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의 원서 제목 Incognito는 '익명으로', '가명으로', '신분을 숨기고'라는 뜻의 영어 단어로 라틴어 incognitus(알려지지 않은, 미지의)에서 유래했다. 인간의 의식이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보다 훨씬 깊고 복잡한 무의식적 과정에 의해 형성된다는 주제를 탐구하며, 우리의 사고와 행동이 의식적으로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제목을 사용했다. 저자는 시각적 착시와 기묘한 사례 연구를 능숙하게 엮어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는 동시에 도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는 왜 특정한 행동을 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무의식의 심층을 탐구한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신경과학 부교수인 저자는 대중 과학 서적을 집필하는 인기 학자다. 이 책에서는 뇌의 작동 방식을 흥미롭게 파헤칠 뿐만 아니라, 도덕성, 심리학, 그리고 뇌 연구의 역사까지 아우르며 폭넓은 내용을 다루고 있어 책장을 넘길수록 이야기 삼매경에 자연스럽게 빠져든다. 그는 특유의 친숙한 태도를 유지하는 한편 과학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지 않으면서 복잡한 개념을 쉽게 소화할 수 있도록 풀어낸다. 책에 삽입된 시각적 착시와 도표는 독자의 흥미를 끌고, 각 장에서 다루는 원리를 효과적으로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의식’이다. 일반적으로 의식은 난해하고 신비로운 개념으로 여겨지지만, 이를 강조하기보다 뇌의 다른 프로세스에 주목하며 의식의 중요성을 새롭게 조명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여러 사례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인 것은 1966년 텍사스 대학교에서 총기로 13명을 살해한 찰스 휘트먼의 이야기다. 이 희대의 사건 내용을 읽다 보면 그 무차별한 잔혹함에 누구나 본능적으로 혐오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는 휘트먼을 단순히 악인으로 치부하기보다는 뇌 부검 결과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휘트먼의 편도체를 압박하고 있던 거대한 종양이 극단적인 분노 폭발을 일으킨 원인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비난의 대상이 범인이어야 할지 아니면 종양이어야 할지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만약 종양이 없었다면 13명의 목숨이 온전했을까? 그는 이처럼 윤리적 딜레마를 제시하며 교도소 시스템의 본질을 정면으로 다룬다. 수감자의 행동을 수정할 가능성을 고려하여 진정한 정의와 재활이 왜 필요한지 설명하며, 독자에게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안겨준다.
이 책의 흥미로운 핵심은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이 사실상 ‘착각’이라는 점에 있다. 우리의 뇌는 현실을 하나의 연속적인 흐름으로 경험하도록 해주지만 사실은 단순한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것이 단순히 눈을 통한 수동적 정보 입력이 아니라 뇌가 능동적으로 구성한 이미지라는 점을 수많은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예컨대 시속 145km로 날아오는 공을 치는 타자나 멀리서 떨어지는 공을 정확하게 잡아내는 외야수는 이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뇌가 경험을 바탕으로 비행 궤도를 예측하고 복잡한 물리 방정식을 무의식적으로 계산해 움직인다.
저자는 다양한 착시 효과와 사례 연구를 활용해 이러한 뇌의 작용을 증명한다. 대표적으로 유명한 '얼굴-꽃병 착시'를 비롯한 여러 시각적 착시 실험을 소개하며, 감각 대체(sensory substitution) 기술을 통해 뇌의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준다. 시각 장애인은 비디오 카메라에서 받은 신호를 등을 비롯한 신체의 다른 부위나 심지어 혀를 통해 감지하면서 시각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뇌가 특정 감각 기관에 종속되지 않으며, 다양한 입력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실을 재구성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뇌가 해석한 정보를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그는 또한 단순한 분석에서 나아가, 이러한 신경과학적 연구가 실질적인 사회적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텍사스의 베일러 의과대학에서 신경과학 및 법률 연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그는 뇌 손상이 인간의 행동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연구한다. 범죄 행동을 포함한 인간의 비행이 뇌 화학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보고 현재의 법체계가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도덕적 책임을 묻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범죄자의 행동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이런 논지를 접한 독자들은 그가 인간의 자유의지와 도덕적 선택을 유전자, 호르몬, 신경 반응 같은 생물학적 요인으로 환원시키는 환원주의자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환원주의자가 아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우화적 접근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칼라하리 사막의 한 부족민이 우연히 라디오를 발견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다이얼을 돌려 소리와 음악을 끌어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원래 녹음된 후 전파를 통해 전달된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경 회로와 신호 전달에 대해 아무리 연구해도 인간 경험의 본질을 단순한 생물학적 과정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인체는 분자와 단백질, 뉴런에 묶여 있다"고 단언하면서도 인간을 단순히 이러한 요소들의 집합으로만 설명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결국, 그의 연구는 과학과 인문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고전적인 도덕 우화가 복잡한 신경과학 연구보다 더 깊은 깨달음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문화와 대중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이 책이 다소 낯설지도 모른다. 과학적 배경지식보다는 영화배우 멜 깁슨을 알고 있거나 영화 『트루먼 쇼』를 본 경험이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일례로 야구 경기에서 타자의 무의식이 통제권을 가질 때 홈런 확률이 높아지는 반면, 의식적으로 타격을 조절하려 들면 오히려 방해되는 경우를 설명한다. 이런 비유 덕분에 독자는 개념을 쉽게 이해하고 정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따금 일부러 유머를 의식한 농담이나 부차적인 내용 때문에 과학적 논점이 흐려지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신경과학의 세계를 깊이 탐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안내자다. 저자는 야심 차게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기존의 질문보다 더 많은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때때로 책의 흐름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독자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하고 배울 기회를 얻는다. 책을 읽은 다음 누군가는 매일 스도쿠를 풀며 인지 예비 능력을 키우려 들 수도 있겠고, 또 다른 누군가는 책에서 소개한 착시 현상을 활용해 자신의 시각적 수용체를 실험해 볼 수도 있겠다. 어떤 방식이든, 이 책은 독자에게 값진 통찰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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