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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1612님의 서재
  • 밥벌이로써의 글쓰기
  • 록산 게이 외
  • 16,200원 (10%900)
  • 2018-02-10
  • : 266

이런 류의 책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책을 즐겨 읽는 사람들에게도,
그렇지는 않지만 남이 번 돈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나처럼 '한때 작가를, 그리고 아직도 언젠가는 작가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좀더 현실적으로 동경하던 세계를 기웃거리게 되는 발판으로 이런 책은 언제나 상당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이 책을 엮은 작가 만줄라 마틴은 10년 넘게 경력을 쌓아온 작가이자 편집자이며,
프리랜서 작가의 원고료를 공유하는 미국 최고의 사이트 'Who pays the Writers?'와 온라인 문학잡지 <스크래치, Scratch>를 창간했다고 한다.

 

이 책은 만줄라 마틴이 2013년부터 15년까지 운영한 <스크래치>를 기반으로 글쓰기와 돈에 관한 기성, 그리고 신인 작가들의 생각을 담은 인터뷰와 에세이 모음집이다.

 

하지만 <밥벌이로써의 작가 - 너무도 명백한 제목의 문법적 오류 때문에 말이 많지만 우선은 이렇게 표기하자면>는 실제로 읽어보니 제목이 주는 기대와는 살짝 조금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조금이라도 이름을 들어본 작가는,

홍보로 언급된 저 4명(록산 게이, 셰릴 스트레이드, 닉 혼비, 조너선 프랜즌)이 전부이다.

 

나머지 필진들은 개중에 잘 팔린 소설을 출판했다거나 상을 탔다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뉴욕타임즈>, <하퍼스>, <시카고 트리뷴> 등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한다는 정도의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고,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이 책의 70% 정도는, '유명한 작가들이 무명 시절에 돈이 없어 고민하다가 유명해 진 후에는 얼마를 벌었다는' 류의 뻔한 내용이 아니라, 잘 모르는 작가들이 털어놓는, '밥벌이의 고충'과 '아직도 내가 마음 놓고 전업 작가가 될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칼럼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면에서는 유명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업계의 속사정을 듣거나, 대리만족하는 기분을 누릴 수 없는 게 아쉽기도 하지만 사실상 좀더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 조금 다른 종류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필진들이 제각각인 만큼, 글솜씨에도 제각각 편차가 있어서 어떤 글은 꽤 재미있게 술술 읽히고 공감도 가지만 어떤 글은 산만하고, 난해하거나 무엇을 말하고자 한 건지 조금 모호한 것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은 뉴욕 브루클린 소재 에이전시에서 저작권 에이전트로 일하고 있다는 '케이트 맥킨'이 쓴 칼럼, <책을 내지 못한 소설가>편.

 

그녀의 이력은 고작 저작권 에이전트로 일하고 있으며 서던 미시시피 대학교에서 소설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는 것이 전부다.

말하자면 아직 변변한 책 한 권 출판하지 못한 사람인 것이다.

4장짜리 짧은 글이지만 쉽게 읽히는데다 시작부터 끝까지 마치 내 이야기처럼 굉장히 와 닿았다.


그러니까 늘 '난 시간과 돈만 충분하다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지금의 현실적인 직업에 충실하다보니 영감을 받거나 글을 쓸 시간이 늘 부족하네~' 하는 푸념을 달고 사는 나 같은 사람이 지구 반대편에도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대필 작가로 일했다는 '사리 보통'의 칼럼, <대필 작가라는 직업>도 상당히 재미있다.

 

유명하거나, 혹은 유명하지 않아도 자기 이야기를 남기고 싶은 사람들이
대필 작가들에게 지불하는 통상적인 임금이 대략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있을 뿐더러
대필 작가로서 겪었던 최고의, 혹은 최악의 의뢰인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흥미진진하다.

 

그밖에도 전업 작가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이 너무 팍팍하여 결국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서 돈벌이에 열중하는 동안 생계는 유지할 수 있지만 글을 쓸 시간이 없어 괴롭다는 둥 찌질찌질한 이야기들이 줄줄 이어진다.

 

하지만 책장을 덮을 때쯤에는 '전업 작가'라는 게 그렇게 '꼭 도달해야 하는' 골인 지점인지 의문스러워진다.

 

굳이 '작가'뿐만이 아니라, 지금의 직업은 그저 생계유지의 수단일 뿐,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다른 무엇'이라고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이 책은, 타인의 삶을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 준다.

 

반드시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아도, 전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에만 매달리지 않아도,
가슴속에 품은 열정이 꺼지지만 않는다면 '삶은 계속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글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돈은 따라오는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조언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했지만 결코 먹고 살 수 없어서' 다른 길을 병행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현실과 타협해가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차근차근 꿈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들을 보는 것이 존경스럽다.

 

그리고 '비록 목구멍이 포도청일지라도 결코 꿈을 포기하지는 말자'는 생각도 함께 하게 된다.

낮에는 회사에서 자본주의 미소를, 밤에는 내 방 컴퓨터 키보드 앞에서 열정을 표출하는 삶도 그리 나쁘진 않을테니까.

 

*<밥벌이로'써'의 글쓰기>라니...
책 한권을 만들기 위해 거쳐가는 손들이 한둘이 아니었을텐데 그 누구도 이 부분에 대한 지적이 없어서 결국 출간까지 되었다니 그 안일함이 조금 놀랍다.
  (원제(Writers, Money, and the Art of Making a Living)를 센스있게 번역한 건 좋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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