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미국 출간 직후, 국내 출간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하필 가장 더운 8월 중순에 읽게 되었지만,
책을 받아드는 순간 미친듯이 설레었고, 읽는 내내 더위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릴만큼 즐거웠다.
홀리 기브니는 사설 탐정이고, 킹의 다른 작품 (빌 호지스 3부작)에서 조연으로 등장했던 인물이다.
우울증과 강박증에 시달리는 골초이고, 자신을 과보호하고 통제하려는 신경질적인 어머니에게 시달리며 은둔형 외톨이처럼 살다가 탐정 빌 호지스를 만나 세상밖으로 나오며 비로소 제대로 자기 삶을 살게 된 인물이다.
원래 <미스터 메르세데스>에서 특이한 단역에 그칠 예정이었던 이 인물에게 끌려 애정을 주게 되고, 결국 단독 이야기마저 창조하게 되었다는 작가 킹의 이야기처럼,
나 역시 주인공다운 면은 전혀 없어보이는 이 어두운 인물에게 이상하게 첫등장부터 눈길이 갔고, 결국 그녀가 등장하는 모든 이야기들을 아주 사랑하게 되었다.
이번 신작 <홀리>는 얼핏 범죄나 스릴러 분야 장르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그리 신선할 게 없는 소재일 수도 있다.
두 얼굴을 가진 연쇄살인마가 구역질나는 잔인하고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이를 수사하는 탐정은 조각 단서를 하나씩 모아서 그들의 실체에 다가간다.
하지만 킹의 오랜 팬으로서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인, '뻔한 소재도 신선한 느낌으로 끌고 가는 그만의 능력'은 여기서도 발휘된다.
'휠체어가 실린 밴을 이용해서 젊은 사람들을 납치하는 노부부'
둘 다 인근 대학 명예 교수로 일하는 지적인 사람들이라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지만, 바로 그 점 - 아는 것이 '지나치게 많은', 한때는 지적이었던 노인이라는 점-이 범행의 동기이자 이유가 된다.
킹은 늘 끔찍하고 역겨운 공포 요소를 활용해 사람의 심리를 제대로 보여주는 작가인데 이번에도 그런 부분을 살짝 비틀어서 보여준다는 점이 아주 흥미로웠다.
노화에 대한 공포는 누구에게나 존재하기 마련인데, 특히 주절주절 잡지식이 많은데다 왕년에 잘나가던 학자로서 더더욱 자신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든 노교수 부부는 자기들의 지식을 아주 엉뚱한 곳에 활용하기로 마음 먹는다. (자기들만의 개똥철학에 따라 젊은이들을 납치해서 자신들의 신체 수명을 늘리는데 이용하기로)
나이를 먹으면 인지 능력이 퇴화하며 자신만의 아집에 빠지기 쉽다는 점을 극대화시켜 노부부 연쇄살인범 설정에 적용한 것이다.
게다가 이 소설은 두 노부부의 시간과 탐정 홀리의 시간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스릴을 극대화시킨다.
과거 시점부터 시작해서 범행을 차근히 저지르는 노부부, 그리고 처음으로 사건을 인지하고 사라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며 단서를 모아가는 홀리의 현재가 번갈아 나오다가, 결국 둘의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핸디캡이 있는 인물, 홀리의 독특한 수사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즐거웠지만
완벽하게 지능적이진 않지만, 결코 정상이 아닌 광인 부부가 폭주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제대로 막아낼 수는 있을지 극의 흐름 그 자체를 따라가는 재미도 아주 좋았다.
특히 사건이 모두 끝난 뒤에도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 몇 장의 임펙트가 상당했다.
(킹의 작가 후기를 보면 의외로 사건 종결 후 후반부의 특정 장면을 쓰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이렇게 되면 킹의 만수무강을 또 한번 기원하지 않을 수 없다.
제발 홀리를 주인공으로 하는 단독 시리즈가 또 나와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