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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님의 서재

대상 도서 : 켄 블랜차드·윌리 암스트롱 옮김, 조천제·김윤희 옮김,『멀리건 이야기』, 21세기 북스, 2007.

 

사람이란 무엇일까?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왜 사람에 울고 웃을까?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늘 갖는, 그러나 제각기 다른 답을 지닌 이 본질적인 물음들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가 오늘의 지구상의 수많은 문명을 만들어낸 원동력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이 믿음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사람 관계라는 것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더욱이 역사를 공부하며 그 속에서 무수한 상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기에 더욱 민감하게 다가오지 않는가 여겨진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사람 관계란 무엇일까?

 

멀리건. 부끄럽지만 이 책을 알게 되어 처음 알게 된 용어이다. 사람에게 주어지는 또 한 번의 기회. 그렇다. 그 기회 속에 사람 관계를 풀어나가는 마법의 열쇠 하나가 숨겨져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불현듯 홍대용(洪大容)이 지은『의산문답』(醫山問答)을 읽은 기억이 생각났다. 그의 문집『담헌서』에도 실려 있는『의산문답』은 의무여산에서 허자(虛子)와 실옹(實翁)이 나눈 문답을 엮은 것으로 사실상 자문자답이다. 물론 폴이 윌 던과 대화를 나눈 것이라지만 마치 폴이 자문자답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대화 속에서 진정한 깨달음을 얻어가고 있는데, 그 방식이『의산문답』과 정말 비슷하다.

 

솔직히 폴과 같은 인물은 낯설지 않을 만큼 우리 주변에 많다. 그런데 폴은 스스로 자신이 삶을 잘못 살아왔다는 깨달음을 얻어가고 있다. 왜 그랬을까? 성공과 실패라는 기준에 대한 집착. 그런데 여기에는 실로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성공과 실패라는 단어를 쓰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 ‘실패한 사람’이라 부르는 것은 역사 속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나는 성공과 실패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이 진정한 성공으로 가는 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성공과 실패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물질적인 것일까, 아니면 정신적인 것일까, 그 둘 다일까, 그도 아니면 둘 다 아닐까? 성공과 실패가 나에게만 한정된 것일까, 아니면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주는 것일까? 현재의 시점에만 해당되는 것일까, 아니면 역사 속에서 도도한 흐름으로 이어져 온 것일까? 가벼운 것 같지만 결코 가벼운 대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를 이 책은 우리에게 던져 주고 있다.

 

그 성공과 실패의 본질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바로 사람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 관계라는 것을 꼭 얼굴을 보고 만나서 사귀고 하는 것에 한정를 지을 필요는 없다. 그 사람이 지은 책을 통해서도, 그 사람이 죽은 뒤 남겨진 평가나 행적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관계도 맺어지는 것이다. 그 관계가 명확하고 제대로 이뤄진 이들을 우리는 특별히 기억하며, 그래서 그들을 대체로 ‘성공한 사람’이라 부른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다. 왜 이들이 한국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되었을까? 그들은 사람 관계를 매우 명확하고 제대로 해낸 이들이기 때문이다. 사람 관계의 첫 조건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가치들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언젠가 나는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이라고 하여 이런 가치들을 한번 정리해본 적이 있었다. 사람[人], 역사(歷史), 중립과 중용[中], 진리와 진실[眞], 원칙과 정의[義], 관용과 용서와 이해[仁], 가슴[心], 융통성(融通性), 희생(犧牲), 지식과 지혜[知, 智], 믿음[信], 술[酒], 가족(家族)과 친구(親舊), 사랑[愛], 천하(天下). 이 수많은 가치들을 완벽하게 지켜나간다는 것은 사실 어렵다. 그야말로 초인적인 인내와 내면의 깊이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은 이 수많은 가치들을 거의 다 지켜내었다. 그래서 이들은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살아남으며 현재의 우리들과도 계속 좋은 관계를 맺어나가고 있다.

 

이 책의 폴은 바로 그 사람 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의 소중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잊고 있었다. 그리고 너무 먼 길을 돌아와 다시 그것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또 한번의 기회 덕분이었다.

 

그렇다. 사람들에게는 수많은 기회가 있다. 비록 한번의 어긋남이 있었다 해도 그것은 다시 주어자는 기회 속에 충분히 바로잡을 수 있다. 사람 관계라는 것이 그렇게 칼로 물 베어지듯 싹뚝 잘라지는 것이 아니다. 저 수많은 가치들을 지켜나간다는 진실함, 신실함이 보여진다면 그 어긋남이란 언젠가는 바로잡히게 된다. 사람의 역사가 발전을 거듭해왔던 것은 그 믿음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그 희망과 꿈을 놓지 않은 수많은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긍정의 힘. 참으로 소중하다. 나는 이에 관한 나름의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것을 이른바 120%의 미학, 덤의 미학으로 정리한 바 있었다. 물건을 줄 때 얹어 주는 덤. 사람들은 그 소박한 덤으로 행복을 찾아간다. 내가 100을 공부하고 상대방에게 80을 주느니 차라리 상대방에게 100을 모두 주는 대신 나는 120을 공부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껴주고 축복해주는 혼자가 됨으로써 그들과 기꺼이 평생의 좋은 친구로 함께 가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삶이 반드시 옳다는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결과가 나쁜 방향으로 흐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나도 실제 이런 삶을 살면서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긍정의 힘을 지켜나가는 데 칭찬은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이다. 나는 칭찬 수백 마디와 야단 한 마디의 무게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입에 쓰디 쓴 약은 처음에는 놀라운 약효를 발휘할 지는 모르나 그것이 면역이 되면 도리어 독으로 작용한다. 그렇다. 야단은 적을수록 좋다. 다만 그 무게감은 천근 만근만큼 무거워야 한다. 그것이 칭찬으로 생길 수 있는 지나친 자만을 물리치는, 진정한 긍정의 힘이 될 것이다.

 

그 진정한 긍정의 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은 개인은 물론 사회 발전의 밑거름이 된다. 그것은 사람 관계 속에 오롯이 내재되어 있다. 사람 관계의 중요함은 바로 거기에 있다. 그것을 찾아나가는 폴의 여정, 그것은 그만의 여정이 아닌, 우리 모두의 여정일 것이다.

 

 

(이미지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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