치는 것과 같다는 의미라는 걸 기억했어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부처님의 교리에서 '강'은 그런 존재인가 봅니다.
남의 말을 귀담아듣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강이었어요. 당신도 강으로부터 그것을 배우게 될 거예요. 그 강은 모든 것을 알고 있어서, 우리는 강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지요. 보세요. 당신도 이미 강물로부터, 아래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 가라앉는 것, 깊이를 추구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것을 배웠어요... 152-153쪽
우리가 아웅다웅하며 싸우고, 때로는 비겁하기도 한 내 자신을 보기도 한데, 그런 나를 위로한 말은 아래 부분이었어요.
그에게는 이러한 어린애 같은 인간들이 자기의 형제들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허영심, 탐욕이나 우스꽝스러운 일들을 이제 그는 웃음거리가 아니라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일, 사랑스러운 일, 심지어는 존경할 만한 일로 여기게 되었다. 187쪾
그는 바로 그런 것 때문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바로 그런 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무한한 업적을 이루고, 여행을 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무한한 고통을 겪고, 무한한 고통을 감수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188쪽
앞으로도 지금처럼 잘 살아보려구요. 헤르만 헤세 당신은 정말 등불 같은 존재네요.
당신의 다른 작품을 만나게 되어도 그럴까요?
당신의 번뇌와 고민이 이런 작품들을 탄생시켰나봐요.
다시 한번 감사하며, 다른 작품으로 또 인사드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