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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ooster님의 서재
  • 바닷속의 산
  • 레이 네일러
  • 17,820원 (10%990)
  • 2025-07-23
  • : 680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020년 발표작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My Octopus Teacher』는 인간과 문어의 훈훈한 교감을 통해 잊혀진 감성을 회복하는 감동 드라마다. 작품은 인간과 문어가 “서로 정말 다를까?”라는 궁금증으로 시작해 결국 “사실 닮았다!”로 훈훈하게 마무리 짓는다. 하지만 이 소설 『바닷속의 산』은 그 따스한 결말에 시원하게 찬물을 끼얹는다. “닮긴 뭐가 닮아?”라고 반박하면서 독자의 세계관을 통째로 흔들기 때문이다.

 

주인공 하 응우옌 박사는 베트남 깐다오 제도에서 특이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문어 집단을 조사한다. 원래 문어는 혼자 사는 외톨이에 평균 수명도 짧아 지적 발달이 어렵다. 하지만 이곳의 문어들은 복잡한 색채 패턴으로 소통하고 마치 자신만의 SNS 문화를 만들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 함께 하는 인물들 역시 평범한 조력자가 아니라 하 박사의 심리를 흔드는 거울들이다. 완벽한 기억력을 가진 안드로이드 에브림은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인간을 비추고, 말수가 극히 적은 경비원 알탄체체그는 불편한 침묵 속에 갇힌 현대인의 초상을 그려낸다. 하 박사 자신도 결국 타인과의 단절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깨닫는다.

 

작가는 여기에 병렬 서사 두 개를 끼워 넣어 이야기를 더 쫄깃하게 만든다. 러시아 해커 러스템과 AI가 지배하는 어선에 잡혀간 일본 청년 에이코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인간이 인간을 기계처럼 취급하는 씁쓸한 현실을 비추며, 우리가 타자와의 관계를 고민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고 슬쩍 꼬집는다. 다만 소설이 철학적 대화를 과하게 늘어놓아 종종 설교 같다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그 빈자리는 박진감 넘치는 묘사와 긴장감 있는 전개가 충분히 메워준다. 특히 저자는 해양 생태 전문가답게 문어를 ‘귀여운 바다 친구’가 아니라, 우리와 완전히 다른 지성을 가진 진짜 타자로 그려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작품은 결국 인간 중심적 사고에 유쾌한 반기를 드는 소설이다. 인간이 인간과의 관계마저 어려워 반(半)인격 AI를 선호하는 세상에서, 또 다른 지성체와의 연결을 갈망하는 우리의 이상한 욕망을 지적한다. 문어들이 던지는 명확한 메시지 “닝겐들, 우리를 방해하지 마!”는 독자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으로 돌아온다. “우리가 정말 연결되어 있기는 해?”

 

소설은 최신작답게 기업 스파이물, 군사물, AI 스릴러 장치를 두루 활용하지만, 핵심은 결국 “인간이 정말 세상의 중심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주인공들이 깨닫는 것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두 가지 진실이다. 첫째, 개인은 절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고 둘째, 인류도 자연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진 섬이 아니라는 점이다. 작품의 무대가 ‘섬’이라는 점은 이 메시지와 절묘하게 어울린다. 작중 섬은 결국 세계의 모든 사건과 얽히고설킨 운명을 보여주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발견되는 언어를 가진 문어 사회는 인간학의 기준으로도 분명 사회다. 하지만 이들의 지각이나 개념 체계는 인간과 너무 다르다. 따라서 소설의 중심은 문어의 언어 해독이 아니라 탐욕·오만·자기기만 등 우리의 윤리적 문제를 깊이 파고드는 데 있다. 환경 파괴나 인권 침해 문제도 특정 개인이나 기업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작가는 문제의 원인을 전 인류의 무관심과 탐욕으로 넓히고, 책임 역시 한두 영웅이 아니라 모두의 몫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개성을 지우지도 않는다. 문어의 신경망을 비유 삼아 각 개인이 자신의 자리에서 능동적으로 행동할 때 세상이 변화한다고 귀띔한다.

 

흥미롭게도 세 명의 주인공은 서로 만나지도 않으면서 협력해 문어 사회를 보호한다. 각자 자신이 세상의 일부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소설이 불교적 세계관을 빌려 '올바른 관점(정견)'과 '무관심'을 대비시키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진짜 적은 악의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난 어차피 아무것도 못해”라는 체념을 가장 경계하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독자의 귀를 사정없이 잡아당긴다.

 

결과적으로 공상과학 소설이라 하면 흔히 생각하듯 외계 지성체와 만나는 단순함을 넘어, 이 소설은 독자를 능글맞게 꼬드겨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문제작이다. 등장인물들이 자꾸만 진지한 철학적 대화로 빠지지만, 놀랍게도 재미는 끝까지 유지된다. 그래서 Scientific 대신 Speculative Fiction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다는 평을 듣는다. 결국 이 소설은 독자에게 행복한 결말을 약속하면서도 꾸준한 책임과 관심이 없으면 언제든 다시 불행해질 수 있다고 짓궂게 경고한다. 다 읽고 나면 웃으며 책을 덮을 수는 있어도, 인류의 연결성에 관한 질문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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