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제야 읽었다. 출간한 지 4년 가까이 지난 책을. 역시나 읽기 쉽다. 후쿠오카 여행하는 동안 틈틈이 속도감 있게 쭉쭉 읽었다.
2. 소설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대부분 하루키 소설이 그렇듯이 주인공 쓰쿠루의 '성장'에 관한 테마다. 역시나, 어떤 서사보다는 관념적인 서술에 집중한다. 흡사 헤세의 데미안 같은. 어딘가 결여된 듯한 정서와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혼란. (그리고 그 혼란을 꽤 질서 정연하게 서술하는 아이러니함.) 색채가 없는, 어딘가 비어버린 자아. 마침내 쓰쿠루는 그 모든 것들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3. 나머지 하나는 미스터리다. 학창시절 완벽한 공동체를 이뤘던 또래집단으로부터 일방적인 절교를 통보받은 이유. 그 이유를 듣기 위해 떠나는 여정이 소설의 또 다른 축이다. 사실, 하루키 소설은 늘 이런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불가해한 현상, 포섭되지 않는 진실, 뭐 이런 것들. 근데 또 웃긴 게, 마치 비둘기 모이 주듯이 흩뿌린 떡밥들을 (하루키 소설은 늘!) 제대로 주워담지 않는다. 이 소설 또한 마친가지. 다 읽고나면, 뭐랄까, 허탈감 혹은 배신감 비슷한 것이 씁쓸하게 남는다. (아무리 장르소설이 아니라지만!) 진실의 변두리만 훑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느낌. 마치 도넛 같은 미스터리.
4. 애초에 하루키는 사건의 전모나 진실 같은 것에 관심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읽는 것이 속 편하다.
5. 기차'역'은 달리지 않는다.
6. 그가 쓰고 싶었던 것은 어떤 진실이 아니라 풍경이다. 소설 마지막, 쓰쿠루는 신주쿠 역에서 그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기차역을 뒤로한 채 각자의 행선지를 향해 갈라지는 기차들. 한때는 서로의 전부였지만 이제는 전혀 다른 세계 속에서 전혀 다른 레일 위를 달리고 있는 친구들. 그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마치 기차역처럼 덩그러니 남겨진 쓰쿠루. '갈 곳'이 없던 그는 이제 '가고 싶은 곳'을 조심히 떠올려본다.
7. 하루키는 딱 이 정도 분량까지가 좋다. 이보다 길어지면 상징과 의미망들이 자꾸 뒤섞이고 엉클어진다. 내가 도대체 뭘 읽은 건지 잘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일까. 개인적으로 '해변의 카프카'나 '1Q84'보다는 좋았다. 하루키 소설답게 읽는 드라이빙감 또한 탁월했다. 추천 쾅. 별 네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