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정관정요』(政觀政要)는 사마광(司馬光)의『자치통감』(資治通鑑),『대학연의』(大學衍義) 등과 함께 ‘제왕학(帝王學)의 교과서’라 일컬어져 왔다. 이들 ‘제왕학의 교과서’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바로 왕도(王道)이다. 왕도란 무엇인가? 유학자들은 왕을 ‘우주 만물을 덕을 매개로 관통하는 존재’ (三 + ㅣ = 王)으로 정의를 내렸고, 이러한 개념은 대대로 이어졌다. 왕도정치(王道政治)의 핵심은 바로 덕치(德治)에 있다. 덕으로 다스릴 때만이 진정한 왕도를 이룰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정관정요』도 이런 흐름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이 책은『정관정요』를 바탕으로 하여 통치술의 키워드 10가지와 이러한 키워드에 들어맞는 10명의 황제들의 이야기를 관련 사료를 바탕으로 풀어가고 있다. 엮은이의 해박한 사료 풀이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들, 유려한 번역들이 잘 어우러졌다.
이 책은 주로 창업한 황제들과 건국 초기 수성이 돋보였던 황제들을 뽑고 있다. 한번씩 이름은 들어보았을 중국사의 걸출한 황제들이다. 물론 그 중심에 당 태종(唐太宗, 이세민)이 있다. 이 책에서 매우 눈에 띄는 것은 측천무후(則天武后, 측천황제, 무미랑)의 장점을 잘 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측천무후는 일대의 여황이라는 이름만으로 심각한 매도를 당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흔히 정관(政觀)의 치, 개원(開元)의 치라 일컬어지는 당 태종, 당 현종(唐玄宗, 이융기) 시대 또한 태평한 시대, 진정한 왕도가 이뤄진 시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당 태종은 자신의 친형을 죽이고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왕위를 빼앗다시피 하여 정통성이 결여되었다.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서 강력한 통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고구려 원정을 실패하였다. 당 현종은 또 어떤가? 초기에는 정치를 잘했을지 모르지만, 양귀비를 이용했고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 중국이 큰 혼란에 빠지게 한 주범이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무측천은 정치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들에게 하등 밀릴 것이 없다. 무측천의 부각은 그런 점에서 돋보인다.
그런데 뭔가 아쉽다. 하나, 장점이 지나치게 부각되었다. 이들의 정치에는 상당히 많은 실책들이 있었다. 앞에서 본 당 태종과 당 현종의 경우도 그러하거니와 명 태조(明太祖, 주원장) 또한 변덕이 심한 왕이었다. 그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명나라의 실록이 부실한 이유는 사관이 바른 말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인데, 그렇게 황제권을 강화시키고 독재를 일삼았던 주범이 바로 명 태조이다. 강희제(康熙帝, 애신각라 현엽)도 60년 동안 대단한 정치를 펼쳤지만, 옹정제(雍正帝, 윤정)를 앉히는 과정에서 심각한 권력 투쟁을 일으키게 했다. 건륭제(健隆帝, 홍력)를 기점으로 청은 뚜렷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렇게 본다면 과연 이 책에서 말하는 왕도와 딱 맞아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다. 물론 단점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너무 적다.
둘째, 황제들의 사례가 주로 초기에 집중되어 있다. 건국은 태어난 아이와 같다. 어쩌면 가장 건강한 상태일지도 모르나 노년과 더불어 가장 나약한 상태이기도 하다. 또한 미숙하다. 물론 이들 황제들의 정치가 못났다는 것이 아니다. 분명 이들의 정치는 나라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과연 이 시기만이 절정의 시기인가에 관해서는 나는 적지 않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물 선정에 있어서 왕도보다는 패도에 가까운 정치를 했던 이들을 뽑았던 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여겨진다.
도대체 진정한 왕도가 무엇이길래 내가 이런 말을 하는가? 이 책이 그 답을 잘 주고 있다. 군주는 관대하고 예의 바르며 덕이 있어야 한다. 항상 공부와 정사를 힘쓰고 백성을 어루만져야 한다. 인재를 제대로 등용하고, 인사를 잘 해야 하며, 목숨을 걸고 직언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충효를 앞장서서 실천하고 언제나 중용의 길을 걸어야 한다. 항상 경계하고 절제하며, 문무를 겸전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잘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이 인물 선정에서 문제를 범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하다. 과연 이 책에서 든 황제들이 왕도정치의 진정한 면을 대부분 충족시키는 왕들이었는지에 대해서 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진정한 왕도의 개념이 위와 같다면 그에 가장 잘 들어맞는 왕은 두말할 것도 없이 중국 송나라 인종(仁宗)과 우리의 세종대왕(世宗大王)이다.
송나라 인종은 중국사에서 문치의 꽃을 가장 활짝 피웠던 송을 안정시켰다. 오히려 이 책에서 든 송 태조(宋太祖, 조광윤)보다 그가 왕도에 가까우며, 더 중요하다. 더구나 그 시대에는 바로 중국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인물인 포청천(包靑天, 포증)이 활약했던 시대였다. 포청천 한 사람만 봐도 송 인종의 시대가 진정한 치세였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세종대왕은 어떤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통치술의 10가지 키워드에서 하나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는 개인과 가정의 불행을 놀라운 정치로 극복해낸다. 그리고 우리의 민족문화를 가장 활짝 꽃피웠다. 조선이 500년을 넘게 갈 수 있었던 기반을 닦은 세종대왕을 보면 무릇 진정한 왕도, 태평성대라는 것이 과연 이런 것이라는 것을 느낀다.
이런 여러 한계에도 이 책은 진정한 왕도의 길을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다. 특히 오늘날의 정치를 잘 살펴본다면 이 책에서 제시한 길들이 얼마나 유용한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지금의 정치는 한 마디로 블랙 코미디이다.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덜렁 미국에 가서 굴욕적인 쇠고기 협상을 펼치고 농민들을 죽이려 하고 있다. 비록 농사와 목축업에 종사하는 사람 수가 줄어간다 해도 농사, 목축업은 여전히 국가의 근간이다. 그것을 헌신짝처럼 내팽겨쳐버린 대통령의 행동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보이다. 온 나라는 영어에 완전히 미쳐 있다. 국제화 시대 영어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우리말을 대신할 수 없다. 정부의 교육자율화 정책 때문에 애꿎은 학생들만 괴롭게 되었다.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으며, 서민 경제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도, 정치인들은 싸움에 정신이 없고, 매일 돌발영상의 전문 모델로 활약하고 있다. 아무리 사회가 민주화되고 경제가 나아졌다지만 어떻게 정치는 이렇게 퇴보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역사는 가르친다. 언제나 정의가 승리한다고. 비록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진실은 결코 죽지 않는다. 나는 그 역사의 소리 없는 가르침, 외침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기에 우리는 결코 꿈과 희망을 버릴 수 없다. 정치. 언젠가는 그 이름처럼 바른 다스림이 이뤄질 것이라 나는 굳게 믿는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