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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현님의 서재
  • 가면의 고백 (무선)
  • 미시마 유키오
  • 12,150원 (10%670)
  • 2009-12-15
  • : 5,334

내 관능이 그것을 원하지만 내게는 영원히 거부된 어떤 장소에서, 나와는 관계없이 이어지는 생활이나 사건, 그런 사람들, 이것들이 내가 생각하는 ‘비극적인 것’의 정의였다. 거기에서 내가 영원히 거부되리라는 비애감이 항상 그들과 그들의 생활로 옮겨 가고 하나의 꿈이 되어서, 가까스로 나는 나 자신의 비애를 통해 그곳에 끼어들려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느꼈던 ‘비극적인 것’이란, 내가 그곳에서 거부당하리라는 데 대한 재빠른 예감이 몰고 온 비애의 투영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P19
여기에 사랑의 비밀스러운 의미가 담겨 있는 게 아닐까. 사랑의 아주 깊은 내면에는 한 치의 다름도 없이 상대를 닮고 싶다는 불가능한 열망이 흐르는 게 아닐까. 이 열망이 인간을 몰아세워서, 절대로 불가능한 것을 반대의 극점으로부터 가능하게 만들려고 무익한 몸부림을 치는 저 비극적인 이반으로 인도하는 게 아닐까. 즉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 완벽하게 서로 닮는 것이 되지 못한다면, 차라리 서로 조금도 닮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러한 이반을 그대로 환심을 사는 데 이용하려는 심리적 시스템이 있는 게 아닐까. 더구나 서글프게도 서로 닮는 것은 한순간의 환영인 채로 끝나버린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소녀는 과감해지고 사랑하는 소년은 내성적이 된다고 해도, 그들은 서로 닮으려고 애쓰다가 언젠가는 서로의 존재를 건너뛰어 저 너머로, 이미 대상도 없는 저 너머로 떠나가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P83
인생은 처음부터 의무관념으로 나를 조여왔다. 내가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잘 알면서도 인생은 나를 의무 불이행이라는 이유로 마구 힐책하는 것이었다. 이런 인생을 죽음으로 골탕 먹인다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전쟁중에 유행하던 죽음의 교의에 나는 관능적으로 공감했다. 내가 만일 ‘명예로운 전사’를 하게 된다면(그건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야말로 풍자적으로 생애를 마감한 것이 되고, 무덤 안에서 내가 지을 미소의 씨앗은 영원히 시들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P120
나에게는 패배의 취미가 선천적으로 결여되어 있었다. 게다가 마치 풍성한 가을 수확물처럼 내 주위에 널려 있는 엄청난 숫자의 죽음, 전쟁터에서의 재난사, 순직, 병사, 전사, 자동차 사고사, 단순한 병사의 어느 그룹엔가 내 이름이 분명히 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형수는 자살을 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살하기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계절이었다. 나는 무엇인가가 나를 죽여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무엇인가가 나를 살게 해주기를 기다리는 것과 똑같은 일이었다.-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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