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도서 : 이덕일,『사도세자의 고백』, 휴머니스트, 2007년. (새로운 판)
역사는 사람을, 사람은 역사를 만든다.
역사는 사람을 만든다. 그리고 사람은 역사를 만든다. 사람과 그 사람이 만드는 역사. 역사는 사람이 있어야 빛을 발하며, 그 빛 속에서 사람은 그 빛의 따스함을 맛본다. 우리가 역사를 올바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이 둘을 균형과 조화라는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 아니 이 둘만 가지고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비단 역사만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새가 한 날개로만 날 수 없는 것은 틀림없지만, 새는 날개만을 지닌 것이 아니라 몸통과 머리, 다리가 있기 때문에 완전히 정확한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는 흔히 우리 역사를 바라보면서 의외로 상식에서 벗어나 바라볼 때가 적지 않다. 이는 우리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는 데 매우 큰 장애가 된다. 한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다고 그 역사의 물줄기가 쉽게 바뀐다면 그것은 우리 역사의 저력을 너무 무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은 그렇게 허약한 나라가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는 식민주의사관에 사로잡혀, 그리고 해방 이후 위정자들에 의해 알게 모르게 이런 행동을 해왔다.
우리는 흔히 조선이라는 나라를 사대주의와 당쟁 때문에 망하고 일제 식민지의 길로 들어섰다고 혹평했다. 그러나 조선이 중국에 끊임없이 굽신거렸다는 것은 또 다른 이름의 오리엔탈리즘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당쟁은 어느 나라에나 다 있었으며, 다른 나라나 왕조의 사례를 볼 때 오히려 조선은 그 강도가 약했다. 오히려 의견이 다른데 토론하고 다투는 것이 없다는 것이 더 말이 안 되지 않을까.
영조와 정조가 실시한 탕평 정책이라는 것이 붕당 정치의 폐단을 고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탕평 정책이라는 것이 여러 당파의 사람들을 골고루 등용하여 국정 운영의 균형을 꾀하고 왕권과 나라를 안정시킨다는 정책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붕당 정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탕평 정책이라는 것은 결국 붕당 정치를 없앤다는 것이 아니라 붕당 정치의 좋은 모습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다만 영조와 정조는 그 과정에서 왕을 요순과 같은 성인의 위치로 끌어올려 왕권을 강화, 안정시키고 국정 운영의 중심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외척을 끌어들였다. 그런데 그것은 근본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왕이 확고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면 몰라도, 왕이 허약하면 외척에 의한 권력 장악이 이뤄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조의 죽은지 5년 후, 정순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거둔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승하하고 노론 벽파가 김조순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에 의해 정계에서 쫓겨난 이후에 나타났다. 정조는 순조의 사위였던 김조순에게 순조를 부탁하면서 그 자신 스스로 세도정치의 단초를 열어놓았던 것이다.
이렇게 정조의 죽음이라든지 사도세자의 죽음은 당시의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아울러 기록의 철저한 분석과 엄격한 사료 비판은 두말할 나위 없는 기본 조건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우리는 이덕일씨를 넘어서서 냉정하게 우리의 조선 후기를 바라봐야 한다.
역사적 진실을 도외시한 꿈같은 이야기
이덕일씨는 최근 대중 역사서 바람의 중심에 있다. 특히 드라마「이산」의 방영으로 그의 저술이 또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출판된지 어느덧 10년 된『사도세자의 고백』은 많은 이들에게 읽혀져 이 시대를 새롭게 바라보는 데, 또한 우리 역사를 대중화시키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 점에서 유의할 것이 있다. 그가 한 역할은 분명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일지 모르나 그것은 역할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점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견해라는 것이 타당하고 의미있는 것이 있는 반면, 역사적 진실을 완전히 도외시한 꿈같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는 사도세자 및 정조의 죽음을 연구하면서 여러 충격적인 해석을 내렸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혜경궁 홍씨에 대한 견해, 정조 독살설 등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사도세자의 죽음과 그 속에서의 혜경궁 홍씨, 영조, 홍봉한 등 주변 인물들 및 그 시대의 정치, 역사적 상황을 추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는 사료를 엄정하고 날카롭게 비판하는 점은 물론이고 역사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구수한 입담까지 갖춰 사도세자의 죽음을 치밀하게 추적해 들어갔으며, 그 결과 이 책이 탄생하였다. 그리고 그 강한 흡입력은 수많은 독자를 끌어들였고 나 또한 그 박진감 넘치는 문체에 밤새 흥미를 가지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 다시 든 이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는 이 과정에서 지극히 이중적인(다중적인)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드라마「이산」의 경우 극적 재미에 대한 칭찬을 던지는 한편으로 역사 왜곡이라는 시각에서 뻔뻔하고 후안무치한 드라마라고 혹평했었다. 물론 그 이후「이산」은 보지 않지만. 그런데 그런 이중적인 나를 이덕일씨의 책에서도 똑같이 찾을 수 있었다. 그 책의 박진감과 흥미, 명쾌한 논리에 감탄하면서도 “이렇게 역사적 진실을 마구 왜곡하고 상상으로 가득찬 의견을 내놓을 수 있을까!” 하는 답답함과 분노 말이다. 나는 그 때문에 2년 전 서평을 쓰면서 혹평을 날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다시 든 이 순간은 오히려 그런 답답함과 분노가 증폭되었다. 공부가 조금씩 늘면서 그 오류가 더 크게, 더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기본도 모르는 사료 읽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그렇게 치밀하게 사료를 엄정하고 날카롭게 바라보는 사람이 사료 읽기의 ‘가, 나, 다’, ‘A, B, C’도 모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혜경궁 홍씨가 쓴『한중록』과『영조실록』의 다른 점에 꽤 충격을 받았고,『한중록』을 주로 거짓의 기록으로,『영조실록』을 주로 진실의 기록으로 바라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설령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이덕일씨에 대한 비판을 날릴 수밖에 없다. 이런 양면적인 시각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영조실록』과『한중록』은 모두 큰 장점과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영조실록』은 관찬이라는 장점과 함께 2차 사료이며, 편찬자의 의도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한계가 있다.『한중록』은 생생한 증언이지만 개인의 기록이라는 한계가 있다. 이 점이 이 책에서는 충분하게 고려되지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사도세자의 죽음은 이 두 자료에 의존해서는 곤란하다.『승정원일기』,『일성록』,『의궤』,『비변사등록』,『왕세자일기』및 이들이 남긴 어필, 어제 등 모든 자료를 충실히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등에는 이런 자료들이 무수하게 남아 있다. 조선 후기 역사는 이미 이런 연구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덕일씨의 견해는 오히려 지금의 역사 연구 흐름에서 퇴보했다고 보일 정도이다.
무수한 의문, 그러나 명쾌함이 없는 풀이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노회한 정객이라는 혜경궁 홍씨, 그의 아버지인 홍봉한,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영조가 처했던 당시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사도세자의 죽음에만 초점을 맞춰 바라본다는 것이다.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죄인의 아내’가 되었다. 당연히 정조는 ‘죄인의 아들’이 되었다. 영조는 당시 나이가 만 70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사도세자를 대신할 만한 왕세자는 없었다. 나경언의 고변사건에서 모종의 결심을 했다고 하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나경언이 동궁을 모함하고 해괴한 흉언을 일삼았다고 신하들이 주청하여 영조가 처형해놓고 그것을 빌미삼아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었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정조는 (이덕일씨의 견해대로라면 정조의 최대 정적이었을지도 모를) 혜경궁 홍씨에 대해 극진한 효도를 다했음은 물론 1795년에는 천 년 만의 경사라 일컬어지는 회갑연을 위해 화성 행차까지 감행하였다. 왜 그랬을까?
혜경궁 홍씨는 화성 행차 이후『한중록』을 쓰기 시작하였지만, 그 이후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고 벽파에 의해 정권을 잡은 5년 후, 곧 죽기 10년 전에서야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진상 폭로 성격의 한맺힌 글을 남겼다. 왜 그랬을까?
이 책은 이 말고도 이 시대의 상황에 대한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한 의문을 단 하나도 제대로 해결해주지 않고 있다. 그저 사도세자의 죽음에 모든 초점을 맞출 뿐이다.
물론 사도세자의 죽음이 정신병으로만 몰고 가는 것은 어리석은 견해임은 이미 공론이다. 그러나 그가 소용돌이치는 정국 속에서 희생이 되었다 해도 그 때문에 다른 인물들에게 있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은 너무 뻔뻔한 처사가 아닌가?
이덕일을 넘어서
이덕일씨는 우리 역사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한 사람이다. 공감갈 수 있는 견해도 물론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책의 큰 가치는 우리 역사의 대중화에 큰 획을 그은 것만으로도 마땅히 기억되어야 할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닌 것을 아니라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30만이, 300만이 이덕일씨의 견해를 지지한다 해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유홍준씨는『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써서 우리 인문서의 한, 중요한 획을 그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 획일 뿐 그것을 절대화해서는 곤란하다. 이덕일씨의 견해는 하나의 견해로서, 이 시대의 역사 이해에 대한 하나의 자극으로서는 큰 역할을 했을지는 몰라도 이제는 그를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잘못된 견해에 매몰되지 말고 진지하고 냉철하게 이 시대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 * *
[참 고 문 헌]
다시 서평을 쓰면서 꼼꼼하게 읽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나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덕일씨의 견해의 잘못된 점을 제시하는 사료나 논문, 저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역사에 관해 잘못 알고 있는 것도 이 많은 것들은 바로잡아줄 것이다. 수도 없이 드러나는 그의 잘못된 견해를 서평이라는, 짧으면서도 형식에 어긋난다 할 수 있는 이 글에 모두 풀어 일일이 반박하느니 학자들의 치밀하고 엄정한 견해들을 전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다만 그 가운데 대중들이 접할 수 있는 일부만, 이 책을 대하면서 반드시 같이 접해야 할 몇 개의 문헌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유봉학,『한국문화와 역사의식』, 신구문화사, 2005.
2. 유봉학,『정조대왕의 꿈』, 신구문화사, 2001.
정조 독살설과 혜경궁 홍씨에 대한 가장 설득력있고 타당한 견해가 이 속에 담겨 있다. 연암 일파의 북학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특히 화성 연구와 정조대왕 연구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두 책은 이덕일씨의 견해가 얼마나 빈약한 논리로 일관하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꼬집어줄 것이다.
3. 정옥자,『조선 후기 역사의 이해』, 일지사, 1993.
정옥자 선생은 우리나라 정조 연구의 최고 권위자이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중화주의가 담고 있는 뜻, 조선 후기 중인문화 연구에도 큰 획을 그었다. 조선 후기 역사를 전반적으로 이해하지 않고는, 또 정조대왕이 어떤 사람인지를 이해하지 않고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올바로 이해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큰 방향타 역할을 할 것이다.
4. 한영우,『다시 찾는 우리역사』, 경세원, 2003.
5. 한영우,「정조의 화성건설과 화성행차」,『민족문화』제23집, 민족문화추진회, 2000.
한영우 선생은 자타가 공인하는 조선시대 연구의 권위자이다. 영, 정조의 정책이라든지 정조의 화성건설과 화성행차가 담고 있는 뜻을 정확히 이해하는 속에서 사도세자의 죽음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6. 오주석,『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솔, 2003.
7. 한국생활사박물관편찬위원회,『한국생활사박물관』2, 사계절, 2004.
조선 후기 문화가 지닌 역동성, 다양성을 그림이라는 소재를 통해 쉽고 재미있게 푼 책이다. 학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대중서인, 전형적인 책이다. 조선 후기 문화의 올바른 이해가 없이 사도세자의 죽음을 올바로 바라보기는 힘들다.
8. 이성무,「조선왕조실록」,『한국의 고전을 찾아서』4, 휴머니스트, 2006.
9. 신병주,『하룻밤에 읽는 조선사』, 랜덤하우스 중앙, 2003.
10. 신병주·노대환,『고전소설 속 역사읽기』(개정판), 돌베개, 2005.
이덕일씨의 견해가 잘못된 것인지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실록과『한중록』의 사료로서의 가치와 한계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기본이다. 이 책과 글들은 그 길잡이가 되어준다.
11. 이이화,『한국사이야기』15 (문화군주 정조의 나라 만들기), 한길사, 2002.
12. 박현모,『세종의 수성 리더십』, 삼성경제연구소, 2005.
정조 독살설은 사도세자의 죽음과 맞물려 피해갈 수 없는 키워드이다. 앞서 유봉학 선생의 책과 더불어 이 두 책 또한 정조 독살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13. 박광용,『영조와 정조의 나라』, 푸른역사
영, 정조 시대 정치와 역사, 그 속의 사람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박광용 선생의 명저이다. 저자는 탕평 박사로도 정평이 나 있다.
14. 조선왕조실록 사이트
이덕일씨의 견해는 사료를 찾아보면 금세 그 허점이 드러난다. 조선왕조실록 사이트. 이제는 그 누구도 다 접근해볼 수 있다.
(도서 이미지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index.la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