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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adden님의 서재
  • 희망 지능
  • 수밋 폴초우드리
  • 19,800원 (10%↓1,100)
  • 2026-10-14
  • : 770
세상은 예측할 수 없고 사람 역시 그렇다. 금융 쪽에서는 비관론자가 명성을 얻지만 낙관론자가 부를 쌓는다는 말이 있다. 비관은 똑똑해 보이고 관심을 끌지만, 실제로 장기적으로 부를 만드는 쪽은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하고 움직이는 쪽이라는 뜻에 가깝다. 인간은 무리를 지어 다니며 서로의 두려움을 증폭시키는데, 금융시장에서 그 관성을 따르면 결국 같은 방향으로 몰려가 멸망의 늪에 빠지기 쉽다. 본성과 습관에서 벗어나려면 감각과 인지의 착각을 먼저 알아채야 한다.

폴초우드리는 1부에서 바로 그 오류 관리를 다룬다. 인간의 감각적·인지적 착각이 어떻게 비관을 쉽게 만들고 낙관을 어렵게 하는지, 그리고 그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과학과 심리학으로 풀어낸다. 2부에서는 공포 관리로 넘어가 그리스 신화를 다시 읽는다. 헤시오도스가 말한 것은 상자가 아니라 식량을 저장하는 커다란 항아리 pithos였다. 번역 과정에서 몇 가지 디테일이 생략되면서 희망의 의미가 단순해졌다. 희망으로 번역된 elpis는 긍정만을 뜻하지 않았고, 고대 그리스에서는 예상이나 기대로도 쓰였다. 그렇게 보면 판도라가 남긴 것은 막연한 긍정 전망이 아니라, 눈앞의 사건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리지 않고 미래를 예상하는 능력이었다. 그 계기를 제공한 프로메테우스의 이름이 선견지명을 뜻한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라이프니츠가 말한 모든 가능한 세계 중 최선의 세계는 신이 여러 가능성 가운데 최적의 하나를 선택했다는 뜻이었다. 이 표현은 이후 낙관주의자의 정의가 되었지만, 볼테르의 캉디드가 풍자하면서 모든 증거에 반하는 어리석은 긍정으로 의미가 왜곡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그 문장을 들으면 라이프니츠의 철학보다 캉디드의 풍자를 떠올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다중우주나 대체 시간선 같은 SF적 상상은 이 오래된 질문을 다시 불러온다. 닥터 스트레인지를 단순한 만화로만 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낙관주의는 우리가 세상에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보여 주는 세계관의 일부다. 비관이나 현실주의와 같은 스펙트럼에 놓여 있다.


3부는 미래를 말하고 있다. 현실에 존재하는 기술과 그 쓰임을 더 깊이 이해할수록 우리가 그리는 미래는 설득력을 얻는다. 픽션은 베이지안 분석처럼 새로운 정보를 만날 때마다 수정될 수 있다. AI가 인류를 파괴하거나 해방시킬 것이라는 이분법, 재앙과 풍요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다. 모든 가능한 세계 중 최선의 세계, 모든 가능한 미래 중 가장 밝은 미래는 우리 손안에 있다. 필요한 것은 그 미래를 상상하고 믿고 만들어 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낙관이 성격이 아니라 훈련 가능한 지능에 가깝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 작가가 전하고 싶은 것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기대를 가지고 상상하고 행동하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구체적 근거다. 독자는 비관이 현실적이라는 착각을 깨고, 자신의 예상과 상상, 행동을 조금씩 조정할 수 있는 틀을 얻는다. 불확실한 시대에 무리의 공포에 휩쓸리지 않고 한 걸음 움직이는 이유를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 이 책이 나온 시기가 적절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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