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를 특별한 현미경으로 들여다볼 기회가 주어졌다고 상상해 보자.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구조와 패턴이 눈앞에 또렷이 드러나고, 심지어 서구 중심 문명의 앞날까지 어렴풋이 읽힐지도 모른다. 다만 그 시야를 얻는 대가로, 역사 속 ‘공포의 방’을 끝까지 통과해야 한다면—그럼에도 과연 우리는 보고 싶을까?
저자 데릭 젠슨은 작가이자 교사, 환경운동가다. 그는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자행되는 대규모 벌목과 연어 절멸 같은 현장을 오래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수많은 사례를 엮어 우리 문화가 지구와 생명을 어떻게 해쳐 왔는지 차분히 보여 준다. 이 책에서 그는 “혐오”와 “경제”가 사회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얽혀 작동하는지를 추적한다. 질문은 단순하다. 왜 노골적 혐오보다 “이익”의 이름으로 더 많은 잔혹이 벌어지는가? 젠슨은 홀로코스트, 린치, 환경 파괴, 강간, 콜롬비아의 ‘죽음의 분대’, 산업 재해처럼 서로 성격이 다른 사건들을 한데 엮어, 섬뜩할 만큼 설득력 있는 하나의 큰 그림을 그려낸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런 만행은 생명보다 생산을 앞세우는 경제 체제에서 필연적으로 맺히는 열매다.
자본주의에 익숙한 우리는 모든 것에 가격표를 붙이고, 살아 있는 존재까지 상품으로 환원한다. 젠슨의 시각에서 보자면, 우리의 체제는 결국 우리를 파멸로 이끌 탐욕과 세계화를 비호한다. 저자의 주장은 광범위하고 때로 과감해 보일 수 있지만, 그는 미시적 역사와 맥락을 자연스럽게 엮어 오싹할 만큼 그럴듯한 결론으로 이끈다. 젠슨은 진실을 말하려는 사람이다. 그는 열정적인 목소리로, 겉으로는 무관해 보이는 사건들의 연결고리를 집요하게 드러내는 데 탁월하다.
책은 1918년 미국 조지아주 발도스타에서 벌어진 메리 터너 공개 살해 사건을 섬뜩하게 재구성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당시 한 백인 농부가 살해되자 격분한 백인 폭도들은 흑인 남성 11명을 린치했는데, 그중 열 명은 억울한 희생자였다. 메리 터너의 남편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지만, 격앙된 백인 공동체에게 그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메리 터너가 남편의 죽음에 대한 보복, 아니 최소한의 정의를 공개적으로 요구하자—AP 보도에 따르면—발도스타의 “선량한 시민들”은 그녀의 말과 태도를 문제 삼아, 임신 8개월이던 그녀를 휘발유와 흉기, 총탄이 난무한 집단 광란 속에서 잔혹하게 살해했다.
환경 파괴와 산업 재해의 장면에서도 같은 질문이 이어진다. 1984년 인도 보팔의 유니언 카바이드 공장 폭발—메틸 이소시아네이트 40톤이 누출되어 약 8천 명이 사망하고 20만 명이 부상한 사건—을 그는 단순한 “사고”로 읽지 않는다. 독성 화학물질로 이윤을 내는 구조에서 이런 참사는 예견된 결과에 가깝다. 보팔 공장의 안전장치 축소를 짚는 한편, 미국에서 멕시코계 이주 농업 노동자들이 살충제 산업에서 얼마나 손쉽게 “대체 가능한 사람”으로 취급되는지도 보여 준다.
여기서 다시 책임의 문제가 제기된다. 보팔에 독을 만드는 공장을 지을 “권리”는 누가 부여했는가. 무엇이 그 일을 정당화하는가. 젠슨은 우리의 법과 관행 속에, 어떤 종류의 죽음에 대해서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게 만드는 장치가 촘촘히 숨어 있다고 말한다. 생태계 파괴, 유색인에 대한 폭력, 여성과 아동에 대한 범죄는 대개 그렇게 취급되는 반면, 부유층의 재산을 건드리는 일에는 신속히 단죄가 내려진다.
이렇듯 책은 증오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깊이 파고든다. 젠슨의 글이 독자의 충격을 노리거나 죄책감을 부추기려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과거와 현재의 비극적 장면들을 불편할 만큼 자세히 그려 보이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그는 ‘우리’, 곧 평범한 미국인들이 이런 사건들 속에서 어디에 서 있는지 묻는다. 그 답은 첫 장을 여는 프리모 레비의 인용문이 예고한다. “괴물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수는 너무 적어 진정한 위협이 되지 못한다.
더 위험한 것은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은 채 믿고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 평범한 사람들, 곧 기능인들이다.” 젠슨은 대다수가 차마 묻지 않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은 대단히 불편하다. 책을 덮을 즈음이면 우리는, 인도 보팔의 참사로 8,000명이 목숨을 잃은 일, 노예제, 아메리카 원주민의 파괴, 생계를 위해 목숨을 갉아먹는 일자리를 두고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 다투는 현실, 우리 모두의 생명을 떠받치는 생태계를 끊임없이 훼손하는 일 등 온갖 참상을 낳는 탐욕적 기업 문화를 우리가 스스로 떠받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진보’, ‘문명’, ‘개발’이라는 이름의 더러운 전쟁에서, 아무 생각 없이 명령에 따르는 일개 보병으로 자신을 발견한다. 이 책은 우리의 경제·사회 시스템이 중심에 증오를 품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시스템을 굴러가게 하기 위해 혐오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우리가 살아온 문명은 앞으로도 같은 것을 되풀이해 낳을 것이다. 그것이 이 “존재”의 본성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불편한 책을, 어떻게 가능한 한 강한 어조로 추천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젠슨은 서문에서 답한다. “만행을 멈추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낳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이해하고 바꾸어야 한다. 이 책은 무기다. 세계를 인식하고 존재하는 방식에 우리 자신을 묶어 두는 밧줄을 끊어내는 칼이다.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성냥이다.” 우리는 연관성이 없다고 믿는 체하며 시선을 돌릴 수도 있다. 아니면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고, 크게 숨을 들이쉬어, 세계를 바꾸는 일에 착수할 수도 있다. 이 책은 우리가 당연시해 온 믿음과 제도를 다시 보게 만들고, 끝까지 책임을 추적하도록 독자를 밀어붙이는, 손에 쥘 수 있는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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