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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adden님의 서재
  • 양자 문명
  • 한정훈
  • 19,800원 (10%1,100)
  • 2026-08-21
  • : 2,090
양자의 역사에서 도구의 문명으로,

책을 펼치기까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휴가 기간 바쁜 일상에서 빠져나와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나왔을 때, 몸은 천근만근이었고 쏟아지는 피로감에 침대에 등을 대자마자 잠들기 일쑤였다.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보낸 일주일 끝에 마침내 펼쳐든 한정훈의 《양자 문명》은, 단순한 과학 교양서를 넘어 양자의 역사를 통해 인류 문명의 뼈대를 다시 읽어내게 만드는 정교한 역사책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문명을 움직여온 동력이 증기에서 전기로, 그리고 전기에서 양자로 이어져 온 도구의 역사를 짚어낸다. 인류의 삶은 탄소 문명에서 전기 문명으로, 그리고 마침내 세 번째 양자 문명의 입구로 진입하고 있다. 첫 번째 물결이 원자핵의 에너지를 다루는 시대였고, 두 번째 물결이 반도체와 레이저로 정보혁명을 일으킨 시대였다면, 지금 우리가 마주한 세 번째 물결은 중첩과 얽힘이라는 자연의 확률 그 자체를 연산과 통신의 원리로 삼으려는 시도다. 도구가 사상과 제도를 앞질러 세상을 바꾸는 문명사의 법칙이 다시 한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책이 보여주는 양자 문명의 세 번째 물결이 ASI(인공초지능, Artificial Superintelligence)와 결합하는 미래를 상상할 때, 가슴 한구석에는 덜컥 두려움이 밀려온다. ASI는 인간의 지능을 모든 영역에서 압도적으로 초월하는 인공지능을 뜻한다. 기존 고전 연산의 한계에 부딪혔던 복잡성을 해결하기 위해 호출된 양자컴퓨팅이라는 새로운 연산 엔진이 무한에 가까운 확률적 연산 속도를 제공하고, 여기에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하는 ASI가 탑재된다면 그것이 가져올 변화의 파도는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설지도 모른다. 확실성을 포기하는 대신 여러 가능성을 한꺼번에 다루는 양자의 엔진과,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지 모르는 초지능의 결합은 문명의 위대한 도약이자 동시에 거대한 불확실성의 공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정훈의 《양자 문명》이 주는 가장 큰 수확은 신비주의나 막연한 공포를 걷어내고, 손안의 전화기와 밤을 밝히는 전등 속에 이미 깊게 뿌리내린 문명의 언어를 냉철하게 읽어내는 문법을 선사한다는 점이다. 스마트폰 한 대 안에도 유리와 자석의 역사, 벨 연구소의 트랜지스터, 레이저와 원자시계가 겹쳐 있음을 깨닫게 되면, 양자라는 단어가 단순한 공포의 수사나 투자 테마로 쓰일 때 진짜와 과장을 가늠할 수 있는 단단한 혜안이 생긴다.

침대 위에서 겨우 첫 장을 넘겼던 그 일주일의 주저함이 무색하게, 책은 인류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윤곽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ASI와 양자 문명이 엮어낼 미래가 비록 두렵고 불확실할지라도, 확실하지 않기에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는 법이다. 이 책은 막연한 미래 앞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우리가 이미 살고 있는 문명을 읽어내는 가장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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