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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희는 주사는 맞지 않고 약만 먹는다. 집에서 쉬면서 우메 반 남자 반장, 미나모도 얼굴을 마음속으로 그리고 또 그린다. 키는 작아 종희 귓불 정도에 미치지만 반에서 제일 이쁜 아이다. 종희가 학교에 안 가는 사이에 다른 계집아이가 미나모도 마음을 빼앗아갈지 모른다. (-29-)
학교에는 민청이라는 것이 생겨 매일 교양학습을 하고 자기비판을 한다. 농구부는 운동을 핑계 삼아 민청 모임에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 종희는 그 점이 너무 좋아 더욱 농구에 매달린다. 라이트 포드를 서기도 하고 레프트 포드를 서기도 한다. (-47-)
순덕이 혼자서 생선을 가지러 30리 길을 걸어간다. 이틀 후에 순덕이 고등어가 몇 마리 든 대야를 머리에 이고 피난 집 마당을 들어선다. 고등어 이고 오면서 얼마나 뙤약볕에 탔던지 원래 하얀 순덕이 얼굴이 홍시같이 새빨갛다. 주인 아줌마에게 한 마리 주고, 고등어를 아껴가며 구워 먹고 지져 먹는다. 고등어가 이렇게 꿀맛일 줄이야. (-77-)
"이노무 간나새끼 탈영했어. 부르주아 반동새끼."
장교가 총부리를 종희 어머니 명치에 갖다대고 다그친다.
"이놈 어디다 숨겼어? 응? 친척 간이라는 거 다 알아."
"나는 모른다. 아들을 낳아도 아들 속을 모르는 법,먼 친척 놈 속까지 어떻게 알겠는가. 제가 좋은 길로 간 것을 난들 어찌하란 말인가." (-84-)
종희가 손을 배려고 하면 할수록 사장의 악력은 더욱 세어진다. 종희가 온힘을 다해 사장 손을 부리친다. 이번에는 사장이 아예 종희 어깨를 끌어안으며 입술을 뺏으려고 한다. 종희가 농구 포워드 실력으로 사장 옆구리를 밀어버린다. 사장은 의자 밖으로 나가떨어진다. (-129-)
시체 썩는 냄새가 몇 리 밖까지 퍼져나갔다. 나무를 하러 산등성이에 올라가 있어도 그 지독한 냄새는 끈질기게 따라왔다. 포로들은 까마귀 떼가 빨리 그 시체를 먹어 치웠으면 하고 바랐다. 아예 뼈까지 와작와작 씹어 먹어 흔적도 남기지 않았으면 하였다. (-172-)
소설 『종희의 아름다운 시절』은 영화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이 개봉하고, 2년 뒤 2000년에 쓰여졌다. 생전 , 작가의 주인집에 살았던 이종희의 육성 녹음 테이프가 있어서 소설 『종희의 아름다운 시절』이 탄생될 수 있었다,. 1932년 3월 23일 생, 원산 와우리 54번지를 본적으로 하고 있는 이산가족이자 부르주아 반동새끼 였던 이종희의 삶이, 한 편의 소설 『종희의 아름다운 시절』이 되었다.
이 소설을 이북 원산에 살았던 종희가 남한과 북한이 서로 전쟁의 총부리를 겨누던 당시, 부르주아 계층에 속했던 종희 가족이 이남으로 피난가면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알게 해준다. 대한민국의 비극 중 하나인 동족 간에 무자비하게 죽어야 했던 그 야생의 삶을 들여다 보고 있다. 원산에서, 중하교에 다니면서, 농구 선수로서,종희는 피난민이 되어서, 부산 영주동에 판자촌을 형성하며 정착하였다,
작가 조성기, 조누가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서, 이제 구순이 넘은 이들의 삶을 아름답게 채색하고 있었다. 가난하였지만, 서로 위로 할 줄 알았고, 지금보다 풍족하지 않았으나, 고등어 하나 먹기 위해서, 30리 길을 걸어야 햇던 그 시절의 고단한 삶을 통해,21세기 지금 우리가 얼마나 풍족하게 살고 있는지 알려준다.대한민국의 극복하기 힘든 세대차이는 전쟁을 겸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의 차이를 느끼게 한다. 대한민국 특유의 밥정 문화는 동족 간의 비극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무리 미워도 ,밥은 챙겨주는 배려 문화가 있다.
리쇼리상으로 창시개명을 했고, 남남북녀가 아닌, 남남북첩이 되어야 했던 1950년 전후에 우리가 살아왔던 고난은 북쪽에서 내려왔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사회적 핍박에서 자유롭지 않았다..1930년에 태어나 학교를 다니고 공부하는 것이 사치였던 내 기억 속의 외할머니의 삶이 종희의 삶과 비교가 되었다. 그 당시 결혼은 밥그릇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종희처럼, 중학교를 나와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거의 불가능했다. 남녀칠세 부동석이 상식이었던 그 시대에, 좁은 공간에 이불하아, 한 방에 잠을 잤으며,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종희는 누구보다 잘 살았음에도,여성으로서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자신의 생에 대해서, 열 개의 육성 녹음 테이프들이 있었기에, 자신의 집에 세들어 살았던 작가에게 롱테이크 기법으로 소설이 완성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