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마법 같은 시대라 불릴 정도로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원하는 물건을 바로 집 앞까지 받아볼 수 있는 편리함을 제공한다. 토스터에서 고양이 사료에 이르기까지 클릭 몇 번으로 주문하면 하루 이틀 만에 도착한다. 그러나 소비자 대부분은 이 과정의 단순함과 편리함의 혜택을 누리기만 할 뿐, 그 이면에 존재하는 복잡한 공급망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
<뉴욕 타임스> 기자 피터 굿먼은 이 책에서 세계 경제의 동맥이라 할 수 있는 현대 공급망이 가진 문제점들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는 이 편리함이 마법이 아니라 착취와 구조적 취약성 위에 세워진 환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이 택배 상자를 바라볼 때 그 상자가 소비자에게 도달하기까지 수많은 노동자의 눈에 띄지 않는 노력이 담겼다는 사실을 떠올리길 바란다고 말한다. 또한, 소비자들이 무의식적으로 누리는 편리함 뒤에 감춰진 복잡한 시스템을 이해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관심과 노력을 촉구한다.
이 책은 세 개의 주요 부분으로 나뉘었으며 각 부분을 통해 한 개의 사례 상품, 즉 Glo라는 야광 목욕 장난감의 생산과 배송 과정을 따라가며 글로벌 공급망의 복잡성과 취약성을 해부한다. Glo가 중국 공장에서 미국 소비자들의 손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을 상세히 서술하며,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시스템적 문제들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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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부분에서는 미국 기업들이 왜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에 제조를 외주화하게 되었는지 배경을 설명한다. 저자는 ‘경제적 경쟁’이라는 수사(修辭)를 비판하며, 미국 중산층의 임금보다 기업의 이윤을 우선시한 내부적 요인이 외주제작을 가속했다고 주장한다. ‘범죄가 있었다면, 그것은 내부자 소행이었다’라는 표현은 이 문제의 핵심을 간명하게 짚어낸다. 그는 투자자 계급의 단기적 이익 추구가 노동 착취를 심화시키고 공급망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이와 함께 적기 생산(Just In Time) 생산방식의 폐해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토요다가 창시하여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효율성을 극대화하며 비용을 절감하려는 이 모델은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수익성을 높였으나 팬데믹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공급망의 취약성을 노출시켰다. 이 방식은 ‘중독성 강한 효율성의 형태였다’며, 노동자들의 시간과 복지를 희생시켜 이룬 효율성의 대가를 비판적으로 서술한다. 특히, 이 모델이 어떻게 노동자들의 안전과 인간다운 삶을 희생하며 작동했는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저자의 주장은 팬데믹 이전의 세계화 역사와 맞닿아 있다. 냉전 이후 세계는 중국을 제조 허브로 하는 전 지구적 생산 체계를 구축했으며 이는 저렴한 상품과 신속한 배송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팬데믹은 이러한 시스템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조차 공급망의 혼란이 직접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났다. 세계화가 가져온 이점과 부작용을 동시에 살펴보며 소비자와 정책 결정자 모두가 새로운 시스템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는 또한 세계화가 월스트리트와 같은 금융 엘리트의 이익을 중심으로 운영되어왔음을 지적한다. 세계화가 노동자와 소비자들에게 공평하게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현재의 시스템이 대규모 충격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경고한다. 팬데믹은 이러한 문제를 가시화했으며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래에 또 다른 충격에 대비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세계화의 재구성이 단순히 필요한 것임을 넘어 세계 경제의 장기적 안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책의 두 번째 부분은 상품 운송 과정에서의 문제들을 조명한다. 여기서는 특히 해운업 종사자, 항만 노동자, 그리고 트럭 운전사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팬데믹 기간 동안 겪었던 고충이 두드러진다. 선원들이 항구 앞 바다에서 수개월간 배에서 내려오지 못했던 사례를 통해 고립과 비인간적인 조건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묘사한다. 또한, 항만 노동자와 트럭 운전사들이 감당해야 했던 불안정한 고용과 낮은 임금 문제를 강조하며, 이러한 노동자들이 공급망의 근간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착취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노동조합에 대한 논의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국제 항만 및 창고 노동조합(ILWU)과 같은 조직이 공정한 임금과 복지를 확보한 사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한편, 단기 계약에 의존하는 트럭 운전사와 철도 노동자들이 직면한 구조적 실패를 비판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효율성을 명목으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시스템적 문제를 꼬집는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글로벌 무역의 변화하는 동향을 다룬다. 베트남과 멕시코로 제조 허브를 이동시키려는 노력에 대해 논하면서, 이는 글로벌화의 종말이 아니라 허브의 재구성이며 여전히 자급자족에서 먼 현실임을 강조한다. "세계화는 끝나지 않는다. 국제 무역의 장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하며, 문제의 근본은 노동 착취와 기업 집중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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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노동자 권리 보호와 규제 강화, 이익 중심적 의사결정에서의 탈피를 요구한다. 그는 공급망 혼란의 궁극적 해결책은 경쟁을 촉진하고 노동자들이 공정한 몫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제의 재개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공급망 안정성을 위한 방안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의 논의 중 특히 인상 깊은 점은 노동자들의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을 심도 있게 다룬 부분이다. 그는 해운업 종사자와 트럭 운전사들이 가정에서 겪는 소외와 단절을 생생히 묘사하며, 효율성 중심의 시스템이 노동자들의 개인적 삶에까지 어떤 대가를 요구하는지를 분명히 드러낸다. 이러한 논의는 공급망 문제를 단순히 경제적 관점이 아니라 인간적 관점에서 재고할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책은 몇 가지 한계를 지닌다. 저자는 근본적 문제를 철저히 분석하고 있으나 공급망의 탈세계화나 지역화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근거리 생산’, ‘리쇼어링’ 등의 대안들을 언급하지만, 그 실효성과 구체적 실행 방안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독자들에게 문제의식을 환기시키는 데는 성공적이었으나 실제적 해결책에 대한 갈증을 남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팬데믹을 계기로 드러난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과 노동 착취 문제를 깊이 있게 탐구한 수작이다. 복잡한 문제를 간결하고 설득력 있게 풀어내며 독자들에게 공급망의 본질을 통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구체적 대안 제시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제와 노동 문제, 물류와 무역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줄 가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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