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세계적인 문화도시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600년 이상 계속되어온 수도로서의 면모 속에 수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의 산업화를 경험하는 속에서 서울은 문화와 품격을 잃었다. 지금 서울 사람들은 서울이 얼마나 뛰어나며 아름다운 도시인가를 잘 모른다. 21세기가 들어선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 진가를 알기 시작했다. 산업화의 상징이었던 청계천이 50년도 되지 않아 복원된 것은 그 상징이라 하겠다. 그 속에서 발현된 다지인의 힘이란 실로 무한함을 느끼게 한다.
경영에 관심이 없는 나에게 이 책은 무척 낯설게 느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매우 낯익기도 하다. 왜 낯이 익을까? 아마도 일상 솟에서 이 디자인이라는 개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이는 비단 나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더구나 우리는 창조된 디자인을 향유하고 구매하는 당사자이다. 그런 우리에게 디자인이 낯익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리고 그 낯익은 것의 힘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더 강해질 것이다.
이 책은 야사히야마 동물원의 사례를 통해 디자인 경영이 무엇이고, 왜 중요하며, 어떻게 해나가야 할 것인지를 풍부한 사례를 들어가며 소개하고 있다. 왜 다 스러져가던 동물원이 다시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서고 그 신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을까? 이 책은 그 원인을 통해 우리의 디자인 경영의 방향을 모색해보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야사히야마 동물원이 성공했는가를 나름대로 정리해보았다.
첫째, 본질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하지만 매우 중요하다. 동물원은 동물이 없다면 그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다. 놀이기구는 다른 유원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다른 놀이동산에서 얼마든지 스릴 있고 재미있는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데 굳이 동물원에 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서울의 경복궁(景福宮)을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경복궁은 본래 백악을 든든한 배경으로 자연과 어우러진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아름답고 장엄한 궁궐이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의 훼손과 왜곡으로 그 본연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사람들은 더 이상 경복궁을 궁궐로, 하나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기억하지 않았다. 그저 국립중앙박물관(조선총독부는 철거되기 전까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였다.)이 있는 곳, 공원 같은 곳으로 기억될 뿐이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 철거 이후 서서히 그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경복궁은 비로소 우리의 마음 속에 우리의 궁궐,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거기에 경복궁 본연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궁중 의례 및 행사도 수시로 열리고 있다. 그러한 노력이 더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있으며, 한결같이 그 아름다움과 찬사를 늘어놓는다. 산업화의 상징인 청계천이 복원된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둘째, 그러한 본연의 모습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노력이다. 디자인을 만드는 주체의 입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아이디어도 주체의 사고방식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끈질긴 노력이 없다면 도로아미타불에 지나지 않는다. 야서히야마 동물원의 직원들은 그 점을 언제나 잊지 않았다. 그들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자신이 동물원에 소속된, 동물원 본연의 모습을 간직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그 동물원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으며, 그 속에서 발전해나갈 수 있다는 밑거름이 되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 사랑, 자부심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야사히야마 동물원은 잘 보여주고 있다.
셋째, 디자인을 만드는 주체의 입장에서 보았다면 이번에는 그 객체, 곧 고객의 입장도 보아야 할 것이다. 과연 고객은 어떤 꿈과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내가 고객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이 책에 든「스타워즈」의 사례는 그것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심형래 감독의 노력이 비록 한계가 있다고 해도 중요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최근 한국 영화는 좋은, 아름다운 작품이 많이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과연 아이들의 꿈, 미래를 담아내는 작품이 얼마나 있을까. 비록 심형래 감독의 작품이 아직 그 점에서는 많은 미숙함이 보인다고 해도, 그 꿈과 미래를 잊지 않고 그 길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관광을 보자. 철저한 고객 중심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경복궁 관리사무소 직원이 관광 대상이 아니다. 평범한 국내외 관람객들이 바로 그 주체이다. 그들이 불편하다고 느끼면 그 관광사업은 실패한 것이다. 충실한 고객의 목소리를 담는 것, 디자인 경영의 중요한 열쇠가 아닌가 생각한다.
결국 디자인 경영은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참고문헌과 수많은 사례들의 깔끔한 정리도 돋보인다. 아쉽다면 문화, 관광 부분의 사례 소개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이 부분이 미래의 디자인 경영의 핵심 산업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저자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그만큼 우리가 다양한 문화 컨텐츠 개발에 소홀했다는 반증도 될 것이다.
나는 현재 한국역사학교를 꿈꾸며 그에 관한 나름의 디자인을 설계 중인데, 그 과정에서 디자인은 사람의 꿈과 그 꿈에 대한 믿음, 이해의 바탕에서 그 무한한 힘을 발현함을 다시 느끼게 된다. 이 책은 거기에서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